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나서다간 다친다" 보신주의 만연

[면피공화국] 1.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관련기사 책임지는 일은 하려고 들지 않는 '면피주의'가 경제의 발목을 잡고 국가발전에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나라 전체에 '나중에 혹시 문제가 될 소지가 있는 일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인식이 팽배하고 그에 따라 정부와 금융회사ㆍ기업 등 경제주체들이 중요한 의사결정을 대부분 뒤로 미루는 바람에 성장원동력이 꺼져가고 있다는 지적이다.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 이후 지난 4년간 '도덕적 해이'를 바로잡기 위해 행해진 각종 조치들은 경제주체의 인식변화와 구조조정을 촉발했지만 체계적이지 못하고 다분히 감정적으로 흐르는 바람에 이제는 오히려 부작용이 더 커지고 있다. 정부 관리들은 여론의 눈치보기에 급급하고 금융회사는 규정만 지키려는 경직된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기업들은 단기 실적주의에 골몰하고 있는 형편이다. 무사안일과 복지부동이 '면피주의'로 이어지면서 국가경제가 점점 더 위축되고 있다. 은행 등 금융회사들은 BIS비율 준수, 부실채권 회수 등을 명목으로 기업대출을 극도로 줄이거나 무리한 채권회수에 나서면서 금융회사 고유의 자금중개자 역할을 도외시하고 하고 있다. 이 때문에 매출회복 등으로 생존가능성이 높은 멀쩡한 기업마저 단기 자금난에 따른 부도로 내몰리고 있다. 또 기업들도 앞날을 내다보고 설비투자 등 적극적인 경영에 나서기보다 단기수익 내기에 치중하는 '교과서 경영'을 하는 경향이 강하다. 올해 설비투자 규모가 1분기 중 전년 동기에 비해 마이너스 6.2를 기록한 후 4월에도 마이너스 행진을 이어가고 있는 것도 이 같은 현상의 반증이다. 면피주의를 낳는 대표적인 사례는 위원회제도. 정비를 했다고는 하나 정부산하 위원회가 325개나 되고 금융회사와 기업에도 사장추천위원회ㆍ사외이사추천위원회ㆍ감사위원회ㆍ리스크관리위원회 등 가히 위원회 천국이라는 말이 나올 만하다. 현정부 들어 추진된 동강개발, 새만금 사업 등 대형 프로젝트들은 각종 위원회를 통해 10여차례 이상 회의나 공청회를 거치고도 제대로 된 결론조차 내리지 못한 채 막을 내렸다. 또 의료보험개혁ㆍ교육개혁 등도 위원회 방식의 정책집행으로 이해집단의 반발을 넘지 못해 사실상 실패한 케이스다. 성공에 대한 보수보다 실패했을 경우 법률적ㆍ사회적 책임이 지나치게 무거운 현행 제도도 면피주의를 낳고 있다. 최근 예금보험공사가 파산한 금융회사에 대해 회수가 불가능한데도 구상권을 행사하기 위해 1,744명에 대해 5,851억원의 소송을 제기하고 실제 권한도 없었던 전 은행감사에 대해 17억원 상당의 손해배상 청구를 제기한 것 등도 이 같은 면피주의식 정책집행의 대표적 사례다. 이 때문에 금융회사 종사자들 사이에는 "성공하면 보너스 100%, 실패하면 100억원짜리 손해배상"라는 말이 유행하고 정책담당자들은 "중요한 결정은 차기 담당자 몫"이라며 미루거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정책집행 결과를 남기지 않는 행태도 나타나고 있다. 김준일 KDI 거시경제 팀장은 "구조조정의 진정한 성공을 위해서는 경제주체들의 의식변화가 뒤따라야 한다"며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제거하고 책임ㆍ권한ㆍ보수가 시장원리에 따라 결정되는 성과 시스템이 갖춰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온종훈기자 jhohn@Q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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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종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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