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오후2시30분께 서울 여의도 한나라당 당사.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이 잔뜩 상기된 얼굴로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를 찾았다.
비공개 대화는 대표실에서 기자들이 떠나자 격한 고성으로 이어졌다. 문이 닫히자마자 안 대표는 "우리가 바보냐"며 역정을 냈고 윤 장관도 정면으로 맞대응했다.
한나라당의 내년 예산안 단독처리에 따른 후폭풍이 거세다. 당에서는 고흥길 정책위의장 사퇴로 조기진화에 나서고 있지만 당내 '추가 문책론'으로 확산되며 좀처럼 가라앉지 않을 분위기고 사태는 당정 마찰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예산안의 파편이 윤 장관에게 그대로 튄 것. 개각을 앞두고 조심스럽게 나오던 유임설은 쏙 들어갔다.
이날 오전까지도 정부와 당에서는 고 의장 사퇴와 윤 장관의 사과로 이번 사태를 갈무리하는 쪽으로 방향은 잡은 듯했다. 재정부도 속은 부글부글 끓었지만 청와대와 당의 뜻에 따를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윤 장관의 여의도행은 그래서 이뤄졌다. 사과방문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당사에 도착한 직후부터 상황은 돌변했다. 당사를 찾은 윤 장관은 기자들과 만나"(예산심사 등이) 단축되다 보니 일부 소통이 부족했지만 예산이 지켜야 할 기준은 당도 지켜야 한다"고 각을 세웠다. 예산안에 템플스테이 등 일부 당의 공약예산이 빠진 데 대해 사과할 것이냐는 질문이 나오자 "재정건전성을 지키기 위해 일관된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말했을 뿐 '사과'라는 표현은 하지 않았다.
윤 장관의 발언은 점점 더 거칠어졌다. 예산안이 빠르게 통과될 것을 예상하지 못하고 정부의 준비가 미진했다는 지적이 나오자 "동의하지 않는다. 빨리 통과된 것이 아니라 법에 정해놓을 것을 지킨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또 일부의 추가경정예산 요구에 대해 윤 장관은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고 밝혔다.
사과를 통해 상황을 진정시키려던 것이 오히려 당정 갈등으로 한 술 더 뜨게 된 셈이다.
윤 장관은 실제로 이날 '사과'하러 당에 간다는 일부 보도에 불쾌감을 감추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정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유감 표현과 사과는 엄연히 다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재정부뿐 아니라 당내에서도 여당이 정치적 부담을 덜기 위해 재정부를 과녁으로 삼는 것은 비겁하다는 반론이 만만치 않다. 홍준표 한나라당 최고위원은 "일각에서 이번 예산파동의 책임을 재정부에 돌리려는 입장도 있는 것 같은데 재정부는 예산을 관료적 입장에서 처리하는 것이고 이를 정치적으로, 국민적 시각에서 고치는 것은 국회와 당의 책임"이라며 "(예산안 파동은) 국회와 당에 전적으로 책임이 있지 재정부로 책임을 돌리는 것은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윤 따거'로 비유되듯이 강한 리더십으로 관직을 이어온 윤 장관. 이번 예산안 파동은 마무리를 앞둔 그의 관료생활을 평가하는 데 또 하나의 중요한 모티브가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