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명상하는 영상 예술가' 빌 비올라 개인전

덧없음에도 되풀이되는 삶… 우린 어디로 가는가

'도치된 탄생''물의 순교자' 등 인간 감정변화 기교없이 표현

백남준 제자로 한국과 인연도

빌 비올라의 영상작품 '조우(The Encounter)' /사진제공=국제갤러리

#1. 웃옷을 벗긴 채 고개를 떨군 남자가 어둠 속에 서 있다. 심한 매질이라도 당한 듯 온몸에 핏자국이 선명하다. 그 끈적이는 붉은 액체는 시각적으로, 질척거리는 소리를 내며 청각적으로 온몸을 자극한다. 곧이어 검은 액체, 그 다음은 붉은 피, 우유, 그리고 깨끗한 물이 시간차를 두고 남자의 온몸을 휩쓸고 솟구친다. 두려움의 시간을 겪은 남자는 결국 더욱 강건하게 우뚝 섰다. ('도치된 탄생', 8분22초 영상)

#2. 두 사람이 걸어온다. 떨어져 나란히 걸어오던 두 여인이 잠시 만나 뭔가를 건네주고는 스쳐 지나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간다. ('조우',19분19초 영상) 이글거리는 지열(地熱)과 먼지를 뚫고 멀리서 두 남녀가 걸어와 신기루 속 환상의 실체를 확인하더니 각자의 길로 나아간다('가녀린 실',28분31초). 사막을 건넌 어머니와 아들은 모래폭풍을 견뎌냈다('조상(Ancestors),21분41초 영상)


덧없다. 이게 삶인가? 혹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되풀이되고 마는 지겨운 반복, 이것이 인생인가?

'명상하는 영상 예술가'인 세계적 미디어아티스트 빌 비올라(64)의 대규모 개인전이 5일 삼청로 국제갤러리에서 개막했다.


뉴욕 태생의 비올라는 1995년 베니스비엔날레에서 미국관 대표작가로 선정된 것을 계기로 세계적 작가 반열에 올랐다. 미디어아트의 선구자 백남준의 제자라는 점은 한국과의 남다른 인연이다. 이번 전시에는 최근작 7점과 이전 주요영상작품이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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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갤러리 K3관에 설치된 '도치된 탄생'은 격렬한 변화를 겪으며 어둠에서 빛으로의 승화, 즉 깨달음의 단계를 은유한다. 이야기 구조 없이 그저 묵묵히 반복되는 영상이지만 끌어 올려지는 액체 이미지는 구구한 설명 없이도 더 높은 곳으로의 도약을 짐작하게 한다.

걸어오고, 왔다 가기를 반복하는 '조우','조상' 등 비올라의 작품은 기교를 쏙 뺀 단출한 화면을 통해 관객을 명상의 세계로 빨아들인다.

1분 동안 고속촬영한 인간 군상이 보이는 감정 변화의 모습을 10분으로 늘려 느리게 보여줌으로써 "느리게 가는 시침(時針)처럼 그대로 유지되는 감정처럼 보이게"하는 식의 표현법이 이른바 '빌 비올라 표'다.

근원적 질문과 언어를 초월한 공감, 반복을 통한 깨우침, 불교의 윤회사상까지 아우르는 종교적 분위기 또한 그의 특기다.

K2관의 '물의 순교자'는 지난해 5월 런던 세인트폴에서 선보인 '순교자' 4점 연작인 생매장 당한 남자, 손목이 묶여 매달린 여자, 의자에 묶인 남자, 발목이 묶인채 거꾸로 끌어올려지는 남자 중 4번째 작품이다. 흙,바람,불,물이 각각 이들을 고통스럽게 괴롭히는 장면에 대해 작가는 "오늘날 대중매체가 우리를 타인이 겪는 고통의 증인으로 만는다"라며 "순교자들의 행위를 통해 현대인의 '행동하지 않음'에 경종을 울린다"고 말했다.

작품 속 등장인물에게 고통을 부여하고 이를 극복하는 과정을 담아내는 작가는 "삶과 존재의 이면에 더 심오한 무언가가 있기에 고통도 있어야 하고 이에 대한 구원도 필요하다"고 이야기 한다. 과연, 우리는 구원받을 수 있을까? 전시는 5월3일까지. (02)735-8449


조상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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