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서경이 만난 사람] 이유일 쌍용자동차 사장

기업 투명해야 하지만 정치권 압박도 지양해야<br>당장 무슨 자동차 만들지 고민보다는 장기비전 필요<br>남의 기술 들여다 조립만하는 '식민산업' 안돼<br>파업손실 배상금액 작아… 항소 여부 곧 결정


"30년간 '자동차 밥'을 먹은 사람으로서 하는 말입니다. 오늘 무슨 차를 만들어서 팔지 고민하기보다는 앞으로 교통수단이 어떻게 발전하게 될지, 장기적 비전이 필요합니다."

이유일 쌍용자동차 사장은 서울 역삼동의 쌍용자동차 서울사무소에서 서울경제신문과 만나 "한국 자동차 산업에는 장기적인 안목에서 투자하고 개발할 젊은 사람들이 많이 필요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또 "자동차 산업이 남의 기술을 들여다 조립만 하는 '식민지 산업'이 돼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 사장은 자동차 산업의 발전을 위해 정책적 지원도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나라의 경제정책은 너무 근시안적"이라며 "조변석개 식의 정책인데다 하나라도 잘못하면 회생할 수 없을 만큼 두들겨 맞기도 한다"고 안타까워했다. 또 "기업이 더 투명해질 수 있도록 해야 하겠지만 장기적 시각이나 정책의 일관성도 없이 정치적 압박을 가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고 덧붙였다.노사갈등에 관해 질문을 던지자 이 사장은 직원들에게 자주 충고한다는 말을 그대로 옮겼다. "현재만 보지 말고 이 회사가 계속 살아남아서 아들·손자에게도 물려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인도 자동차 기업들의 경우 인건비를 3년에 한 번씩 15%, 20% 올려주는 대신 직원들도 생산성을 15, 20%씩 올리겠다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서로 존중해줘야 할 지점을 분명히 지키자는 것이다. 그는 77일간 파업을 벌인 쌍용차 근로자들이 사측에 46억여원을 배상해야 한다는 최근 법원 판결에 대해 "배상금액이 작아서 항소 여부를 검토 중이지만 기본적으로 근로자 개개인보다는 파업을 부추긴 금속노조와 외부단체 등에 더 초점을 맞춘다는 입장"이라고 답했다.

이 사장은 "앞으로 교통수단이 어떤 모습으로 발전해나갈지를 늘 생각하며 쌍용차를 경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포니 정' 고(故) 정세영 현대산업개발 회장의 이야기를 꺼냈다. 현대차에 입사하자마자 고 정 회장의 사무실 바로 옆에서 근무했던 이 사장은 지금도 정 회장의 추모식에 꼬박꼬박 참석하고 있다. 이 사장은 "이전까지 현대차는 포드 자동차를 조립해 파는 수준이었지만 미국에서 공부한 정세영 회장은 고유 모델의 중요성을 누누이 강조했다"며 "이 때문에 수익이 생기면 전부를 엔진·트랜스미션 개발과 금형·주물공장에 재투자했다"고 회상했다. 그 결과물이 국산 기술로 만든 최초의 자동차 '포니'였다. 이 사장은 "현대차 남양연구소도, 한국의 자동차 산업도 그분이 만들었다. 앞으로 교통수단이 어떻게 발전해나갈지를 항상 고민하는 분이었다"고 소개했다.

이 사장이 수장에 오른 후 쌍용차는 법정관리와 주인이 네 번이나 바뀌는 혼란에도 불구하고 다행히 최근 수년간 상당히 기력을 되찾은 상태다. 이 사장은 "오는 2015년이나 돼야 턴어라운드가 가능할 줄 알았지만 직원들이 굉장히 열심히 일해줬다. 또 많이 투자하지는 못했지만 부분변경해 출시한 모델들이 시장에서 인기를 끌면서 생각보다 빨리 회복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쌍용차는 올해 2·4분기, 3·4분기 연속으로 흑자를 기록했다.

이 사장은 "영업적자가 아직 남았지만 4·4분기에 적자를 극복하고 '초콜릿 마진'을 기대할 수 있을 것 같다"면서 "내년에는 우리 근로자들과 이익을 나눌 수 있을 정도가 될 것으로 전망되고 그렇게 되면 성과급(PI)뿐만 아니라 초과이익분배금(PS)까지 지급하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초콜릿 마진은 초콜릿을 사 먹을 수 있을 만큼 작은 규모의 이익을 뜻한다.

신차 출시와 연구개발(R&D) 투자도 쌍용차의 진전을 이끌 것으로 관측된다. 이 사장은 "유럽 차는 유럽에서, 미국 차는 미국에서 개발해야 한다는 생각인데 미국은 조금 시간이 걸리는 반면 유럽은 쌍용차가 진출해 있기 때문에 유럽에 먼저 연구소를 세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쌍용차의 유럽 R&D센터 건립은 모회사인 마힌드라그룹 차원에서도 협의가 이뤄지고 있다. 아직 설립 지역은 정해지지 않았지만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가 마힌드라의 아난드 마힌드라 회장을 직접 만나 설득하는 등 유럽 각국의 투자유치전이 치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밖에도 이 사장은 "앞으로 R&D 부문 직원들을 영국 왕립예술대학(RCA)이나 미국의 캘리포니아 디자인대학으로 보내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쌍용차는 당장 내년에 부분변경 외의 신차가 없다는 점이 우려되기는 하지만 2015년에는 'X100'을 출시하면서 전세계적으로 규모가 확대되고 있는 소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시장을 공략할 계획이다. 이 사장은 X100 이후의 차종에 대해서는 "판매량은 많지만 마진은 적을 것으로 예상되는 모델과 판매량은 적어도 마진이 높을 모델 사이에서 저울질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2015년은 쌍용차의 도약을 위한 중대한 기로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 사장은 "우선 X100을 내세워 2015년에는 20만대, 2016년에는 30만대 판매를 달성할 것"이라며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이미지로 재탄생하기 위해 사명도 바꾸고 북미 시장 진출도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다. '쌍용'이라는 사명은 이 사장의 표현대로 하면 "몇 번이나 망한 회사 이미지"와 노사분규의 이미지가 강하다. 또 중국을 제외하면 해외 시장에서 선호할 법한 이름이 아니라는 것이 쌍용차 경영진의 판단이다. 심지어 독일 등지에서는 나치 친위대(SS)를 연상시킬 정도다. 쌍용차는 이미 한 컨설팅 업체와 계약을 맺고 새로운 사명을 고민하고 있다. 이 사장은 "쌍용차의 새로운 이름을 위한 대국민 공모도 실시할 계획"이라며 "쌍용을 사랑하는 국민들이 쌍용차를 새로 태어나게 할 이름을 직접 정해줬으면 하는 바람에서"라고 말했다. 실용신안권을 고려해야 하는 만큼 로펌과 공고문도 만들고 있다. 쌍용차는 한국적이면서도 해외에서도 기억하기 쉬울 만한 사명을 고민하고 있다.

그는 지난 2009년 쌍용차의 법정관리인으로 임명된 후 골프도 끊었다. "부도난 회사의 법정관리인으로서 직원들에게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다"는 이유에서다. 70세의 이 사장은 지난 수십년간 오전7시 이전에는 사무실에 도착해 일과를 시작하고 있다. 특히 현대자동차 시절에는 오전6시30분에는 출근해야 했다. 고 정주영 회장이 오전7시면 이 사장을 찾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여전히 기력이 넘치는 그는 자신보다도 나이가 많은 동호회원들과 매주 산악자전거로 체력을 다지고 있다.







He is…

▲1943년 7월3일 서울 ▲1969년 연세대 법대 ▲1969년 현대자동차 입사 ▲1996년 현대차 미국법인 사장 ▲1997년 현대차 기획본부장 ▲1998년 현대차 해외 부문 사장 ▲1999년 현대산업개발 플랜트사업본부 사장 ▲2001년 현대산업개발 해외담당 사장 ▲2007년 호텔아이파크㈜ 부회장 ▲2009년 쌍용자동차 공동관리인 ▲2011년 3월 쌍용차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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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반신반의… 이젠 든든한 파트너로"

■ 이유일이 보는 마힌드라

유주희기자

지난 2009년 초 현대산업개발 계열의 파크하얏트 부회장직을 끝으로 은퇴를 준비하던 이유일 사장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법정관리에 들어간 쌍용차의 법정관리인이 돼달라는 요청이었다. 법정관리인의 최고 연봉은 1억원. 이 사장이 당시까지 받았던 연봉에 비하면 턱없이 낮은 수준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예스'라고 답했다. 30년간 자동차 업계에 몸담으면서 애정이 강했던데다 우리나라의 자동차 산업계에서 마지막으로 봉사하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물론 어느 정도 연봉에 대한 조정도 있었다.

법정관리인 내정 소식이 알려진 뒤 이튿날인 2009년 2월6일 마힌드라그룹으로부터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사실 이 사장에게 익숙한 인도의 자동차 회사는 타타모터스 정도였다. 알고 보니 마힌드라는 앞서 2004년에도 쌍용차를 찾아 '렉스턴'의 인도 출시를 협의한 적이 있을 만큼 꾸준한 관심을 갖고 있었다. 이번에는 이 사장이 인도로 날아가 아난드 마힌드라 회장을 만났다. "미리 홍콩에 있는 외국계 은행에 마힌드라의 '먹튀' 가능성을 물었을 만큼 걱정이 됐지만 마힌드라 회장을 만나보고 생각이 바뀌었다"는 게 이 사장의 이야기다.

그는 마힌드라 회장에 대해 "스케일이 컸고 이 사람이면 괜찮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마힌드라 측도 쌍용차 인수를 쉽게 결정한 것은 아니었다. 당시 인도의 애널리스트들은 '한국 재벌이 운영하다 망했고 중국 상하이기차도 못 살린 회사를 마힌드라가 살릴 수 있겠느냐'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쌍용차는 부활하려는 의지가, 마힌드라는 쌍용차를 통해 세계 시장에서 한 단계 올라서겠다는 의지가 강했다. 마힌드라는 올해도 쌍용차에 800억원을 지원했다.

마힌드라가 이 사장에게 최대한의 자율경영을 보장한 점도 시너지 창출에 유리하게 작용했다. 이 사장은 "매월 한 차례씩 마힌드라에서 쌍용차의 경영상황을 점검하기는 하지만 우리 측의 결정을 크게 반대하는 일은 없다"고 전했다. 덕분에 마힌드라 내에서도 지금은 "잘 샀다"는 분위기가 대세라는 귀띔이다.



유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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