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한국의 캐시카우 오늘과 내일] 1-2. 흔들리는 정책, 중심이 없다.

지난 3월 27일 경제정책조정회의. 해당부처 장관들은 노무현 대통령 앞에서 해묵은 논란거리였던 경유차 시판시기와 경차 규격 문제를 결론지었다. 경유차는 오는 2005년부터 유로3 기준으로 도입하고, 경차규격은 3년간의 유예기간을 두고 1,000CC로 확대한다는 내용이었다. 한달여 뒤인 5월7일 인천상공회의소. 김진표 부총리 겸 재경부장관은 GM대우 텃밭인 이곳에서 유예기간을 5년으로 늘릴 것임을 시사했다. 여러가지 정황을 고려한 입장이었겠지만 결과적으론 지역여론과 정치권 로비에 떠밀려 부총리 스스로 `컨트롤 타워`로서의 중심을 잃고 정책 불신을 불러왔다. 이로부터 불과 나흘뒤인 5월11일. 환경부는 이날 “경유차 배출가스 허용기준을 완화하는 내용을 제외하고 대기환경보전법 시행규칙을 개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경유차 시판을 위해 배출가스 허용기준을 완화하겠다던 장관들의 합의가 원인무효되는 순간이었다. 대통령 앞에서 이뤄진 정책 결정조차 허무하게 꺾여지는 상황, 이 것이 바로 우리 자동차 산업 정책의 현실이다. ◇`3무(無) 정책, 기업은 발만 구르고…=기아차 마케팅ㆍ전략 담당자들은 정책 얘기만 나오면 고개를 훼훼 돌린다. 기아차는 정부의 경차 규격 확대방침에 따라 비스토를 단종키로 했으나 정책이 자꾸 흔들려 단종 시기를 선뜻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이 회사 관계자는 “하반기부터 비스토 후속 모델 개발에 들어가야 하는데 고충이 이만저만 아니다”며 “생산설비 도입시기가 결정되지 않다보니 부품 발주계획도 혼선을 겪고 있다”고 털어 놓았다. 심지어 후속 모델에 투입할 인력을 뽑아 놓고도 자칫 유휴 인력 발생을 걱정해야 할 판이다. 하지만 현대차에 비하면 이 정도는 약과다. 현대차 고위 관계자는 “경유차 시판에 맞춰 엔진공장을 증설해야 하는데 투자 계획 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2조원 가량의 투자유발 효과가 걸린 대형 프로젝트가 정책 불확실성으로 난맥을 거듭하고 있는 현실이다. GM대우도 마찬가지다. GM대우는 경차 정책에 반발하며 70% 가량 진척된 `M-200`의 개발을 잠정 중단한 상황이다. 기업들이 글로벌 톱5를 외치며 동분서주하는 동안 정부는 원칙도, 방향도, 전문성도 없는 `3무(無) 정책`으로 뒷걸음질만 치고 있다. 그 사이 한국차의 글로벌 경쟁력은 갈수록 침식되고 있다. ◇거꾸로 가는 글로벌 정책= 김소림 자동차공업협회 이사는 “경차 규격을 확대해달라고 업계가 볼멘 소리를 하는 것은 국내 시장을 차지하려 하는게 아니다”고 강조한다. 기본적으로 우리의 경유ㆍ경차 정책은 업계의 글로벌 경영 노력과 정면으로 배치되는게 현실이다. 내수와 수출시장의 정책이 따로 놀고 있다. 기아차 관계자는 “국내 경차 수출시장의 80%를 차지하는 서유럽 경차 시장에서 상품성 저하로 수출시장의 기반 자체를 상실한 상황에 처해 있다”고 지적했다. 그의 말대로 우리 경차의 수출은 3년 연속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지난 99년 28만대에 달했던 경차 수출은 2000년과 2001년 20%씩 감소세를 보이며 17만8,000대까지 떨어졌으며, 지난해에는 급기야 38.7%나 수직 하락해 10만9,000대에 그쳤다. 특히 핵심 수출 시장인 유럽의 `A-새그먼트(소형차)`시장을 보면 우리의 정책이 잘못된 궤도에 있음을 분명하게 엿볼 수 있다. 우리 자동차의 현지 수출은 지난 2000년 연간 17만5,094대(비스토 7만3,264대, 마티즈 10만1,830대)에서 지난해에는 9만6,939대(비스토 4만2,487대, 마티즈 5만4,452대)로 뚝 떨어졌다. 이유는 간단하다. 800CC에 1.5미터에 불과한 우리의 경차 규격으로는 경쟁력을 갖출 수 없기 때문이다. 배기량 등 경쟁력이 떨어지는 제품으로 현지시장을 공략한다는 발상부터가 무리다. ◇소비자들만 골탕= 정부 정책이 이처럼 헛바퀴를 도는 동안 정작 골탕을 먹는 것은 소비자들이다. 2,000만원짜리 RV(레저용 차량)를 구입한 사람은 유지비가 싼 경유차를 굴릴 수 있고 1,000만원 남짓한 소형차 고객을 비싼 휘발유만 써야 하는 게 현실이다. 김소림 이사는 “국내 소비자들은 선택의 기회가 그만큼 줄어들 수밖에 없다”며 “글로벌 기준에 맞춰 각종 제도를 정비하는게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쌍용차의 무쏘스포츠(무쏘픽업)를 놓고 벌어진 정책 과정은 해프닝에 가깝다. 건설교통부와 재정경제부가 화물차 기준을 제각각 설정하는 바람에 특별소비세를 부과했다가 취소하는 소동을 빚었고 결국 애꿎은 소비자들만 피해를 보았다. 어정쩡한 정책은 통상 마찰의 빌미까지 주고 있다. 현대차 관계자는 “국산 경유승용차는 아무런 제약도 없이 유럽에 수출되고 있으나 유럽산 경유승용차는 국내 판매가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통상마찰이 불거져 유럽쪽 수출기반이 와해될 경우 국내경제에 큰 타격이 미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주무부서 관료 잦은교체가 문제 자동차 정책의 주무부서인 산업자원부 수송기계과의 K과장. 5월 중순 부임한 그는 경유차 정책을 물어보자 “업무 파악하기도 벅차다”며 혀를 내둘렀다. 핵심 정책들이 결론나지 않은 상황에서 이뤄진 인사가 불러온 해프닝이다. 전문가들은 자동차산업의 골간을 바꿀 정책들이 중심을 못잡은 채 흔들리는 것을 구조적 문제에서 찾는다. 담당 관료들의 잦은 교체가 그것이다. 자동차공업협회의 A임원은 외국 정부ㆍ단체와의 업무 협의를 할 때마다 단골메뉴로 받는 질문이 있다. “그 사람(산업자원부 담당 과장) 벌써 바뀌었나요”. 그의 말처럼 우리의 관료, 특히 산자부 관료들은 지나칠 정도로 보직 순환이 빠르게 이뤄진다. 자동차 정책을 담당하는 수송기계과장도 예외는 아니다. 3년 이상 자리를 채운 사람이 없다. IMF 체제 이후 1년도 자리를 채우지 못한 사람이 2명이나 된다. 정책을 총괄하는 자본재산업국장의 경우 전문성을 확보하기 위해 개방직 형태를 취했지만 외부 인사가 자리를 맡은 적은 한 차례도 없다. 업계 관계자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이념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와서 정책을 흔들곤 한다”고 꼬집었다. 전문성이 확보된 관료가 자리를 지키고 있었더라면 이미 2년전에 정책의 줄기가 잡혔을 것이란 설명이다. 협회 고위 관계자는 “자동차 정책은 업무파악에만 6개월이 걸리며 정책 입안을 하려면 최소한 3년 정도는 근무해야 한다”며 “중국이나 일본은 최소 5년 이상 한 자리를 지킨다”며 우리 정책관료들의 비전문성을 꼬집었다. 경유승용차 팔면 4년간 65억달러 수출늘리는 효과 논란을 거듭하는 경유차ㆍ경차 정책의 올바른 지향점은 무엇일까. 이는 경차 규격확대와 경유차 시판 허용때의 경제적 효과를 통해 간접적으로 가늠해볼 수 있다. 우선 경유차를 조기 시판할 때. 업계는 기술력 향상을 통해 4년 동안 65억달러 가량의 수출 증대 효과가 가능할 것으로 보고있다. 유럽에서만 62억달러 효과가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 부가가치 유발액 4조8,000억원, 관련 산업 고용유발 효과 5만3,000명(자동차산업 2만3,000명) 등 막대한 경제적 효과를 예상할 수 있다. 에너지 수급 측면에서도 휘발유와 경유 수입 불균형을 해소해 연간 3억2,000만달러의 원유 도입량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분석된다. 또 열 효율성이 높은 디젤 엔진의 보급이 확대될 경우 에너지 절감 효과가 연간 1,350억원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대기오염을 줄이기 위해 100대59인 휘발유와 경유의 가격비율을 100대85로 조정한뒤 시판하자는 환경부의 주장도 이번 물류대란으로 상당부분 논거를 잃었다. 경차 규격 확대에 따른 효과는 4가지 측면에서 분석할 수 있다. 먼저 경차 규격이 확대될 경우 지난해 5만7,000대에 그쳤던 경차 판매가 26만대까지 늘어날 것으로 자동차산업연구소는 예상한다. 경차의 전체 산업수요도 20% 이상 증가할 전망이다. 다음은 에너지 절약 측면. 경차 배기량을 증대시킬 경우 연비 증대와 배기가스 배출량 감소 효과는 예상되는 결과다. 무엇보다 기대되는 것은 수출 경쟁력. 자동차 협회 관계자는 “연간 100만대에 달하는 유럽 소형차 시장에서 경쟁이 가능해진다”며 “신모델 개발과 국제 안전기준에 대한 대응이 강화돼 수출 경쟁력이 대폭 확대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오랜 시간에 걸쳐 정책의 골간을 잡은 만큼 앞으로는 부작용을 최소화하는데 정책의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주문하고 있다. <김영기기자 young@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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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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