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초 미국의 재정절벽은 '꼬리위험'이 큰 변수로 통한다. 꼬리위험이란 일어날 확률은 낮지만 발생할 경우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것을 말한다. 수출로 먹고사는 우리 경제 입장에서는 대선이 끝나자마자 맞닥뜨리는 첫 위험요인이 될 공산이 크다.
전문가들은 임기 말 정부가 대대적인 경기부양책을 쓸 수는 없겠지만 내년 2월 차기 정부가 들어섰을 때 안정적으로 출발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모멘텀을 구축해놓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내년 경기전망이 극도로 불투명한 상황에서 정권 말을 이유로 마냥 손을 놓고 있기에는 글로벌 경제가 시시각각 급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 '시간아 흘러라(?)'=경제 정책의 컨트롤타워인 기획재정부는 중심을 잡는 역할을 해야 하지만 요즘 시장에서는 '정부가 없다'는 말이 나올 만큼 존재감이 약하다. 특히 정권 마지막 해에 반복되는 경기전망 수정이나 정책 변경은 이를 자초했다는 지적이다.
최근 정부가 '추경 불가론'을 고집하고 있지만 지난 7월 말만 해도 박재완 재정부 장관은 "추경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한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경기는 더 나빠졌는데 추경 편성 가능성은 오히려 사라진 셈이다.
박 장관은 세제개편안에서도 소득세 과표구간을 조정하려던 방침을 철회했다. 성직자 과세를 명문화하는 입법도 올해 말 시행령 등에 반영하겠다고 했다가 최근 들어서는 흐지부지되는 모양새다. 줄곧 감세론을 펴오던 박 장관은 1일 예산결산위원회에서는 새 정부에서의 증세론을 사실상 인정하기도 했다.
민감한 외환시장에 대해서도 박 장관은 외환건전성 3종 세트 강화 방안과 관련해 "연구개발(R&D) 단계"의 중장기 과제라고 밝혔다가 "준비를 서둘러야 한다"고 말을 바꿔 시장을 혼란스럽게 했다.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은 지난해 말만 해도 신중론을 펼치다가 올 들어서는 속도를 내 'MB정부의 치적 쌓기용 아니냐'는 따가운 시선을 받고 있다.
가계부채 대책도 시장을 오히려 헛갈리게 하고 있다. 대선 후보들이 앞다퉈 가계부채 대책을 내놓지만 정작 박 장관은 "과장된 측면이 있다"며 평가절하했다. 부처 간 엇박자는 더 심하다. '흔들리는' 사령탑 앞에서 부처 장관들은 이를 바로잡기는커녕 밥그릇 싸움만 계속하고 있다. 당장 하우스푸어 문제만 하더라도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재정을 투입할 시기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지만 권혁세 금감원장은 "은행권 공동이 대응해야 할 사안"이라고 정부 역할론을 강조하고 나섰다.
◇'부양 실탄' 아껴서는 안 돼=문제는 경기가 가라앉는 속도에 비해 정부의 정책의지가 현저히 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당장 12일 박 장관이 꺼낸 말은 현 상황에 대한 정부의 안이한 인식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지적이 팽배하다. 박 장관은 이날 대구 방문길에 "현 정부 임기 말 실탄(부양책)을 더 쏟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경기는 가라앉는데 임기 말이라고 대책을 꺼낼 수 없다는 납득할 수 없는 발언을 한 것이다.
배상근 전국경제인연합회 경제본부장은 "임기 말 정부정책에 한계선은 물론 있겠지만 국민들이 정부가 내버려둔다는 느낌을 갖는 것에는 문제가 있다"며 "리더십을 가지고 일관성 있게 챙기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물론 대선을 앞두고 정부가 쓸 실탄이 많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정부의 의지에 따라서는 제한적 범주에서도 얼마든 꺼낼 카드가 있다. 당장 기준금리만 하더라도 시장에서는 은근히 이달 금융통화위원회에서 추가로 낮출 것을 기대했다. 늦었지만 올해 마지막 금통위에서 추가로 인하하는 결단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부동산 대책과 관련해서도 정부가 추가로 내놓을 수 있는 것은 내놓아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취득세 인하 혜택이 연말이면 종료됨에 따라 그나마 살아나던 주택경기가 다시 급랭할 수 있다는 우려가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정부는 분양가상한제 등 국회에 제출된 법 통과를 바라보고 있지만 정부 차원에서 추가할 수 있는 정책조합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가격상승세가 꺾이지 않는 전세시장의 경우 새 정부가 자리잡은 내년 봄 이사철에 정책을 내놓기는 늦은 감이 있다. 함영진 부동산써브 부동산연구실장은 "최근 대선 후보를 중심으로 전월세상한제 등의 대책이 제시되는데 이는 오히려 전셋값 폭등을 가져올 수 있다"며 "정부가 임대주택 물량을 늘리는 데 초점을 맞춘 전월세 대책을 미리 마련해둘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