오피니언

[서경이 만난 사람] 최원병 농협중앙회 회장

폭설 재난지역 선포 건의 … AI 피해농가에 500억 지원하겠다<br>재해로 생업 포기하지 않게 중앙회 차원 모든 조치 강구<br>개인 정보 유출 고객에 죄송… 대출사기 재발땐 책임 물을것<br>신경분리 관련 道公 현물출자 정부가 잘 도와줄 거라 믿어

최원병 농협중앙회장이 지난 14일 폭설로 피해를 입은 포항시 죽장면의 토마토 재배 농가 하우스를 찾아 눈을 치우고 있다. /사진제공=농협중앙회

재해로 생업 포기하지 않게 중앙회 차원 모든 조치 강구.

개인 정보 유출 고객에 죄송 '피해자' 발언 임원 인사조치


신경분리 관련 道公 현물출자 정부가 잘 도와줄 거라 믿어

"폭설 피해가 큰 강원 영동과 경북 동해안 지역을 정부가 재난지역으로 선포하도록 건의하겠습니다. 조류인플루엔자(AI) 피해 농가를 지원하기 위해 중앙회 자금 500억원을 투입할 예정입니다. 이번 재난을 겪는 농민들이 실의에 빠지지 않고 하루속히 정상적인 영농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필요한 모든 조치를 강구하겠습니다." 지난 2011년 말 연임에 성공한 후 대외활동을 자제해왔던 최원병(68·사진) 농협중앙회 회장의 발걸음이 다시 빨라지고 있다. 최근 AI와 폭설이 겹치면서 농가들의 피해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AI는 지난 한 달 동안 경북 지역을 제외한 전국 대부분 지역으로 확산되면서 닭·오리 등을 키우는 농가에 큰 손실을 입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최근에는 강원 영동과 경북 동해안 지역의 기록적인 폭설로 하우스 농작물을 재배하는 농가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최 회장이 14~15일 경북 포항과 강릉 관내 폭설 피해 농가를 방문한 것은 현장의 상황을 직접 눈으로 점검한 후 피해복구 대책을 조속히 수립하기 위해서였다. 최 회장은 현장 동행취재에 나선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제가 시골에서 자랐다. 농민들이 예상하지 못한 재난에 맞닥뜨렸을 때 어떤 심정인지를 잘 알고 있다"면서 "피해 농민들이 하루속히 어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중앙회 차원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 회장이 14일 찾은 지역은 경북 포항시 북구 죽장면 상옥리의 토마토 비닐하우스 재배농가였다. 상옥리에는 평년보다 훨씬 많은 100㎝가 넘는 눈이 내려 비닐하우스 파손 등 시설재배 농가들의 피해가 컸다. 죽장면의 경우 전체 32개 농가의 비닐하우스 90동이 무너져 7억원이 넘는 재산상의 피해를 입었다.

피해 상황을 직접 눈으로 둘러본 최 회장은 "생각했던 것보다 피해가 훨씬 크다"면서 "눈이 그친 뒤 시설을 복구하려면 자금이 필요할 텐데 이들 피해 비닐하우스 농가는 담보여력이 별로 없어 고충이 클 것으로 보인다. 정부에 건의해 포항뿐만 아니라 경북 동해안, 강원 영동 등 폭설 피해가 큰 지역이 재난지역으로 선포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그가 재난지역 선포를 건의하겠다고 밝힌 것은 농촌의 발전을 위해서는 지역 농민들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는 "서울에서 제 아무리 농촌으로 귀농하는 인구가 늘면 뭐하느냐"면서 "그 전에 지역에 있는 농민들이 각종 재해에 따른 피해를 견디지 못하고 생업을 포기하는 일을 막아야 한다. 지역 농민들이 자신들이 일궈낸 논밭을 떠나지 않고 잘 정착할 수 있도록 정부와 함께 농협이 앞장서겠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원에 앞서 농가들의 사전 대비도 강조했다. 피해가 발생하면 무조건 자연재해 탓으로만 돌려 미리 막을 수 있는 조치들까지 간과하는 것은 아닌지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는 것. 최 회장은 "비닐하우스의 경우 정부가 만들어놓은 규격이 있다"면서 "파이프와 비닐의 두께 등 정부가 권고하는 기준에 맞춰 시설을 지으면 처음에는 돈이 조금 더 들겠지만 나중에 피해는 그만큼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폭설 피해 현장을 찾은 자리에서도 최 회장은 AI 농가 피해에 대한 걱정의 끈을 놓지 못했다.

최 회장은 "AI 때문에 닭·오리 등의 가격이 떨어지고 소비가 잘 이뤄지지 않다 보니 가금류를 키우는 농가들이 굉장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서 "농협중앙회가 직접 나서서 닭·오리 50% 할인판매와 시식회 등 소비촉진 캠페인을 벌이고 있지만 서울 지역에만 머무르는 한계가 있다"고 아쉬워했다.

"현재는 농협중앙회 하나로마트에서만 할인행사를 하다 보니 피해는 지역 농가들이 입는데 할인혜택은 서울 사람들만 받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전국적으로 확대될 수 있도록 개선할 예정입니다. 이를 위해 지역 조합들의 적극적인 동참을 유도할 계획입니다."

농협중앙회는 가금류 반값할인 지역을 넓히기 위해 지원금액 절반 가운데 25%를 중앙회가 내고 25%를 회원조합이 부담하는 방안을 추진할 방침이다.

이와 함께 AI 피해 농가 지원을 위해 500억원의 자금도 푼다.

최 회장은 "13일 AI로 피해를 입은 농가에 지원될 수 있도록 500억원 규모의 자금집행을 결정했다"면서 "빠른 시일 내에 지원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 회장이 밝힌 500억원은 조합 상호금융 지원자금을 통해 지원된다. 농협중앙회가 이 자금을 AI 피해가 발생한 해당 지역 농협에 무이자로 빌려주면 지역농협은 이를 다시 중앙회에 예치해 발생하는 이자로 재해 등 피해 복구작업에 쓰게 된다.

최 회장은 최근 불거진 NH카드의 개인정보 유출 사태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사전에 관리·감독을 잘했더라면 미리 막을 수 있는 사고였다며 거듭 "고객들에게 정말 미안하다"고 밝혔다.

"카드사업을 제대로 하기 위해 돈을 주고 정보유출 방지 시스템을 개발한 것인데 우리가 용역업체 직원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사고가 발생한 것입니다. 그런데 담당 부행장이 국회에서 '우리도 피해자'라는 식으로 이야기를 해 당황했습니다. 우리가 잘못했는데 무슨 피해자입니까."

최 회장은 "업무를 아무리 잘하고 똑똑한 사람이라도 도대체 뭐하는 사람이길래 그런 실언을 하는지, 임종룡 금융지주 회장에게 '인사 조치를 하라'고 말했다"고 덧붙였다. 당시 문제의 발언을 한 이신형 NH카드 부사장의 인사조치가 예상되는 부분이다.


최 회장은 이번 정보유출 사태의 원인은 농협중앙회에 있는데 애꿎은 회원 조합들에 피해가 가서는 곤란하다는 입장도 나타냈다. 17일부터 시작되는 카드사의 신규영업 정지 대상에 지역농협은 제외돼야 한다는 것. 최 회장은 "농협중앙회 산하 은행은 신규영업 정지를 받더라도 타격을 흡수할 수 있지만 지역농협은 그래서는 안 된다"면서 "일반 시중은행 점포를 찾기 어려운 지방 농민들이 주로 이용하는 지역농협만큼은 카드영업을 계속할 수 있도록 금융지주 쪽에 애기를 했고 잘 해결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실제 금융위원회는 지역농협의 카드 영업은 허용하기로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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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회장은 KT ENS의 사기대출 의혹과 관련해서도 재발방지를 약속했다. 유사 사고가 발생하면 농협금융지주의 1대주주로서 책임을 묻겠다는 의사도 밝혔다.

"KT ENS 사기대출과 관련해 NH은행에 200억여원 정도 피해가 있는 것으로 보고 받았습니다. 법적으로는 하자가 없는지만 잘 챙기도록 지시해놓았습니다. 손실이 나면 결국 농민들에게 피해가 가는 것 아닙니까. 중앙회가 인사권한은 없지만 앞으로 유사 사고가 발생하면 사고 책임을 반드시 묻겠습니다. 1대주주로서 요구할 것은 하겠다는 겁니다."

농협의 사업구조 개편의 필수조건으로 농협 신경분리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도로공사 현물출자에 대해 최 회장은 낙관적인 견해를 밝혔다. 정부는 농협 신경분리를 위해 필요한 자본금을 5조원으로 보고 4조원은 농금채에 대한 이차보전으로, 나머지는 정책금융공사가 가진 도로공사 주식 5,000억원과 산업은행 주식 5,000억원을 현물출자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 가운데 농협이 정책금융공사로부터 받기로 한 도로공사 5,000억원의 현물출자 부분이 마지막 걸림돌이 되고 있다. 농협 측은 도로공사 주식이 비상장으로 유동화 매력이 떨어지고 주주배당도 적어 실익이 적다고 보고 있다. 농협이 현물출자보다 해당 금액만큼 이차보전을 요구하는 이유다.

이에 대해 최 회장은 "경제사업 활성화를 위해 사업 분리를 한 건데 당초 계획이 원활하게 될 수 있도록 정부가 잘 도와줄 것이라고 믿는다"면서 "현재 금융지주와 정부가 잘 협의해서 풀어나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He is …

△1946년 경북 경주 △포항 동지상업고등학교 △위덕대 경영학과 △1986년~ 안강농협 조합장 △1991~2006년 경상북도의회 4·5·6·7대 의원(4선) △2000년 대통령표창 수상 △2003년 석탑산업훈장 수훈 △2002~2004년 경상북도의회 의장(7대) △2007년 21대 농협중앙회 회장 △2011년~ 22대 농협중앙회 회장(연임)

"쓴소리가 사업에 도움" 소통 강조하는 현장중심 경영자

■ 최 회장은

"나쁜 이야기를 많이 해주세요. 그래야 사업 추진하는 데도 도움이 됩니다."

최원병 농협중앙회 회장은 대외적으로 알려진 '딱딱한' 이미지와 달리 '소통'을 강조하는 현장 중심의 경영자다.

지난 14일 폭설 피해를 입은 포항 죽장면에서 지역본부장 및 지부장, 관내 조합장들과 가진 간담회는 평소 그의 이런 원칙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였다. 최 회장은 참석자들이 쭈뼛쭈뼛하며 발언을 머뭇거리자 최근 자신이 겪은 에피소드를 소개하며 간담회장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바꿔놓았다.

"본부에서 회의를 할 때 보면 지역 본부장들이 조합장들한테 가서 '(회장님한테) 나쁜 얘기를 하지 말라'고 하는 경우가 많습디다. 그럴 필요 전혀 없습니다. 들을 건 들어야죠. 그래야 중앙회가 사업을 추진하는 데도 도움이 됩니다. 의견들 많이 주세요."

최 회장의 격의 없는 토론 제안에 정곡을 찔린 참석자들은 당황한 듯 웃음을 짓더니 곧 여러 요구사항들을 꺼내놓기 시작했다. 현장을 많이 찾고 소통을 강조하는 그의 진가가 다시 한 번 확인된 순간이었다.

최 회장은 피해 현장 점검 내내 조직 관계자들에게 줄곧 이런 말을 되풀이했다.

"(피해 농가들에는) 돈도 중요하지만 그 이전에 가장 중요한 것이 마음으로 위로하는 일입니다. 시간이 허락하는 한 피해 지역을 방문해 그들을 격려하고 위로하는 일을 잊지 말아주세요."

소통을 중시하다 보니 현장에서 그에게 '쓴소리'가 쏟아지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싫은 소리를 들을 때도 최 회장은 표정을 찡그리는 경우가 없다. 그의 말대로 중앙회의 사업을 추진할 때는 현장의 좋은 소리보다 싫은 소리가 더욱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14일 관내 조합장과 조합원들과 함께한 점심식사 자리에서 참석자들은 "피해가 발생한 지역인 만큼 농림수산업자 신용보증기금 대출의 만기를 연장하거나 대출이자를 유예해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이런 요구는 중앙회 차원에서 이미 시행되고 있는 제도였다. 최 회장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도 있는 일이지만 그는 오히려 자신들의 홍보 부족을 탓했다.

농협중앙회의 한 관계자는 "회장은 평소 농협은 수익을 내서 직원들 급여를 주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농민들에게 돌려줘야 한다는 소신이 강하다"면서 "현장에 가면 나쁜 소리라도 막지 않고 들으려 하는 것도 그래야 농민들에게 도움을 더 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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