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유자산이나 수입에 비해 신용카드를 과도하게 사용했더라도 이것만으로 파산법상 면책불허가 사유인 낭비로 보기는 어렵고 채무자의 입장을 감안한 철저한 심리가 요청된다는 이유로 원심을 파기한 대법원의 첫 결정이 나왔다.
이는 우리나라 신용불량자가 400만명에 육박하면서 개인파산제도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아진 가운데 면책불허가 사유인 낭비를 엄격히 해석, 가급적 파산자들에게 재기의 기회를 줘야 한다는 법원의 의지를 담고 있어 주목된다.
대법원 3부(주심 윤재식 대법관)는 16일 “카드사용이 과다했다는 이유만으로 낭비를 했다고 본 것은 잘못”이라며 “김모씨가 낸 파산선고 불허가에 대한 재항고 사건에서 면책을 불허가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대전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결정문에서 “면책불허 사유인 낭비는 채무자의 지위ㆍ직업ㆍ자산ㆍ영업상태 등에 비춰 사회통념을 벗어난 과다한 소비적 지출행위”라며 “그러나 파산법상 낭비는 형사처벌의 대상이 될 수 있으므로 신중한 판단을 요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김씨가 신용카드를 사용, 가계자금 대출 등 1억5,000만여원의 채무를 지고 있는 점은 인정된다”면서도 “이 채무는 김씨의 낭비보다는 S정보통신 대표이사로서 회사 운영자금을 지출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고 볼 여지가 많은 만큼 별다른 심리도 없이 낭비행위라고 판단한 원심은 잘못”이라고 덧붙였다.
전국 법원의 면책 인용건수는 지난 2001년 80건, 2002년 245건, 2003년 974건으로 늘어났고 인용률도 연도별로 각각 67.7%, 77.2%, 89.5%로 2년 새 20%포인트 이상 상승, 면책을 통한 채무자 회생에 대한 법원의 의지가 커지고 있음을 반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