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더블 클릭] 섀도보팅


끈질기게 따라다니는 그림자를 발견하고 떨어뜨리기 위해 전력 질주를 했던 시절이 있다. 밤길을 갈 땐 귀신이나 다른 사람으로 착각해 소스라치게 놀라기도 했다. 하지만 그림자란 내가 하는 데로 따라 할 뿐 혼자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두려움은 사라졌다. 기업과 증시에도 그림자와 같은 존재가 있다. 의결권은 있지만 힘은 전혀 없는 섀도보팅(shadow votingㆍ중립투자)이 바로 그것이다.


△섀도보팅은 정족수 미달로 주주총회가 무산되는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한국예탁결제원이 불참 주주들을 대신해 주총에서 나온 찬반 비율대로 의결권을 행사하는 것이다. 지금은 워낙 광범하게 퍼져 있어 아주 오래 전부터 시행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1990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에는 없었던 제도다. 당시엔 기업들이 주주총회를 하려면 주주들의 참석을 기다리거나 찬반 의사를 위임 받아 대신 투표(proxy voting)하는 수밖에 없었다. 기업과 주주 간의 거리가 그만큼 가까웠다. 하지만 주총 비용이 너무 많이 들고 총회를 열지 못하는 경우까지 생기자 1991년 법을 바꾼 게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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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섀도보팅은 도입 이후 그 힘을 급속히 키워갔다. 이제는 상장기업 3곳 중 1곳 이상이 섀도보팅을 이용하고 은행과 증권사의 활용비율도 각각 50%와 70%를 웃돈다. 특히 올해는 대주주 의결권이 3%로 묶여 있는 감사 선임안을 대상으로 집중적인 섀도보팅 요청이 들어와 그 비율이 27.4%나 됐다고 한다. 기업들이 이 제도를 자신들에게 유리한 감사를 선임할 수 있는 수단으로 적극 악용하고 있는 셈이다. 주주 편익이 아닌 기업 편의주의에서 출발한 섀도보팅의 태생적 한계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요즘 우리나라 주총에서 일반 주주를 찾기란 쉽지 않다. 섀도보팅이 이들을 주총장에서 쫓아냈기 때문이다. 수백명에서 수천명에 달하는 주주명부 속 주주들이 빠진 주총장은 이제 을씨년스럽기만 하다. 주인인 주주보다 기업에 그림자처럼 붙어 있는 섀도보팅의 모습이 정상은 아니다. 2015년 폐지되면 기업과 주주 간 거리가 좁혀질 수 있을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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