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수필] 불황과 이혼과 자살

전쟁이 나면 여자가 괴롭고 불황이 오면 남자가 괴롭다는 말이 있다. 전쟁 때 남자는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하니 큰 위험은 있어도 일상적 고민은 차라리 덜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쟁의 무질서 속에 스스로를 지키고 가정을 꾸려가야 하는 여자는 고생이 뼈에 와 닿는다는 의미다.불황이 되면 괴롭기는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직장을 잃고 집안의 어려운 사정을 목격해야 하는 남자들이 더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 아침마다 습관적으로 직장에 나가다가 어느날 갑자기 갈 데가 없어지는 상황, 많거나 적거나 간에 월말에 월급을 받아 오던 것이 끊기는 상황을 상상해 보라. 남자가 그 지경에 빠지면 스스로도 비참해지지만 더 괴로운 것은 가족을 비롯한 주위의 시선이다. 처음엔 모두들 위로를 하지만 차츰 시간이 지나면 주위의 차가운 시선을 느낀다 한다. 가정 내에서도 급격한 권력이동이 일어나 남자는 별 볼일 없게 된다. 이런 상황이 오래되면 반드시 무슨 탈이 난다.「우리 집만은 그러지 않을 것이다」고 장담하겠지만 사람이 하는 일은 오십보 백보다. IMF 한파가 닥친 98년에 우리나라에서도 이혼과 자살이 크게 늘었다. 이혼은 어느 때나 있는 것이지만 요즘의 이혼 양상은 나이 많은 층으로 번지고 있고 여자 측의 요구가 많다 한다. 지난해에 갈라진 부부가 12만4,000쌍이나 되는 데 그 중 20년 이상 산 부부가 무려 13%나 된다. 10년 전만 해도 5%가 되지 않았다. 이혼사유도 경제문제가 많다. 또 남자들이 실직으로 집안에 박혀 있으니 잔소리도 심하고 옛날엔 못 보던 약점도 보여 더 정이 떨어진다는 점도 한몫 한다고 한다. 아침마다 힘차게 나가 꼬박꼬박 월급봉투를 가져오던 때와는 다르게 남편을 보는 눈이 달라진 것이다. 남편은 더욱 자격지심이 들어 난폭하게 되니 이혼이 많을 수밖에 없다. 먼저 직장에서 당하고 그 다음 집에서도 당한 남자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처음엔 술로 달래다가 최악의 상황에 달하면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된다. 지난해 한국의 자살자는 1만2,500명이나 되는 데 이 중 남자가 9,000명이다. 여자의 2.5배다. 사업실패로 인한 자살도 600명에 이른다. 정녕 약한 자는 남자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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