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피플

“보이차 쌓아놓기 보다 음미할 줄 알아야”

신정원 죽로재 대표 <br>운남 농업대서 이론까지 겸비한 전문가


“보이차에 대한 정보를 더 많이 공개해 시장을 투명하게 만들어 나가겠습니다.” 보이차를 전문적으로 공부하기 위해 운남농업대 다학과 대학원을 진학한 신정현(사진) 죽로재 대표는 가짜가 버젓이 유통되는 국내 보이차 시장이 안타깝기만 하다. 국내에 보이차 전문 유통업자들은 많지만 보이차를 학문적으로 연구하며 평생의 업으로 삼은 전문가는 드물다. 보이차는 찻잎 중 이파리가 큰 대엽종 차나무에서 수확해 눌러서 만들어 운남지역 보이라는 집산지에서 판매한 발효차의 일종으로 발효차의 효능이 과학적으로 입증되면서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한때 ‘국내에서 판매되는 보이차는 대부분 가짜’라는 소문에도 불구하고 웰빙 바람을 타고 국내 보이차 인구는 점점 늘고 있는 추세다. 보이차는 오랜 시간 발효되면서 성질이 따뜻해져 육식 등 기름진 음식을 주식으로 하지 않는 한국인의 체질에 이롭다는 평을 얻으면서부터다. 묵은 것일수록 맛이 좋다는 보이차, 그러나 묵은 차일수록 제조일자를 파악하기가 어려워 유통과정에서 거품이 끼는 등 투기 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러다보니 국내에서 보이차는 깔끔한 맛에 대한 가치를 인정받기 전에 ‘사다 놓고 시간이 지나면 몇 배 이상 남길 수 있다’는 황금성이 더 큰 관심을 끌었다. 국내에서도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햇차를 대량으로 구입해 2~3년 저장해 발효시켜 판매하겠다며 사재기를 하는 사례도 심심찮게 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발효가 더디게 된다는 게 신대표의 설명이다. “묵은 보이차를 선호하는 홍콩이나 대만에 비해 한국은 습도가 적고 온도가 낮아 발효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홍콩, 대만에서 1년 동안의 발효 정도를 기준으로 본다면 한국에서는 10년 이상 걸릴 수도 있다. 아무 차나 사다가 쟁여놓는다고 무작정 수십배로 가격이 뛴다는 보장은 없다. 좋은 원료로, 제대로 만든 차를 적정한 습도와 온도에 맞춰 저장해야 보이차는 비로소 값어치가 높아진다. 이 세 가지를 갖춘 차라면 충분히 투자가치가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실패할 확률이 높다.” 그가 차에 매료된 시기는 이화여대 중문과를 졸업하고 중국어 관련 책을 번역ㆍ출간하기 위해 설립한 창기획을 운영하던 2005년이었다. 신대표는 “북경의 한 보이차 전문상가에서 차를 마셨는데 보통 쓰고 떫다는 햇차가 그렇게 부드러울 수가 없었다”며 “사실 일 때문에 북경을 간 건데 그때 맛본 차의 여운을 잊지 못하고 보이차의 원류를 찾아 중국의 6대 차산지 중 한 곳인 이무(易武)로 무작정 길을 떠났다”고 말했다. 제 2의 인생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그는 이무에서 차를 생산하는 소수민족과 함께 생활하면서 차의 생산과정을 체험한 후 출판기획을 접고 평생 차와 함께 하겠다는 결심을 하기에 이르렀다. 운남농대 대학원에 진학해 본격 보이차 공부를 시작한 것도 그때였다. “우리나라 녹차와 보이차는 차나무 잎으로 만들지만 차이점이 많다. 보이차는 잎이 크고 차맛이 진한 대엽종이고, 우리 녹차는 맛이 상대적으로 연하고 잎도 작은 소엽종이다. 제작과정 중 건조방법도 차이가 크다. 녹차는 솥이나 기계를 이용해 높은 온도에서 건조하는 반면, 보이차는 반드시 햇볕에 건조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시간이 지날수록 쓴맛이 강해진다.” 신대표가 부산에 차 전문가게 죽로재를 오픈하는 데 블로그의 역할이 컸다. “중국에서 좋은 차를 블로그에 소개하면 주문을 직접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정보를 공유하고 싶어 블로그를 개설했는데 보이차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찾았다. 최근에는 가짜 보이차를 구별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까 해서 구별법을 자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블로그를 찾는 사람들이 필요한 정보라면 내가 갖고 있는 정보를 공개해 함께 나누고 싶다.” 그의 블로그(구름의 남쪽 http://blog.naver.com/whitepema/80143304913)에는 보이차 제조과정을 세분화 해 각 단계별로 소개하는가 하면 보이차의 맛을 제대로 알리기 위해 차 맛을 품평해서 올려놓기도 한다. 지난해에는 보이차의 역사와 제조과정, 가짜 보이차 구별법, 마시는 법과 효능 등을 꼼꼼하게 정리한‘보이차의 매혹(이른아침 펴냄)’을 출간하기도 했다. 책에는 중국 대신 홍콩, 대만 등에서 먼저 보이차 인기가 시작한 배경, 홍콩의 중국 반환을 앞둔 1997년, 불안감에 휩싸인 홍콩 사람들이 보이차를 대량 사들이는 바람에 폭등한 가격에 얽힌 이야기 등이 자세하게 소개돼 있다. “대만이나 홍콩에서는 묵은 보이차를 선전하기 위해 할아버지가 만들어서 손자가 판매하는 차라고 대대적으로 홍보했지만 사실 중국 대륙에서는 묵은 차를 마시는 전통이 없었다. 홍콩, 대만에서 인기를 끌던 묵은 차 마시기는 보이차 값을 올리는 계기가 됐고, 최근에는 중국에서도 대단한 인기를 끌고 있다. 생산량이 한정된 보이차의 수요가 늘어난다는 건 결국 가격이 올라가는 요인이 될 수 밖에 없다.” 실제 2007년 기준으로 보이차 값은 평균 두배 이상 올랐다. 국내에서는 모 재벌가의 회장께서 건강을 위해 보이차만 마신다는 소문이 나면서 찾는 사람이 급격히 늘고 있다. 그는 대학원을 다니면서 맺은 친분으로 운남지역의 소규모 다원에서 직접 보이차를 제작해서 국내에 들여온다. 지나치게 값이 오른 묵은 차 보다는 가격대비 맛이 우수한 이무 지역의 오래된 차나무에서 수확하는 고수차(古樹茶)만 거래한다. “보이차의 거래 가격이 오르면서 중국에서도 이젠 보이차는 오래될수록 비싸다는 통념이 자리잡아 일부 몰지각한 유통업체들이 곰팡이가 슬어 몸에 해로운 차를 내 놓는 경우도 있다. 마셔보고 금방 알기가 어렵다는 점을 악용해 많은 사람들이 속아서 사는 경우가 허다하다. 구매자는 오래 묵었다는 상인의 말만 듣고 비싼 가격에 구입해 낭패를 보기 쉽다. 보이차를 오래 두고 마시는 개념이 없었던 중국 차 공장에서 제조일자를 표기하지 않던 관행이 빚은 해프닝이다.” 차를 좋아하는 마니아들에게 그는 차에 대한 공부와 아울러 맛을 구별할 수 있는 미각을 키우라고 조언한다. “차에 대한 공부를 하지 않으면 비싼 값을 주고도 좋은 차를 구하기가 어렵다. 특히 몸을 생각해 마시는 만큼 제대로 구하기 위해 맛과 향은 물론 포장지ㆍ내비까지 꼼꼼하게 따져봐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차의 맛을 구별할 수 있는 미각을 개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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