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콜릿`은 아주 오랫동안 미국의 상징이었다.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태극기와 성조기가 악수하는 그림이 그려진 봉지 안의 옥수수빵도 미군에 대한 기억의 편린이다. 일부 일탈한 미군이 한국여성을 희롱하고 양민을 학살한 적도 있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았지만 우리네 기억으로 미국과 미군은 `초콜릿과 옥수수빵`이다. 조국이 해방된 날 성조기를 흔들며 `친미`를 외치는 것도 구호물자에 대한 고마움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미군이 이 땅에서 선행을 남겼는지, 아니면 패악을 저질렀는지에 대한 판단은 대단히 중요할 수 있다. 정확한 인식이 역사의 방향을 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 시점에서 더욱 중요한 것은 우리가 바로 미군의 입장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이라크 파병 얘기다.
정당성도 명분도 없지만 현실은 파병을 요구하고 있다. `호전적인` 부시가 아니라 민주당 정권이었다 하더라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대외문제에 관한한 기본적으로 군사력
에 의존하는 게 미국의 본질이다. 정도 차이만 있을 뿐이다. 정치경제적으로 미국의 절대적인 영향권에 있는 입장에서 선택의 여지는 크지 않다.
파병이 불가피하다면 중요한 것은 그 내용이다. 미국이 원하는 대로 약 5,000명의 전투병을 보낼 경우 위험부담이 너무도 크다. 무엇보다 이슬람세계와 돌이킬 수 없는 악연이 우려된다. 월남전 이후 한국과 베트남은 국교를 정상화하는데 많은 세월과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이다.
경제학으로 풀어보자. 파병의 최종 수요자는 이라크다. 이라크 국민들은 전투병을 원하지 않으며, 비전투병이면 환영한다는 입장이다. 먼저 파견된 서희부대와 제마부대 등 공병ㆍ의료부대는 현지인들의 신뢰를 얻고 있다. 오랜 독재와 전쟁으로 폐허가 된 이라크가 절실히 원하는 병원과 학교, 축구장을 지어줄 비전투병을 보낸다면 `맞춤형 파병`이 될 수도 있다.
문제는 파병의 진짜 수요자가 미국이라는 점이다. 미국의 눈치 때문에 파병한다는 점은 삼척동자라도 아는 사실이다. 내키지 않는 파병의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지만 최소한의 입장정리는 필요하다. `우방국 미국의 입장을 생각해 충분한 병력을 보내되 비전투병을 보낸다`는 것이다. 병원과 학교가 줄 효과는 초콜릿 이상이다. 자손 만대에 증오의 씨앗을 심을지 아닐지가 노무현 정부의 대미 협상력에 달렸다.
<권홍우(경제부 차장) hongw@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