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요동치는 稅政 겉과속] <5> 납세자는 웁니다

냉·온탕 부동산정책 형평성 상실<br>연말 정산 잘못하면 탈세범 취급<br>자동차사면 세금이 무려 12가지<br>걷힌세금 투명 공개·이해 쉬운 세법 필요<br>"행정 편의주의적 발상 없애야" 목소리 커

서울 동부이촌동의 초고층아파트에 사는 박 모씨. 그는 작년까지 재산세를 낼 때마다 기막힌 경험을 했다. 건물 내장재가 철골 구조란 이유로 세금을 이웃 아파트보다 매년 100만원이나 더 낸 것. 이 아파트에서 박 씨는 18층에 거주하고 이웃인 김 씨는 같은 아파트 21층에 살고 있다. 두 사람의 아파트는 평형은 물론 내부 인테리어도 완전히 똑같다. 시세는 21층이 로열층으로 인정 받아 1억2,000만원이나 높았다. 하지만 박 씨의 아파트는 20층까지는 철골, 21층부터는 철근으로 지어졌다. 지난 해까지 적용된 재산세 기준에 따르면 철골층 입주자에게는 철근층보다 20%이상의 세금이 더 부과됐다. 박 씨는 “철골인지 철근인지 입주자가 알 길이 없다”며 “엑스레이라도 찍어 내장재를 검사하고 들어와야 하냐”고 항변했으나 법이 그런지라 어쩔 수 없었다. 다행히 올해 재산세 부과방법이 바뀌었다. 그러나 수년간 박 씨가 억울하게 낸 세금은 돌려 받을 길이 없다. 직장생활을 하며 월급을 받고 집을 보유하며 자동차를 굴리는 일반 국민들에게는 너 나할 것 없이 납세의 의무가 주어진다. 하지만 납세자치고 대한민국 세금제도의 불편함과 불합리함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드물다. 이름조차 이해하기 어려운 세목들, 얼마를 내야 할지 예측 못할 복잡한 계산방법, 그리고 방향성을 잃은 세제 정책들…. 대표적인 분야가 ‘불합리의 보고(寶庫)’로 불리는 부동산 세금이다. 냉ㆍ온탕을 오갔던 정부정책으로 세금제도 전반에 걸쳐 형평성 침해가 발생하고 있어서다. 경기도 수원시의 강 모씨는 지난해 집을 팔면서 다른 지역과 달리 시세 기준으로 양도세를 냈다. 2003년 6월부터 수원시가 주택투기지역으로 지정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강 씨의 동네는 집값이 거의 오르지 않았다. 지역내 일부 동네의 집값상승 때문에 투기지역으로 지정되다보니 애?J은 강 씨의 동네도 피해를 본 셈이다. 강 씨는 “집값도 잘 오르지 않는 단독주택인데다 투기목적으로 집을 판 것도 아닌데 세금만 늘었다”고 불만을 토했으나 소용없었다. 강 씨와 같은 피해사례가 늘면서 경기도 일부지역에서는 행정소송으로 투기 지정취소까지 요청하고 있다. 한푼의 세금이라도 아껴보려는 ‘유리지갑’ 봉급생활자들의 연말소득공제도 납세자들을 울리고 있다. 복잡한 정산 방법에 관련 서류만 수십가지에 이른다. 서울 관악구의 한 모씨는 작년 연말정산 서류를 발부받고자 5일에 걸쳐 발품을 팔았다. 주민등록등본, 호적등본을 끊기 위해 동사무소를 들렀고 자녀들의 병원비 영수증을 위해 6군데의 병원을 일일이 찾았다. 어머니가 6급장애인이다 보니 다시 구청을 찾아 장애인 증명서를 발급받았고, 기부금 영수증을 받기 위해 멋쩍게 교회와 양로원을 다시 방문했다. 그리고 장기주택마련저축 납입증명서를 발급받기 위해 월말의 은행창구를 찾아 1시간을 보내야 했다. 숱한 비용과 시간을 들여 김 씨는 간신히 20여만원의 연말정산 세(稅)테크에 성공(?)했다. 그러나 그런 한 씨는 2003년 연말정산 당시 배우자 소득공제를 잘못 기재했다는 이유로 국세청으로부터 ‘탈세범’ 취급을 받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결국 한 씨는 올 해초 국세청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였다. 개인이 내야 할 세금의 종류도 넘쳐난다. 자동차세가 대표적이다. 한국인이 자동차를 사게 되면 무려 12가지의 세금을 내야 한다. 자동차를 살 때 특별소비세 등 6가지 세금을 납부하고, 자동차를 굴릴 때 2가지 세금을 내야하며, 기름값에 4가지 세금을 추가로 낸다. 미국의 경우 판매세, 자동차세, 연료세, 소비세 등 단 4가지다. 이 과정에서 교육세는 무려 3번이 부과된다. 특소세에 교육세가 붙고 자동차세에 교육세가 30% 얹히며 휘발유 특소세에도 15%의 교육세가 부과된다. 재경부, 건교부, 환경부, 교육부, 지자체 등은 자동차 세금 하나로 푸짐한 세입을 거둔다. 납세자를 ‘봉’으로 여기는 봉건주의적 세금제도는 최근의 학교용지부담금 사태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엄연히 학교를 지으라고 세금을 냈음에도 불구, 정부는 학교용지를 마련하기 위한 돈이 필요하다며 300가구이상의 아파트를 최초 분양받은 이들에게 수백만원대의 부담금을 부과하기까지 이르렀다. 이후 사이버 시위 등 불복운동이 잇따르고 헌법재판소가 “의무교육 무상원칙에 어긋난다”며 위헌판결을 내려서야 부담금 납부의무가 없어졌다. 시위에 참가한 이 모씨는 “한두푼 아껴 저축하고 아파트 분양을 받고 나니 학교용지부담금 200만원을 내야 했다”며 “세제정책이 행정편의주의적인 발상에서 만들어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과세당국은 ‘국민의 4대의무’로 성실한 세금납부를 강조하고 있지만 정작 납세자들은 과세당국부터 먼저 의무를 지키라고 강조한다. 김선택 한국납세자연맹 회장은 “세법부터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쉽고 또 불합리하지 않도록 만들어야 한다”며 “걷힌 세금?어디에 어떻게 쓰이는 지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도 과세당국의 의무”라고 지적하고 있다. 국민들이 납득할 만한 합리적이고 민주적인 세제정책 없이는 납세의 의무는 공허한 메아리로 그칠 수 밖에 없다. /특별취재팀=안의식기자 김영기기자 이종배기자 현상경기자 miracle@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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