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 지도자들의 옹색한 변명

지도자들의 입에서 '상황이 변했다'는 변명이 유행처럼 나돌고 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초 기획재정부 장관을 지내며 MB노믹스를 진두 지휘했던 강만수 산은지주 회장은 지난 20일 한국경제학회 공동학술대회에서 허풍이란 비난을 받은 지난 대선의 '747 공약(7%대 경제성장률, 국민소득 4만달러, 7대 경제대국)'에 대해 "금융위기 때문에 (상황이 변해) 돌볼 겨를이 없었다"고 강변했다.

한명숙 민주통합당 대표는 23일 방송기자클럽 토론회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폐기와 재재협상을 주장한 배경에 대해 "협상을 시작하던 당시(2006년)와 상황이 크게 변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두 사람이 '모든 것은 변한다'는 진리를 공약(空約)과 말 바꾸기 논란의 돌파구로 삼은 것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그만큼 '예측 불가'였다는 항간의 평가를 고려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초등학교 시험 문제조차 예상할 수 없는 것이 당연지사고 매일 수십 건씩 터지는 교통사고 또한 예고 없이 찾아오는 현실에 비춰보면 '특별한 위기'라 한들 만만한 도피처가 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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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리를 전개시켜 강 회장과 한 대표가 서로의 변명을 수용하며 주고받다 보면 상황 타령이 얼마나 한심한 결과를 초래하는지 알게 될 것이다.

한 대표는 상황이 바뀌어 747 공약을 달성하지 못한 현 정부를 따뜻이 이해해줘야 한다. 강 회장도 국제 상황이 현저히 달라진 만큼 한미 FTA 폐기를 원점에서 검토하는 방안도 고려해달라고 이 대통령에게 건의해야 한다. '상황이 변했다'는 논리의 궁색함이 이렇다.

각각 정부 경제 정책 수장과 정권의 2인자인 국무총리를 지낸 두 사람이 천변만화하는 국제 경제 환경을 충분히 염두에 두지 않고 747이나 한미 FTA 같은 중대 사안을 시작했다면 그 자체로 엄청난 실책을 저지른 것이며 이는 필부도 비웃을 일이다. 리더의 '상황 변화론'은 정치 불신만 키우는 변명이 아니라 반성과 사과의 출발점이 돼야 한다. 작은 일도 책임지려 하는 지도자의 자세가 아쉽다.

손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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