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 다시 생각해 보는 포르노

정인진

유학생들이 한 번쯤 가 보라고 권해 찾아간 영화관은 후미진 골목 안에 있었다. 중간부터 보기 시작한 영화의 화면에서는 남녀가 엉켜 애처롭게 끙끙대고 있었다. 영화가 끝나고 입장료만 버렸다 싶은 순간에 불이 켜졌다. 놀란 것은 그때 본 관객들의 면면이었다. 십여명도 안되는 그들은 허름한 옷차림의 노동자들, 나이 들어 걷기도 힘들어 보이는 노인들, 아랍계 이주자로 보이는 사람들이 전부였다. 가엽다는 생각부터 들었다. 프랑스 마르세유에서 가봤던 성인전용 영화관의 이야기다.

우리 형법상 배우자 있는 사람과의 성관계를 벌하는 간통죄는 엄존하고 있고 성매매 역시 전면적으로 금지돼 있다. 2010년에 제정된 성폭력범죄의처벌등에관한법률은 형법상의 모든 성범죄에 대해 형을 높여 놓았다. 성범죄는 폭력적인 성을 내용으로 하는 강간ㆍ추행의 죄와 성 풍속에 관한 죄를 포괄하는 개념인데 양자를 달리 취급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있다.

그런데 이름과는 달리 위의 법률엔 음화 반포ㆍ제조, 공연 음란 등 성 풍속에 관한 죄도 규율 대상이 돼 있다. 모두들 걱정하는 폭력적인 성범죄는 어떻게 해야 줄어들 것인가. 강력한 처벌 말고도 사회학적 접근으로 문제를 해결할 방도가 필요한 것은 아닐까.


오늘날 배우자 없는 이가 남의 배우자 아닌 사람과 위력ㆍ위계ㆍ폭행ㆍ협박이라는 행위를 하지 않고 또 돈이나 재산상 이익을 대가로 주지 않고 성적 욕구를 채울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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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가구가 늘고 있다. 자라나는 세대, 만혼의 시대에서 미처 결혼하지 못한 젊은이들의 성적 욕구도 죄는 아니다. 배우자를 잃었거나 배우자가 있어도 사실상 다른 방도가 없는 노인도 넘쳐난다. 이들이 처벌 대상이 될 죄를 저지르지 않고 사람이 가지는 기본적 욕구를 달랠 수 있는 길은 어디에 있는가.

한편에서는 무거운 처벌과 비난이 적의로 눈을 번득이고 있고 다른 한편에서는 '야동'이 일상용어가 돼 있는 현실을 보면 딱하다. 누구도 명분론으로는 처벌과 금지에 반대하지 못하면서도 복잡다단한 성 문제를 해결할 방도를 내놓지는 못한다.

그런데 포르노물의 처벌 문제에 있어서는, 혹시라도 범죄 따위는 꿈도 못 꾸면서도 자기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소외계층이나 사회적 소수자의 딱한 처지가 외면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성은 인간의 떨칠 수 없는 기본적 욕구다. 이 문제에 관해 솔직하고 실효적인 논의를 할 수는 없을까. 아동을 상대로 하거나 폭력적인 성을 내용으로 하지 않는 포르노가 처벌 대상이 아닌 외국의 예를 참작하면서 말이다. 참고로 포르노의 유해성 여부에 관해 미국의 존슨위원회(1970년)와 미즈위원회(1986년)는 상반된 견해를 내놓았고 영국의 윌리암스위원회(1977년)는 무해하다고 결론을 낸 바 있다. 덴마크에서는 포르노가 해금되면서 성범죄가 3분의1로 줄고 매춘업소가 타격을 입었다는 보고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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