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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秘錄, 김우중신화의 몰락] <2막 5장> 빅딜1: 삼성의 비밀

삼성, 빅딜 협상하며 대우 돈줄 죄고…

삼성-대우회장 웃고 있지만 김우중 회장은 몰락하는 순간까지 빅딜을 생존 카드로 삼았다. 냉정한 승부의 세계, 이건희 회장은 끝내 김 회장이 던진 동아줄을 잡아주지 않았다. 빅딜 협상을 진행하던 도중만난 두 사람, 웃음 뒤에 감쳐진 그들의 생각은 무엇이었을까. /서울경제 DB

"빅딜 반대" 삼성車근로자들자동차 빅딜은 처음부터'잘못된 게임' 이었다. 삼성차 근로자들은 빨간 띠를 두른 채 력하게 저항했고 마침내 빅딜을 무산시켰다. 상대편인 김우중 회장은 몰락의 비운을 맞이해야만 했다. /서울경제 DB

[秘錄, 김우중신화의 몰락] 빅딜1: 삼성의 비밀 삼성, 빅딜 협상하며 대우 돈줄 죄고… 김영기기자 young@sed.co.kr 삼성-대우회장 웃고 있지만 김우중 회장은 몰락하는 순간까지 빅딜을 생존 카드로 삼았다. 냉정한 승부의 세계, 이건희 회장은 끝내 김 회장이 던진 동아줄을 잡아주지 않았다. 빅딜 협상을 진행하던 도중만난 두 사람, 웃음 뒤에 감쳐진 그들의 생각은 무엇이었을까. /서울경제 DB 관련기사 • 秘錄, 김우중신화의 몰락 [전체보기] ㆍ"삼성車인수 대가 3조~4조 챙겨 그룹 자금난 해소" 섣부른 기대 ㆍ李회장 "대우전자 안받겠다" 반격 ㆍ金회장 '전자' 움켜쥔채 버텨 ㆍ정부·삼성·대우 '동상이몽' 고집 ㆍ'승지원 최종담판' 성사됐지만… 피를 부르는 사각의 링. ‘쓰러지는 상대에게는 더 이상 펀치를 날리지 않는다’는 것이 ‘게임의 룰’이다. 대우가 존망의 위기에 처한 99년 봄. ‘빅딜 게임’이 진행되는 도중 삼성은 흔들리는 대우에 펀치를 날렸을까. 카운터파트너의 비정한 승부수, 때린 사람은 없고 맞았다는 사람만 있었다. 99년 정초의 흥분이 채 가라앉기도 전, 정부의 빅딜 압박은 전방위로 진행됐다. 김대중(DJ) 대통령까지 전면에 나섰다. 1월6일 74번째 생일날, DJ는 비서관들을 점심자리에 모았다. 축하의 자리. DJ는 느닷없이 부진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구조조정에 대한 말을 꺼내며 간접화법으로 질타했다. “나는 평상시 대통령 혼자 뛴다는 말이 가장 불쾌해.” 몇 시간 후. DJ는 구본무 LG 회장을 불러들였다. 98년 6월16일, “대기업 한 곳이 거부해 빅딜이 안되고 있다”며 LG를 겨냥한 지 반년 만이었다. 구 회장이 청와대를 나온 후 LG는 통곡의 눈물을 흘렸다. 통합 반도체 회사의 경영권을 현대에 넘긴 것이다. 1월22일과 23일. 이번에는 이건희 삼성 회장과 김우중 대우 회장이 불려갔다. LG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는 듯 두 사람은 하루 전인 21일 만나 빅딜을 조기에 마무리하기로 합의한 상태였다. “대우가 빨리 (삼성자동차를) 인수부터 하세요. 정산은 나중에 하고.” 대통령이 보낸 마지막 경고였다. 야당인 한나라당은 빅딜을 ‘영남 기업 죽이기’로 몰아 세우며 정치 쟁점화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의령(이병철 삼성 회장의 고향)과 진주(진주 구씨가 세운 LG) 기업을 호남 출신인 DJ가 죽이려든다는 것이었다. 대통령의 옐로 카드. 행동대장은 강봉균 수석과 이헌재 금융감독위원장이 맡았다. "빅딜 반대" 삼성車근로자들자동차 빅딜은 처음부터'잘못된 게임' 이었다. 삼성차 근로자들은 빨간 띠를 두른 채 력하게 저항했고 마침내 빅딜을 무산시켰다. 상대편인 김우중 회장은 몰락의 비운을 맞이해야만 했다. /서울경제 DB 면담을 한 지 사흘 후인 1월25일. 대우는 ‘삼성차 조기 가동에 대한 대우의 입장’이라는 보도 자료를 냈다. DJ와의 면담에 대한 외면상 ‘성의’였다. “‘조건만 맞으면’ 선인수ㆍ후정산한다는 방침을 수용하겠다.” 대우가 내건 조건은 삼성차 인수에 따른 손실보상과 부채처리, 부품업체 처리, SM5 계속 생산 문제 등 네 가지였다. 그것 중 대우가 관심을 쏟은 것은 손실보상. 빅딜로 ‘한몫’ 챙기려는 의도가 역력했다. 하지만 조건 하나하나가 삼성의 생각과 따로 놀았다. 1차 돌격대장은 강 수석이 맡았다. 대통령 취임 1주년(2월25일) 전에 결과를 도출하겠다는 의지가 엿보였다. 1월31일 일요일 밤. 강 수석은 이학수 삼성 구조조정본부장과 김태구 대우 구조조정본부장을 청와대로 불렀다. 강 수석은 ‘선인수ㆍ후정산을 위한 기본 합의문’을 들이밀었다. 새벽녘까지 고성이 오갔지만 대우는 끝까지 버텼다. 다음에는 이 위원장이 나섰다. “삼성차를 먼저 정리하고 대우전자는 천천히 처리합시다.” 2월3일 오후, 이 위원장이 금감위 기자실을 찾았다. 얼굴에서 한층 여유가 묻어 나왔다. “한 시간 정도만 기다려봐. 합의문 하나가 나올걸. 설 연휴(14~17일)에 푹 쉴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오후4시. 석장짜리 문건이 뿌려졌다. ‘대우차의 삼성차 경영권 인수를 위한 협상절차에 관한 합의’라는 제목의 문건이었다. “9일 인수조건 제시, 15일 기본합의서(MOU) 체결. 인수 후 삼성차 조업 재개….” 때 이른 기대였을까. 예고된 파행이었을까. 약속한 15일이 넘었지만 협상은 제자리걸음이었다. 아니, 오히려 퇴보했다. SM5 판매문제는 물론이고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무엇보다 삼성을 당혹스럽게 한 것은 삼성차의 가치평가 방식이었다. 대우로서는 가치가 떨어질수록 삼성으로부터 넘겨받는 규모는 더욱 커지게 돼 있었다. 김 회장의 생사가 걸려 있는 것이다. 양측은 기본 합의서에서 미래수익을 현재 가치로 환산하는 현금흐름할인방식(DCF)을 택하기로 한 상황. 삼성차의 순자산 가치가 1조원이나 마이너스로 나온 상황에서 미래가치까지 계산할 경우 결과는 뻔했다. 대우의 계산대로라면 10년 동안 가동할 경우 손실규모가 10조원에 달한다. 때문에 대우는 삼성차를 인수하는 조건으로 아무리 못해도 3조~4조원은 받아야 한다는 계산이었다. 대우에 삼성차는 그룹의 자금난을 한꺼번에 털 수 있는 ‘황금알을 보장하는 거위’였다. 여기에 흑자를 낸 대우전자를 ‘프리미엄’을 얹어 삼성에 넘길 수 있다면…. 삼성이 호락호락 넘어갈 리 없었다. 대우의 전략을 이미 간파했다. 2월 하순, 삼성은 대우전자를 빅딜 대상에서 제외하는 안을 금감위와 대우에 제시했다. “대우의 그룹 문제가 사업교환과 연결되지 않도록 정부에서 대우에 대한 종합적인 해결방안을 모색해달라.” 반년 동안 이어져온 빅딜의 방향이 완전히 유턴하는 순간이었다. 삼성차-대우전자 맞교환이라는 원래의 그림은 사라져갔다. 삼성차 해결을 위한 ‘외톨이 빅딜’일 뿐이었다. 빅딜이란 용어조차 어울리지 않게 됐고 부실한 삼성차를 대우에 넘기는 인수합병과 다를 게 없었다. 시계추를 돌려 삼성과 대우가 빅딜에 합의한 98년 12월7일. 삼성은 당초 대우전자를 삼성차 손실을 막아줄 방패막이로 삼으려고 했다. 삼성차 부실이 드러나면 이 회장의 경영판단에 대한 착오가 드러나는 만큼 대우전자를 인수하면서 삼성차 손실액만큼 웃돈을 얹어줘 손실을 감추고 싶어했던 것이다. 하지만 99년 들어 삼성의 대우전자 인수팀이 평가한 결과는 달랐다. 대우전자의 재무구조는 악성이었다. 삼성에 대우전자는 더 이상 ‘협상의 카드’가 될 수 없었다. 김 회장으로서는 ‘돈 만들 찬스’를 하나 놓친 셈이었지만, 그 또한 쉽사리 내주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머릿속에는 삼성차라는 ‘황금알’만 맴돌고 있었다. 98년 말 빅딜을 중재했던 오호근 사업구조조정위원장의 회고가 흥미롭다. “처음 들었을 때 황당하더군요. 김 회장이 쌍용차를 인수할 때 장기로 우량부채를 넘겨받은 경험을 떠올린 것 같아요. 삼성차 인수로 유동성 위기를 벗어나려는 의도가 있었다는 것을 나중에 감지했습니다. 삼성도 골칫거리인 삼성차를 현금 투입 없이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이었죠. 다분히 정치적이고 자기 이해에 의한 의지라고 할까요. 정부도 구조조정을 보여주고 싶었을 테고. 전부 동상이몽이었지만….” 대우전자에 끝까지 애착을 갖고 있던 김 회장, 대우전자를 넘겨받아도 이득이 없다고 판단했던 이 회장. 빅딜은 구조조정을 피하기 위한 재벌들의 절묘한 수단으로 변질되고 있었다. 말씨름만 거듭하는 동안 감정의 골은 깊게 파여갔다. 대우는 98년 말부터 시작된 삼성과의 ‘돈 싸움’, 정확히 표현하면 삼성 금융계열사의 대우 여신 회수에 열이 올라 있던 터였다. 97년 3월 세간을 들끓게 한 삼성의 ‘신수종사업보고서’ 이후 잠잠했던 ‘삼성 음모론’이 수면위로 다시 등장한 것이다. 대우 금융계열사에 몸담았던 간부 K씨의 발언. “98년 12월 중순 빅딜 협상이 본격화하면서부터 삼성의 움직임이 이상했어요. 생명과 화재가 먼저 움직이더군요. 삼성이 회수해간 돈이 어림잡아 그룹 전체로 적어도 8,000억원, 많게는 1조원이 넘을 겁니다. 삼성이 회수한다니 다른 금융기관들이 가만있었겠습니까.” 김 회장은 한술 더 떴다. 그는 3월 중순 중견 언론인들과 만나 “삼성이 지난해 말 이후 석달 동안 1조7,000억원이나 회수해버렸다”며 분통을 터뜨리기도 했다. 물론 삼성의 입장은 전혀 달랐다. 삼성생명의 자금을 담당했던 한 관계자의 말은 이렇다. “생명이 기업에 대출해주는 여신이래야 5조~6조원에 불과했다. 어떻게 대우 한 곳에 그렇게 많은 돈을 몰아줄 수 있겠느냐. 그리고 삼성도 상도의라는 게 있다.” 은밀하게 이뤄지는 자금의 흐름. 그 정확한 진위를 알기는 힘들다. 하지만 협상이 진행되던 순간 삼성이 다른 한편에서 대우의 숨통을 조여 가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당시 빅딜에 관여했던 한 시중은행 임원의 발언은 다소 중립적이다. “삼성이 제스처를 쓴 것은 확실합니다. 협상에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려고 했겠지만 실사과정에서 대우의 재무구조를 속속들이 알아차리게 된 것이지요. 당시는 외국 애들도 (여신을) 조이던 때였습니다. 하지만 빌려준 돈을 몽땅 거둬들이는 식의 무모한 행동은 없었다고 봅니다.” 기업 M&A는 협상이 진행될수록 상대방에 치부가 속속들이 노출되는 게 통례. 삼성차만을 떼내는 모양으로 빅딜이 귀결되는 상황에서 삼성 계열사들이 대우의 고리를 끊는 것은 예고된 수순이었다. 당하는 대우로서는 배신감을 느꼈겠지만. 빅딜이 진척을 보이지 않고 삼성의 자금회수가 이뤄지던 순간 대우는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았다. 하루 수천억원씩 만기가 돌아왔다. 금감위에는 자금상황이 한계에 다다랐다는 보고서가 계속해서 올라갔다. 해외법인들의 사정은 눈에 띄게 나빠져갔다. 당시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김 회장이 이 즈음 대통령을 만나 집요하게 자금을 요청했다”고 떠올렸다. 급기야 스탠더드앤푸어스(S&P)는 국내 대기업 중 1~2개가 파산할 가능성이 있다는 끔찍한 전망을 내놓았다. ‘설마, 대우!’, 금융시장에서는 탄식이 흘러나왔다. 몰락은 빠른 속도로 다가왔다. 벼랑 끝으로 밀려가던 김 회장, 그에게는 돌파구가 필요했다. 바로 이때 대우가 그토록 학수고대했던 소식이 들려왔다. 이건희와 김우중, 기다리던‘승지원 담판’이 성사된 것이다. ⇒(다음 편에 계속) 입력시간 : 2005/06/23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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