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홍길 대장이 이끄는 ‘2005 한국 초모랑마(에베레스트의 티베트 이름) 휴먼원정대’가 우리나라를 떠난 지 77일 만인 지난 5월29일 초모랑마 정상 바로 아래 8,750m 지점에서 로프에 매달린 박무택 대원의 시신을 수습하는 데 성공했다.
“전 세계 산악인들이 에베레스트 정상을 오르기 위해 다니는 길목에 후배 무택이의 시신을 방치할 수 없다”던 산사나이 엄 대장은 약속을 지켰다.
사실 3주 전 카트만두 우체국 소인이 찍힌 초모랑마 정상배경의 우편엽서에 휴먼원정대원 모두의 사인이 담겨서 필자의 사무실로 날아왔을 때만 해도 휴먼원정대의 활동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는 줄 알았다. 소기의 목적인 3명의 동료 산악인 시신을 고국의 유가족과 모든 산악인의 품에 안겨주리라 기대했었다.
휴먼원정대는 악천후 속에서 여러 차례 어려운 고비를 넘기고 가파른 절벽에 싸늘한 주검으로 변한 동료 박씨를 찾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변덕스러운 날씨 때문에 박씨의 시신을 초모랑마의 돌무덤에 묻어두고 하산했다.
이번 휴먼원정대와 엄 대장의 리더십은 우리에게 많은 감동을 줬다. 히말라야 8,000m 이상의 고봉인 16좌를 모두 등정하면서 느꼈던 인간으로서의 절망과 희열 이상의 휴머니즘을 엄 대장과 휴먼원정대가 우리에게 보여줬다.
우선 이번 휴먼원정대를 기획하고 각계의 지원을 자발적으로 이끌어낸 조직력과 기상조건이 좋아지는 그날을 기다리면서도 솔선수범해 훈련하고 대원들을 독려하는 탁월한 리더십을 발휘했다.
또 마지막까지 수습한 시신의 운반을 시도할 것인지 돌무덤에 안치할 것인지에 대한 상황판단 능력도 탁월했다고 생각한다. 누구보다도 화장한 후 한 줌의 재라도 고국으로 가져오고 싶은 엄 대장이었지만 악화되는 기상조건과 다른 대원들의 안전을 고려해 돌무덤에 얼음덩어리 후배시신을 안치할 수밖에 없었던 엄 대장의 심정은 오죽했을까.
세상이 각박하고 어려우며 어수선할수록 휴먼원정대의 도전정신과 휴머니즘, 그리고 리더십이 더욱 돋보인다. 이번 휴먼원정대 뒷얘기를 안주삼아 엄 대장의 겸손함과 인간미를 맛볼 수 있는 소주자리가 그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