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업체는 "과거 정부 압박으로 적절한 시점에 가격을 올리지 못해 실적이 크게 악화된 적도 있었다"며 "새 정권에서도 유사한 사례가 예상되는 만큼 새 정부 출범 전에 서둘러 가격 인상을 단행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해 새 정부 출범 때마다 겪은 '학습 효과'임을 강조했다.
22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최근 가격 인상 후 가장 많은 비판을 받고 있는 품목은 밀가루다. CJ제일제당ㆍ동아원ㆍ대한제분ㆍ삼양사 등 국내 주요 제분업체들은 지난달 초부터 지난 20일까지 도미노 식으로 제품 가격 인상을 단행했다. 밀가루 가격 인상률이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크게 웃도는 8~9%인데다 밀가루 값 인상으로 제과ㆍ제빵ㆍ라면류는 물론 외식업계 음식 메뉴 가격까지 줄줄이 올리는 파급 효과가 큰 만큼 업계에는 엄청난 비난의 화살이 쏟아졌다. 특히 최근 원화가 강세를 보이고 원자재 가격이 하락 곡선을 그리는 시점이어서 이들에 대한 비판의 강도는 더욱 거셌다.
하지만 관련 업체들은 억울하다는 입장을 나타내고 있다. A제분업체의 한 관계자는 "밀가루의 원재료인 원맥 가격은 6월 말부터 급등하기 시작해 지난해 초 대비 30~40% 이상 오른 수준"이라며 "원재료 가격이 40% 오른 상황에서 환율은 5~6% 정도 떨어졌기 때문에 원화강세에 따른 가격 인하 효과는 미미하다"고 해명했다. 이 관계자는 "환율 효과는 제조 원가에 곧바로 적용되는 게 아니다"라며 "현재 환율 하락분은 올해 중순이나 돼야 적용이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밀가루 가격 인상률(8~9%)이 높아보이지만 원재료 상승분을 가격에 충분히 반영하기에는 여전히 부족한 수준이라는 게 해당 업체들의 볼멘소리다.
최근 간장ㆍ된장 등의 가격을 올린 샘표식품ㆍ대상FNF 등은 물론 소주ㆍ위스키ㆍ전통주까지 일제히 가격을 올린 주류업계도 가격 인상 결정에 대해 비슷한 해명을 내놓았다. 원재료인 대두 가격이 지난해 6월부터 크게 오른데다 전기요금, 수도료, 포장재 가격 등까지 줄줄이 올라 가격 인상을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다는 주장이다. B주류업체 관계자는 "원자재와 포장재ㆍ물류비 등이 오르면서 원가부담이 가중돼 최소한의 인상 요인만 반영해 출고가를 올렸다"고 말했다.
C식품업체 관계자는 "업체들이 정부 눈치를 보지 않고 가격정책을 펼 수 있다면 갑자기 큰 폭으로 제품 가격이 오르는 일이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면서 "짧게는 1년, 길게는 2~3년씩 못 올리고 있다가 가격을 올리게 되니 전방위적인 물가 인상이 발생하는 것"이라며 오히려 정부의 물가정책을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