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2월 24일] 이미 내 곁에 있는 것 포용하기

"얘야, 우리 애기 이름이 뭐더라? 탁 닛…." 몇 년 전, 어느 절에 갔다가 새 학기를 앞둔 우리 아이들과 기왓장에 소원을 적어넣고 있었다. 우리처럼 가족 이름을 기왓장에 써넣던 한 중년 아주머니께서 갑자기 며느리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다며 아들에게 전화를 걸어 확인하는 모습을 보았다. 주변에 이주여성들이 무척 많지만 절에 놀러 와서까지 이주여성의 존재를 확인하리라고는 미처 생각도 못했었다. 그러나 시어머니가 절 집 기왓장에 축원을 쓰며 이름까지 올려주는 이주여성은 그야말로 축복받은 극소수일 것이다. 얼마 전 다문화 가정을 이룬 한 부부에게 국회에서 이주여성을 도울 방법을 물으니 학대당하는 이주여성들의 이혼절차를 수월하게 해달라고 대답했다. 속아서 시집 온 나라에서 도망칠 길마저 막혀있다는, 그 딱한 여성들의 증오가 오죽하겠느냐 싶었다. 이런 사람들이 반한(反韓)인사가 되고 그들의 친정 역시 반한 정서가 거세질 것은 불 보듯 뻔한 이치다. 지난해 호주정부 초청으로 호주를 방문한 적이 있다. 가기 전에 호주 원주민들의 정신세계에 대한 책을 읽었다. 모든 만물을 인간과 똑같이 존중하는 태도, 자연과 대화하고 자연을 동료로 생각하는 자세 등 호주 원주민의 영혼이 이루 말할 수 없이 깊다는 사실을 그린 책이었다. 호주정부는 수세기 동안 호주사회에 동화하기를 꺼리는 원주민들에게 적극적인 포용정책을 쓰기 시작했다. 원주민이 존중하는 언어ㆍ생활방식ㆍ사회체계를 존중하고 유지하기 위해 적극적인 재정지원을 폈다. 동시에 호주사회에 동화하려는 원주민은 적극 도왔다. 호주에는 화가가 원주민밖에는 없나 할 정도로 자연과 교감하는 원주민 화가들의 그림을 국회, 각 행정부처, 굴지 미술관의 간판 자산으로 내걸고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특별 전시관을 열도록 지원하더니 세계 유수의 미술 시장에서도 각광받게 만들었다. 호주가 아시아 이민을 적극 받아들이고 서양의 변방이 아니라 아시아의 중심으로 활약하고자 하는 의도 뒤에는 그간의 폐쇄적인 백호주의(白濠主義)를 버리고 원주민을 적극 포용하는 정책이 근간으로 있는 것이다. 이미 우리 곁에 있는 것들을 끌어안을 수 있어야 강해질 수 있다. 로마가 그랬듯, 우리도 이제 굳게 닫힌 순혈주의의 문을 열어젖히면 좀 더 면역력이 강한 사회가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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