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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금리ㆍ저성장 장기화에 대비해 위기관리에 금융감독의 초점을 맞출 것입니다. 금융회사도 지난 10여년간 지속했던 외형 위주의 시장점유율 확대가 아닌 리스크 관리에 비상한 관심을 둬야 합니다. 동시에 기존 분야가 아닌 다른 곳에서 수익을 낼 수 있도록 새로운 성장동력 확보에 나서야 합니다."
31일 서울 플라자호텔에서 열린 '제3회 서경금융전략 포럼'에서 기조연설자로 나선 권혁세 금융감독원 원장은 향후 금융감독 방향에 대해 이같이 밝혔다. 권 원장은 이날 새벽까지 직접 원고를 다듬었다. 대내외 경제 여건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금융감독 수장으로서 금융계 최고경영자(CEO)에게 전하는 메시지이기에 그만큼 고뇌가 깊었던 것이다. 권 원장은 당초 예정했던 시간을 넘기면서까지 사상 초유의 장기불황 시대에 대비해 금융권이 준비해야 할 점을 조목조목 짚었다.
◇저금리ㆍ저성장 시대에 선제적 대응 나선다=권 원장은 앞으로 전개될 새로운 경제금융환경으로 저금리ㆍ저성장ㆍ고령화 세 가지를 꼽았다. 국내 금융계는 국제 경쟁력이 미흡하고 수익구조가 단순해 외부충격에 취약하기 때문에 이들 변수에 대비해 새로운 감독 방향이 필요하다는 것. 그는 "은행권은 경기부진 장기화에 대비해 연체나 부실채권을 조기에 정리하고 충당금 더 쌓아 미래 위험에 대비해야 한다"며 "현재 진행되고 있는 스트레스테스트 결과를 토대로 자본확충과 배당자제를 유도하겠다"고 밝혔다. 비은행 부문은 규모가 취약하기 때문에 리스크 관리를 더욱 강화할 방침이다. 권 원장은 "취약계층 대출 비중이 높은 비은행권은 신규 대출이 부실화될 가능성이 높아 대손충당금 적립 강화 등 손실흡수능력은 높이고 외형성장은 억제하겠다"고 말했다.
권 원장은 금융투자 업계에는 전문성 강화를, 보험업계에는 리스크 관리와 함께 신성장동력 확보를 주문했다. 저금리ㆍ저성장으로 기존 수익원의 성장이 정체될 것을 우려하는 것이다.
권 원장은 "보험업계는 저금리에 따라 예정이율보다 자산운용수익률이 더 낮아 역마진이 발생해 일본처럼 보험사가 파산할 수도 있다"고 경고하고 "저금리로 인한 보험사 손익영향 분석이 12월에 완결되면 이것을 토대로 대응전략을 모색하고 감독정책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는 보험사가 너무 안정적으로 자산을 운용하는 것에서 벗어나 해외 투자 등 새로운 투자처를 발굴해야 하기 때문에 해외 시장에 나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줄 계획"이라고 밝혔다.
◇가계부채 연착륙, 12월 '제2 금융 컨슈머리포트' 내놓을 것=권 원장은 우리나라 가계부채 건전성은 선진국에 비해 양호한 편이지만 질적인 면에서는 악화됐다고 진단했다. 신용등급 7등급 이하인 저신용자 대출 138조원이 전체 가계대출의 20%를 차지하고 이 중 금융기관 3개 이상에서 빚을 진 다중채무가 63%인 83조원에 달하기 때문이다. 특히 170만명에 달하는 소득 하위 20%이면서 경기민감업종에 종사하는 자영업자의 문제는 심각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권 원장은 "가계부채 문제 해결을 위해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프리워크아웃 등을 통해 상환부담을 경감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지만 한계가 있다"고 털어놓았다. 가계부채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부동산시장 안정화, 사교육비 등 생계비 부담 완화, 투자ㆍ내수촉진, 재정지출 확대 등 범정부적인 대응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권 원장은 특히 "한 달 소득이 100만원 안팎에 불과해 돈을 벌어 이자도 갚지 못하는 자영업자 등 취약계층 문제가 심각하다"며 "선진국에서는 이 정도 취약계층은 이미 실업자로 분류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들은 이제 금융지원이 아닌 재정지원을 통해 구제해야 하며 결국 사회안전망으로 흡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권 원장은 "과거에는 건전성 감독이 중심이었지만 앞으로는 소비자보호 중심으로 획기적으로 감독방향을 개선하겠다"며 "금융회사도 사회적 책임 강화 차원에서 금융소비자 보호에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당부했다. 연금에 이어 12월에 또 다른 주제의 소비자리포트를 발간할 계획과 함께 서민금융 상생지수 도입 등 금감원이 추진하는 소비자보호 제도를 소개했다.
◇기업 부실 사전에 막아라=권 원장은 이날 '제2의 웅진 사태'를 막기 위해 주채권은행의 역할을 강화하겠다는 뜻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경기불황에 따른 기업부실을 사전에 예방하기 위한 장치로 주채권은행이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권 원장은 "최근 일부 기업이 무분별한 확장에 나서면서 투자 실패로 상당히 많은 불신을 초래했고 대내외 여건을 감안하면 기업의 부실채권이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며 "주채권은행이 기업의 무분별한 투자를 감시하는 체계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금감원은 이를 위해 대기업 주채무계열 감시를 강화하고 정기평가 외에 수시평가를 활성화할 방침이다. 비주채무계열 기업에 대해서는 여신최다은행이 주채권은행의 역할을 수행하도록하고 향후 은행 검사시 은행이 이 역할을 제대로 했는지 평가할 방침이다.
권 원장은 중소기업의 자금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 동산담보대출 확대를 제시했다. 지금처럼 부동산시장이 어려운 시기에는 동산담보대출을 활성화해 중소기업의 자금조달 방법을 다양화해야 한다는 취지다.
권 원장은 "국내에 동산담보대출이 도입된 지 2달여 만에 2,500억원이 중소기업에 지원됐다"며 "중소기업 자금조달의 40%가 동산담보대출이 차지하는 미국에 비하면 아직 걸음마 단계이지만 장기적으로 이를 확대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