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라면사업 철수 등을 끝으로 기존 사업구조 재편 작업은 마무리됐습니다. 지금은 IR을 통해 빙그레라는 회사를 알리고 평가받는 단계입니다. 이제 외국인 투자가 어느정도 안정된 수준에 달했으니, 확고한 비전만 제시한다면 2단계 도약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빙그레 정수용 사장은 비수익 사업인 라면사업 정리 등 일련의 구조조정을 마친 후 꾸준한 상승세를 타고 있는 주가에 고무된 모습이다. 경기도 남양주시의 공장 건물 안에 마련된 다소 `삭막한` 접견실에서 만난 정 사장은 “이제 부상병을 메고 가는 것도 아니니, 뛰기 시작하면 엄청난 속도가 붙을 것”이라며 재도약의 자신감을 피력했다. 라면사업에서 발을 뺀 것에 미련이 남기 보다는 연간 50억원 적자를 내던 골칫덩이가 사라진 것이 못내 후련한 눈치다.
그렇다면 빙그레 재도약을 가늠하기 위해 정 사장이 제시하는 비전은 무엇일까.
“우선은 아직 초보단계에 머물고 있는 국내 유가공 시장을 확대시키는 것이 내년 사업의 주안점이 될 것입니다. 그 이후에는 사업다각화와 해외시장 진출에 박차를 가할 것입니다”
국내 요구르트 시장 선두를 달리는 업체답게, 유가공 시장에 대한 빙그레의 야심은 남다르다. 아직은 외국 시장과 달리 발효유시장이 크지 않은 상태지만, “이제 막 리듬을 타기 시작한 유가공 시장이 앞으로는 제품 고급화ㆍ다양화와 함께 훨씬 커질 것”이라고 정 사장은 내다보고 있다. 현재 유가공 제품 시장은 1조8,000억원 규모. 특히 해마다 10% 이상씩 성장하는 발효유는 얼마든지 성장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정 사장의 설명이다. 다만 현재 국내 시장은 제품군이 지나치게 획일적인 `걸음마` 단계다. 시장을 제한하는 기존 제품의 `틀`을 깨기 위한 새로운 제안에 적극 앞장서는 것이 당장 내년에 빙그레가 나아갈 방향. 이를 위한 “획기적인 신제품” 개발 계획도 착착 진행 중이라고 한다.
또하나의 핵심사업인 빙과 부문도 틈새를 겨냥한 고급화에 앞장설 방침이다. 외국 업계들이 주력하는 2,000~ 3,000원대 고급 아이스크림 숍과 500~700원 선의 아이스크림 바 시장 사이에 벌어진 간격을 메우는 1,000~1,500원 선의 중가시장 공략으로 고급화된 대중 시장을 노린다는 전략이다.
올해 구조조정과 내년 기존사업 다지기를 통해 돈을 벌면 정 사장은 그 다음 단계로 새로운 고수익 사업에 눈을 돌릴 방침이다. 안정되고 친근한 회사이미지를 활용한 신규사업 추진에 있어 정 사장이 염두에 두는 방안은 기존 회사의 인수ㆍ합병(M&A). 태스크포스팀 구성과 시장 조사 등을 통해 현재 눈여겨보는 분야는 건강보조식품 사업이다. 다만 무수한 업체들이 빠른 속도로 시장에 뛰어들고 있는 것과 달리, 정 사장은 느긋하기만 하다.
“지금 많은 업체들이 건강보조식품 분야로 불나방처럼 뛰어들고 있는데, 오래지 않아 업계에서 매물이 많이 나올 것으로 봅니다. 씨부터 뿌리기보다는 힘을 비축했다가 기회를 봐서 M&A를 통해 시장에 진입할 생각입니다”
정 사장은 “사업은 타이밍이 중요하다”며 “지금도 인수 제안이 들어오기는 하지만, 여력을 갖추고 소비자 접근을 위한 법제 인프라가 제대로 갖춰질 때까지 서두를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해태제과 인수설에 대해서도 많이 담담해진 모습이다. 한달여 전 다소 성급했던 입장 표명으로 관련업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정 사장은 “해태제과 빙과부문을 인수하려는 의사에는 변함이 없으며, 건과부문을 인수하기 위해 컨소시엄 구성에 관심을 보이는 해외업체가 있다는 얘기도 오가고 있다”면서도 “처음엔 한 발 늦었다는 성급함이 앞선 것이 사실이지만, 이제는 인수후보로 선정될 자신감이 있으므로 느긋한 입장”이라고 말했다. 업계에서의 위상이나 인수에 따른 시너지 효과, 최근의 주가 사정과 재무구조 등을 감안할 때 “결국은 빙그레 밖에 더 있겠냐는 생각”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자신감의 주요 근거가 되는 주가는 외국인 투자 확대에 힘입어 꾸준히 오름세를 타고 있다. 홍콩과 런던 등 해외 IR을 거쳐 외국인 지분은 IR 개시 전인 지난 8월 8%에서 현재 24%까지 높아진 상태. 지난해 말 부채비율을 100% 미만으로 끌어내리고 경영의 아킬레스건이었던 라면사업을 정리한 것, IR을 통한 기업 알리기에 적극 나선 것이 주가 상승의 호재가 됐다. 하지만 아직 만족스럽지는 않다.
정 사장은 “제대로 평가를 받으려면 주가가 2만원은 돼야 할 것”이라며 “장기적으로 2006년에는 매출 1조원, 순익 1,000억원 달성을 목표로 삼고 있으며, 구체적인 방향 설정에 따라 주가도 2단계 도약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 경영철학과 스타일
언론인과 연구원 등 이색적인 경력을 거쳐 식품업체 CEO를 역임하는 정 사장이 직원들에게 늘상 강조하는 것은 균형 감각이다. 기업은 수익을 내야 하고, 심지어 수익을 못 내는 것은 죄악이라고 단정하는 정 사장은 수익이 나면 이를 나눠갖는 분배 과정에서도 균형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법적 주인인 주주와 소비자, 종업원들이 수익을 함께 나눠가져야 한다는 것이 CEO 4년차로 접어든 정 사장의 지론이다.
균형과 조화를 강조하는 정 사장의 경영 철학은 솔직 담백하고 털털한 그의 경영 스타일과 어우러져 회사가 어려운 상황에서 빛을 발휘됐다.
기업이 주요 사업에서 손을 떼기로 했을 때는 외부는 물론 내부적으로도 깊은 질곡을 거쳐야 한다. 바로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한 직원들의 거센 반발. 하지만 지난 3월 라면사업 철수를 결정한 정수용 빙그레 사장은 노조와의 충돌이라는 큰 짐 하나는 아예 덜어둔 채 사업 구조조정 작업을 마무리지을 수 있었다. 나아가 최근에는 모든 사업장이 신노사문화 우수기업으로 선정기도 했다.
이례적인 노사 협력관계를 보이는 데 대해 정 사장은 “관계를 형성하는데는 솔직함을 바탕으로 한 신뢰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원칙은 지켰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약력
▲1950年 충북생
▲76년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75~80년 합동통신 기자
▲81~86년 산업연구원(KIET) 연구원
▲90년 일본 히도쓰바시 경제학부 박사과정 수료
▲90~92년 ㈜한양유통 유통경제연구소
▲빙그레 관리본부장, 영업본부장, 생산본부장 역임
▲저서: 日本의 석탄산업 발전과 철도와의 관계에 관한 일고찰, 한국ㆍ 대만의 산업정책 비교연구(공저) 등
<신경립기자 klsin@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