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이건희 경영 25년, 삼성 강해졌다] <2> 기업체질 바꾼 '신경영'

"위기 닥쳐도 개혁 중단할 수 없다"… 역발상으로 승부수<br>순혈주의ㆍ학력차별 타파… 7·4출근ㆍ지역전문가제로<br>질 위주 경영 원칙 정착… 기업에 사회공헌 접목도<br>인재경영으로 미래 대비… 변화·개혁이 트레이드 마크



분노 폭발했던 이건희 티스푼 던지며…
[이건희 경영 25년, 삼성 강해졌다] 기업체질 바꾼 '신경영'

김상용기자 kimi@sed.co.kr

























"위기 닥쳐도 개혁 중단할 수 없다"… 역발상으로 승부수
순혈주의ㆍ학력차별 타파… 7·4출근ㆍ지역전문가제로
질 위주 경영 원칙 정착… 기업에 사회공헌 접목도
인재경영으로 미래 대비… 변화·개혁이 트레이드 마크

지난 2010년 경영에 복귀한 이건희 회장은 첫 일성으로 ‘위기론’을 꺼낸다. 한마디로 안주 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임직원들에게 보낸 것이다. 변화와 개혁은 이 회장이 항시 주문하는 단골 메뉴다. 최근에는 삼성 인적 구조에 변화를 몰고 올 ‘지방대생 채용 비중’ 확대를 지시한다. 이 이면에는 ‘삼성=엘리트’라는 순혈주의에 안주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우회적으로 경고한 것이다.

취임 25주년 동안 변화와 개혁은 이건희 회장의 트레이드 마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출발은 지난 1993년 6월 7일에 시작됐다. 당시 이건희 회장은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도착해 삼성의 핵심 경영진 200여명을 긴급 호출했다. 이 회장은 이 자리에서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꾸라”는 이른바 신경영을 주창했다.

이 회장은 200여명의 사장과 임원 앞에서 “국제화 시대에 변하지 않으면 2류나 2.5류가 될 것입니다. 지금처럼 잘해봐야 1.5류 입니다.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꿉시다”고 채근했다.

지난 1987년 취임 이후 줄 곧 강조해온 ‘질’ 경영이 삼성 내부에 정착되지 않는 모습에 실망한 이 회장이 해외에서 파격적인 선언으로 삼성 임직원에게 변화와 개혁의지를 보여준 것이다.

◇후쿠다 보고서로 시작된 이건희 경영 본격 개막=이 회장은 90년대 초반부터 삼성 내부의 느슨한 문화와 양 위주의 경영에 대해 개혁의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 일본인 고문 후쿠다씨가 작성하고 경영과 디자인의 내용을 다룬 ‘후쿠다 보고서’를 읽은 이후 본격적으로 신경영 선포의 결심을 한 셈이다.

특히 이 회장은 양보다 질을 우선시하라는 자신의 지시가 삼성 임직원 내부에게 제대로 공유조차 되지 않고 그간의 일하는 습관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에 대해 분노한 것이다.

삼성은 양보다 질의 경영 원칙을 효과적으로 공유하기 위해 이른바 7ㆍ4 출근제도 도입했다. 출퇴근 시간부터 바뀌어야 임직원 전체가 질 경영을 받아들일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오전 7시 출근해 오후 4시에 퇴근하는 이 제도로 인해 삼성의 질 경영은 탄력을 받기 시작했다.

질 경영의 또 다른 측면에서는 글로벌 역량 강화를 위한 지역전문가제도도 이때 본격 가동되기 시작했다. 임직원의 국제화 감각 배양과 해외 경험을 주기 위해 1년간 해외로 보내 자율적인 프로그램으로 해당국가와 언어와 문화를 익히도록 배려한 제도다.

디자인 경영도 신경영의 대표적인 분야다. 이 회장은 1995년부터 디자인 경영을 강화하기 위해 IDS라는 디자인 연구소를 신설했다. 그리고 ISD 연구진에 과감한 신뢰를 보내주면서 삼성은 지난 2003년 처음으로 미국 산업디자이너협회 디자인상(IDEA)를 수상했다.


이 회장은 기업 조건에 사회 공헌이라는 새로운 개념도 접목했다. “기업이 투자해 연구 개발하고 제대로 직원을 대우해주고 교육하고, 사회에 공헌을 한 뒤 이익을 내야 삼성의 회사입니다. 이중 하나라도 하지 않은 채 이익을 내면 이익을 낸 게 아닙니다.” 이 회장이 지난 2002년 사장단 회의에서 내세운 삼성 브랜드를 달고 있는 기업 조건의 마지노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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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재경영으로 미래를 대비한다=이 회장은 질 경영을 전면에 내세우면서도 미래를 대비해야 한다는 판단에 그룹 전체적으로 인재경영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급기야 지난 2002년부터는 계열사별로 월별 핵심 인력 확보 실적을 챙기기 시작했고 또 연말 사장단 인사에서도 인재 영입 실적이 사장 업적 평가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다.

이건희 회장은 전자 사장단과 당시 구조본 임원들에게 “앞으로 나 자신의 업무 절반 이상을 핵심 인력 확보에 둘 겁니다. 핵심 인재를 몇 명이나 뽑았고 이를 뽑기 위해 사장이 얼마나 챙기고 있으며 확보한 핵심 인재를 성장시키는 데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를 사장 평가 항목에 반영하도록 하십시요.”라고 지시했다. 삼성은 이 회장의 이 같은 지시에 결국 지난 2002년부터 연말 사장단 업적 평가에서 30%를 핵심 인력 확보에 할애하기 시작했다.

여성 인력에 대한 중용도 이 회장의 인재경영 원칙의 근간이기도 하다. 여성 채용 인력 비중을 30%로 끌어올리면서 능력이 있지만 직장을 찾지 못한 여성인력들이 대거 삼성으로 이동해 삼성 신경영에 일조했다는 게 삼성 내부의 공통된 평가다. 최근 이 회장이 지역 전문가 선발 인원중 30%를 여성 인력으로 할당하라고 지시한 것도 맥을 같이한다.

1994년에 단행한 학력과 성별 철폐도 삼성의 양보다는 질 위주 인사 원칙의 대표적인 케이스다.

이 회장은 떠난 사람도 다시 잡는 용병술로 삼성의 변화를 일궈냈다. 과거 부회장을 지낸 당시 윤종용 상무의 경우 이병철 회장에게 연이어 받은 질책으로 현대전자로 자리를 옮겼다. 하지만 이 회장은 다시 당시 윤종용 상무를 다시 삼성에 불러들여 VCR 사업부를 정상화시키는 용병술도 보여줬다. 그 동안의 삼성과는 다른 인재 선발의 원칙이기도 하다.

◇강력한 추진력이 원동력=이건희 회장의 질 경영과 7ㆍ4 출근제 등 이른바 신경영이 초기부터 삼성 임직원들에게 녹아 들지는 않았다.

이 회장은 이 같은 현실에 사장단들을 모아놓고 의견을 들었다. 그러나 이때 한 사장은 이 회장에게 “회장님 아직까지는 양을 포기할 수 없습니다”라고 제안했다. 취임 초기부터 질 경영을 외치고 프랑크푸르트 선언을 통해 그토록 변화와 개혁을 외쳤지만 돌아온 대답은 엉뚱한 메아리였다. 이 회장은 이때 흥분한 나머지 커피잔위에 담겨 있던 티스푼을 10여명의 사장단들이 머리를 숙이고 있는 테이블위에 던지고 문을 박차고 나갔다. 이른바 티스푼 사건이다.

이 회장은 사내 방송도 신경영 전파의 중요한 수단으로 활용했다. 사내 방송팀이 카메라를 들고 직원들의 놀음 현장을 포착하거나 하는 비리의 장면을 고스란히 사내 방송에 방영토록 직원들의 개혁 의지를 다졌다.

휴대폰 화형식의 경우 이 회장의 질 경영 의지를 확인케 해 준 대목이었다.

이 회장은 불량 휴대폰을 전부 회수해 공장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모두 태워 없앨 것을 지시했다. 당시 화형식 현장에 참석한 이기태 사장은 이 사건에 대해 “제품이 불에 들어가는 것을 보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 교차했습니다. 그 불길을 과거와의 단절을 상징한 겁니다”라고 회상했다.















김상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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