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수인의 딜레마/이기형·정경부(기자의 눈)

경찰서 취조실에 용의자 두명이 잡혀왔다. 이들 둘은 최근 발생한 살인사건의 공범으로 지목된 자들이었다.담당형사는 이들을 각각 취조실로 불러 『이번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밝혀지면 적어도 10년 동안 감옥에 들어가 있어야 한다』며 『사건전모를 실토하면 5년만 형을 살도록 해주겠다』고 위협반 설득반으로 달랬다. 범인들은 고민에 빠졌다. 상대방이 범행을 자백할 경우 자신은 10년간 감옥살이를 해야 하는 처지가 되기 때문이다. 결국 며칠만에 이들은 각각 범행 일체를 자백해 징역 5년형을 받았다. 그런데 담당형사는 사건이 종결된 후 『자백이 없었다면 이들은 모두 무죄로 풀려날 가능성이 컸다』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는 후문이다. 최근 부도설이 난무하는 가운데 종합금융·할부금융·파이낸스 등 제2금융권 은 물론 은행들까지 가세, 부도설이 나도는 기업에 대한 여신을 한푼이라도 줄이기 위해 혈안이 돼 있다. 일제히 여신회수에 나설 경우 해당기업은 부도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각자 너무도 뻔히 알면서도 어쩔 수 없다고 한다. 무엇보다 다른 금융기관들의 행동을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 다른 금융기관들이 여신을 조금씩 회수하는 동안 해당기업이 부도처리되면 정부말만 믿고 점잔을 뺀 금융기관만 고스란히 덤터기를 쓰는 양상이기 때문이다. 최근 멀쩡한 기업이 별안간 생사기로에 몰리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금융기관들이 여신회수를 조금만 자제하면 일시적 자금압박에서 벗어나 회생할 수 있는 우량기업들도 예외가 아니다. 요즘 50대 계열기업군(재벌) 중 무려 20여개가 너나없이 부도설에 휘말려 있다는 소문이다. 「신용공황」설까지 나도는 등 금융가 분위기는 실로 흉흉하기 짝이 없다. 엔화강세로 외부여건이 호전됐음에도 국내경기가 회복되기는 커녕 나락으로 곤두박질할 것 같은 절박감을 보이고 있다. 모두가 살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생각해야 할 때다. 금융기관들은 공멸의 길을 자초한 죄인 두사람과는 달리 보다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을 도출할 능력이 있다. 신뢰가 어느 때보다 소중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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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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