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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년 1월7일 경성주식현물취인소 앞. 한 일간지 지면을 두고 세인 간 실랑이가 벌어졌다. 원인은 앞서 1925년 말에 진행된 이른바 '연초 주가 맞히기 대회'로 사람들이 "당선인이 누구냐"며 때아닌 신문 쟁탈전을 벌인 탓에 경성주식현물취인소 앞에서 작은 소동이 빚어졌다.
당시는 1차대전 종료 후 국내 증시가 1920년까지 치솟다 내리막길을 걷던 시절. 관동대지진 여파로 경취주가는 물론 미두가가 6년째 이렇다 할 움직임을 보여주지 못했다. 하지만 연초 예상 주가를 적어 낸 사람만 수천명에 이를 정도로 증시에 대한 투자자들의 열기는 뜨거웠다.
다만 인천 기미(기한이 있는 쌀 선물)와 경취(경성현물취인소 주식), 대신(대판증권취인소 신주) 등 세 개 부문에서 연초 주가를 정확히 내다본 투자자는 아무도 없었다. 주최 측도 "적중자가 없어 가장 근접한 수치를 제시한 사람을 당선인으로 꼽겠다"며 유감을 표시할 정도였다.
이러한 투자자들의 열기는 이듬해인 1927년 1월7일 주가 맞히기 대회에도 이어졌다. 하지만 결과는 180도 달라졌다. 연초 주가를 적확히 예측한 사람이 전무했던 1926년과 달리 적중자가 기미 부문 8명, 대신주 3명, 경취주 14명으로 크게 늘었다.
결국 주최 측은 검토를 거친 뒤 추첨을 통해 당첨자를 선정했다. 당시 당첨자의 면면을 보면 주식이나 미두가 얼마나 인기였는지를 알 수 있다. 이들이 인천은 물론 합천ㆍ고양ㆍ개성ㆍ장수ㆍ경선 등 다양한 지역에 분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저(抵)성장 기조와 엔저로 국내 증시가 차갑게 식고 있다. 증시가 박스권에 갇혀 소폭 등락만 거듭하는 정도. 특히 2년여간 거래 대금이 절반으로 급감하면서 국내 증권사들도 실적 저하라는 위기에 빠졌다. '증시 부진→개인 투자자 이탈→거래량 감소'의 악순환만 거듭하는 등 국내 증시가 장기 침체라는 어두운 터널을 지나고 있다.
이벤트가 필요하다. 100년 전 열렸던 주가 맞히기 대회처럼 떠나간 투자자들의 발길을 돌려놓을 묘책이 절실하다는 뜻이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라고 누군가 비웃을 수도 있다. 하지만 소(투자자)를 잃었다고 외양간(증시) 고치기에 소홀하다면 다시 일어서기는 기대하기 어렵다.
/위문복 하나대투증권 e-Business지원부 부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