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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스빌딩 임대 시장은 이미 임차인 우위의 시장으로 변한 지 오래다. 과거에는 임차인들이 대형 오피스빌딩에 들어가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렸지만 건물주가 먼저 각종 혜택을 제공하며 임차인 유치 경쟁에 나서는 분위기다. 특히 일정 기간 임대료를 받지 않는 '렌트 프리'의 경우 예전에는 연간 2개월 정도만 해도 엄청난 혜택이었지만 이제는 많게는 1년 이상 무료 임차가 흔하다.
업계 전문가들은 이 같은 변화가 경기 변동, 오피스빌딩 수급 불균형 등의 요인이 복합적으로 맞물린 결과라는 분석이다. 지난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오피스 수요가 감소했지만 도심 재개발과 수도권 일대 대규모 개발로 빌딩 공급이 급증하면서 대량 공실 사태가 빚어졌다는 설명이다. 윤원섭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 한국지사 상무는 "2009년 이전에는 오피스빌딩 임대사업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는 인식이 퍼져 있었다"며 "금융위기 이전 계획돼 있던 도심 재개발 사업들이 잇따라 마무리되면서 최근 3~4년 사이 일시적으로 빌딩 공급이 늘어난 결과"라고 말했다.
◇빌딩수급 조절 실패… 우후죽순 늘어난 불 꺼진 빌딩=업계에서는 서울의 오피스빌딩 공실이 급증하기 시작한 시기를 2009~2010년으로 꼽는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불거진 2008년 9월과 대략 1년 이상의 시차가 있는 것으로 경기 변동에 탄력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공급이 몰리면서 빈 사무실이 늘어났다는 것이다.
THE바른에 따르면 서울에 신규공급된 연면적 1만㎡ 이상 빌딩 총 면적은 2008년 31만6,447㎡에서 2009년 41만119㎡로 증가했다. 이후 △2010년 52만932㎡ △2011년 78만2,033㎡으로 급증세를 보이면서 오히려 경기 상황과 역행하는 추세를 이어갔다. 지난해 공급 규모 역시 61만1,544㎡로 2008년의 두 배에 가깝다.
주택공급과 달리 빌딩의 수급상황을 조절할 만한 컨트롤타워가 없다는 점도 공실 대란을 심화시키는 요인으로 지적된다. 시장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랜드마크급 건물을 경쟁적으로 유치하다 보니 수급 불균형을 키웠다는 지적이다. 장진택 리맥스코리아 이사는 "주택의 경우 정부 차원에서 어느 정도 수요를 예측하면서 공급을 탄력적으로 하지만 빌딩시장은 사실상 조절이 힘든 구조"라며 "더는 무리하게 건물을 늘리지 못하도록 정부 차원에서 조절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대체 오피스타운 개발로 서울 이탈 가속화=서울 외곽지역에 대규모 신규업무지구가 등장하면서 저렴하고 깨끗한 빌딩들이 늘어나고 있는 점도 기업들의 서울 지역 이탈을 부추기고 있다. 과거에는 기업들이 도심이나 강남권을 고집했지만 이제는 '실속'을 중시하면서 고정비용 줄이기에 나서는 추세다.
대표적인 곳이 판교 테크노밸리다. 판교테크노밸리는 정보기술(IT)·콘텐츠로 특화하는 한편 취득·등록세, 재산세 감면 혜택을 내세워 기업들의 오피스 수요를 빠르게 흡수했다. 지난해부터 카카오톡·넥슨그룹·엔씨소프트·넥스트칩·한국반도체산업협회 등이 서울을 떠나 판교로 둥지를 옮겼다. 업계 관계자는 "판교테크노밸리 조성 당시만 해도 임차인 모집에 어려움을 겪지 않겠느냐는 의견이 대다수였지만 이제는 임차인이 줄을 서 있다"며 "강남에서 판교로 이전하면 임대료 부담이 20~30% 줄어드는 것도 매력"이라고 전했다.
◇대형 빌딩 준공 대기 중…장기 공실 불가피=업계에서는 서울 오피스빌딩의 대량 공실 사태를 상당기간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경기 회복에 대한 불확실성이 여전한 반면 대형 빌딩 공급은 계속되고 있어 만성적인 초과공급 현상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도심권만 해도 아직 상당수 대형 오피스빌딩이 준공을 기다리고 있다. 올해만 대림산업이 시공을 맡은 광화문 D타워(10만6,212㎡)를 비롯해 GL빌딩(5만1,752㎡), KT신사옥인 올레플렉스(5만2,502㎡), 청진8지구 빌딩(5만1,751㎡) 등이 완공될 예정이다.
임차 수요가 한정된 것도 공실률 하락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다. 여의도의 경우 방송사들이 상암DMC로 이전을 준비 중인데다 주 수요층인 증권업계는 지점 축소, 인력 감축 등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추진 중이어서 수요 확대의 여력이 없는 상태다. 업계 관계자는 "여의도를 이탈하는 외국계 기업조차 늘어나는 추세"라며 "특히 신축빌딩들은 높은 공실률에도 여전히 높은 임차료와 관리비를 고집하고 있어 빈 사무실 해소에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