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브라질 월드컵 예선전이 한창이던 지난 6월24일. 우리나라 원자력 업계에 뜻밖의 승전보가 날아왔다. 네덜란드가 국제 경쟁입찰로 발주한 '델프트 공대 연구로 출력증강 및 냉중성자 설비 구축사업(오이스터 프로젝트)'에 한국원자력연구원 컨소시엄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것. 원전ㆍ원자로 수출에 있어 중동ㆍ동남아를 벗어난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오이스터 프로젝트는 7월 계약 협상을 마치고 8월1일부터 사업에 착수한 상태다. 이달 22일 네덜란드 현지에서 착수회의를 개최하며 오는 11월 네덜란드 국왕의 방한 일정에 맞춰 계약 서명식을 진행할 예정이다. 계약금액은 약 1,900만유로(약 260억원)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종경 한국원자력연구원장은 "이번 국제입찰은 우리나라 컨소시엄이 프랑스와 독일ㆍ러시아 등 글로벌 원자력 컨소시엄과의 경쟁에서 앞섰다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며 "세계 최고 성능의 연구로가 존재하는 유럽지역에 국산 연구로 기술 수출에 성공한 것은 국내 원자력 기술력이 세계 최고 수준임을 확인한 셈"이라고 평가했다.
◇요르단에서 네덜란드까지=한국원자력연구원은 2009년 12월 요르단에 연구로 시스템을 일괄 수출한 것을 시작으로 올 6월 네덜란드 수주까지 지역을 가리지 않고 한국형 연구용 원자로의 수출 길을 뚫고 있다. 연구로가 우리나라의 효자 수출 품목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
특히 네덜란드 오이스터 프로젝트 수출은 앞으로 발주가 있을 네덜란드의 55㎿급 연구로 사업, '팔라스(Pallas) 건설' 수주에 유리한 고지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중대한 의미를 지닌다. 네덜란드는 2009년 팔라스 건설 우선협상대상자로 아르헨티나의 '인밥(INVAP)'을 선정했으나 2010년 초 사업예산 미확보 등의 이유로 입찰을 중단한 바 있다. 아직 사업 재개에 대한 공식 발표는 없으나 만약 재추진될 경우 계약가만 4억~5억유로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팔라스 건설뿐만이 아니다. 사우디아라비아·남아프리카공화국·아제르바이잔·네덜란드·태국·말레이시아 등 연구로 건설을 위한 구체적 계획이나 국가적 차원의 움직임이 있는 곳이 계속 늘고 있어 한국형 연구로의 수출 전망에 청신호가 켜지고 있다. 실제로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따르면 현재 전세계 240여기의 연구로 중 60% 이상이 30년 이상 노후화됐고 이들 가운데 대략 20기 정도가 조만간 새로 건설될 예정이다.
◇남아공·사우디 등 추가 수출 도전=사우디아라비아는 그중에서도 가장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나라다. 사우디아라비아는 NNL이라는 원자력연구원을 설립하고 20MW급의 연구로를 건설하기 위해 한국원자력연구원 연구원들과 공동으로 타당성 조사를 진행 중이다. 올해 말까지 타당성 조사 보고서를 작성ㆍ완료해 사우디 정부에 제출한다. 사우디 정부는 보고서 검토 결과에 따라 연구로 건설 여부와 활용계획 등을 확정할 방침이다.
한때 신규 연구로 건설을 추진했다가 잠시 보류한 남아프리카공화국도 주목할 국가다. 남아공은 노후화된 현 연구로를 대체하기 위해 2011년 동위원소 생산 전용 신규 연구로 건설 입찰을 개시한 바 있다. 한국원자력연구원도 컨소시엄을 구성해 기술제안서를 제출했으나 남아공 정부는 신규 연구로 사업을 중단하고 원자력발전 프로그램과 병행 추진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남아공 원자력연구원은 현재 당초 추진했던 동위원소 전용 연구로가 아닌 한국의 하나로와 같은 다목적 연구로에 대해 타당성 조사를 수행 중이다.
아제르바이잔은 5월 대통령이 직접 국가원자력센터 설립을 발표하면서 핵에너지 이용을 본격 추진할 계획임을 밝혔다. 이에 한국원자력연구원은 우리의 연구로 설계ㆍ운영에 대한 경험과 기술력을 정리해 아제르 방사능연구원에 제공했다. 아제르 측은 현재 연구로 건설과 관련해 한국 기술진과의 기술교류를 희망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태국ㆍ말레이시아 등은 기존의 소형 연구로 시설의 부품 노후화와 핵연료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는 동남아시아 국가다. 이들은 당분간 기존 연구로를 운영하겠지만 재정적 부담과 국민적 수용 문제를 해결하게 되면 신규 연구로 사업을 추진할 것으로 추정된다.
김 원장은 "아직 사우디를 제외하고는 구체적 계획이 알려지지 않고 있지만 각 나라들이 이른 시일 내 신규사업을 추진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앞으로는 해외 기술수출사업 입찰 참여 등과 같은 수주 활동은 특화된 민간의 별도기관이 전담하고 연구원은 전문기술분야를 맡아 추진하는 것이 경쟁력을 높이는 길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