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증권업계 전설'의 퇴장


“새로운 아이디어를 가진 새 인물들이 와서 증권업을 다시 한번 이끌 때입니다. 저는 물러날 때가 된 것이지요.”

스스로를 ‘영원한 증권맨’이라 불렀던 김지완(66ㆍ사진) 하나대투증권 사장이 22일 주주총회를 끝으로 퇴임했다. 김 사장은 이날 주총 이후 기자들과 만나 “최근 증권사 CEO 세대교체가 예전 국제통화기금(IMF) 위기 때와 비슷한 것 같다”며 “이제는 나도 물러날 때가 됐다”고 말했다.


김 사장은 “증권가에서 젊은 CEO로 세대교체가 되는 것은 그만큼 주변 상황이 어렵다는 뜻”이라며 “젊은 CEO들은 아이디어가 많은 만큼 잘 해나갈 것”이라며 증권가 ‘맏형’으로서의 덕담을 잊지 않았다.

김 사장은 지난 1973년 부국증권 입사이후 38년간 증권업에 몸담아 왔다. 원래는 한일합섬에 입사를 했지만 한일합섬이 부국증권을 인수하면서 증권업과 인연을 맺게 됐다. 당시 한일합섬의 월급은 재계 최고 수준으로, 상여금도 두둑해 한번 상여금을 받으면 아파트 2채를 살 수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나 김 사장은 증권업에 매력을 느껴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부국증권으로 자리를 옮기게 됐다는 후문이다.


업계가 치열한 경쟁으로 날이 갈수록 각박해지고 있지만 김 사장에 대해서는 경쟁사들도‘업계 맏형’, ‘업계의 전설’이라며 추켜세우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그만큼 김 사장의 무게감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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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부국증권 사장(1998년)과 현대증권 사장(2003년), 하나대투증권 사장(2008년) 등 12년째 CEO를 지냈다. 이 때문에 그에게는 ‘직업이 CEO’라는 말이 따라 다닌다. 임원 생활을 따지면 더 길다. 36살에 첫 임원(영업이사)를 단 이후 퇴임때까지 31년간을 임원으로 지냈다. 국내서는 흔치 않은 기록이다.

일찍 임원을 달고 CEO로 장수한 것은 그가 지닌 특유의 부지런함과 스킨십 때문이라고 분석하는 사람들이 많다. 김 사장은 해마다 전국 100여개 지점을 일일이 다 돌아보기로 유명하다. 일주일에 2~3일, 하루에 3~4곳을 방문하는 강행군을 펼친다. 김 사장이 현장에서 답을 찾으려는 현장경영을 중시하다 보니 ‘김 사장을 만나려면 사장실이 아니라 지점에 가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다. 김 사장이 발로 뛴 결과 하나대투의 브로커리지부문이 4년동안 40% 급성장했다.

그는 하나대투 임원과 부서장들과 스킨십 차원에서 매주 금요일 오전 6시 여의도 주변 5Km를 함께 뛰기 시작했는데, 이렇게 달린 거리가 4년간 1,000Km나 된다고 한다.

조깅과 함께 산을 좋아하는 김 사장은 ‘불수도북’으로도 유명하다. ‘불수도북’은 서울 북쪽의 불암산과 수락산, 도봉산, 북한산 40Km를 무박 2일로 중주하는 것인데 현대증권 사장시절부터 매년 해 오고 있다. 김 사장은 이날 주총이후 기자들과 만나 “증권업은 오늘부터 종강이고, (매주 금요일에 하던) 조깅은 당분간 휴강한다”며 “앞으로는 산을 오르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는 퇴임후에도 얼마간 하나대투 본사 건물에 작은 사무실을 두고 고문으로 역할을 할 계획이다. 김 사장은 “사무실은 가급적 작게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다”며 “4~5평 정도 되고 소파가 3개 정도 놓이는 공간이지만 부국증권때부터 알고 지내던 내 고객과 만나면서 수익률이 어떻게 변했는지 살펴볼 예정”이라고 말했다.

김 사장은 자서전 집필도 준비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오후 열린 김 사장 퇴임식에서 직원들은 클레이 인형과 사진액자를 선물로 마련하고, 김 사장의 4년간의 행적을 담은 사진과 영상을 담은 특별영상을 함께 보며 고별의 아쉬움을 나눴다.


김홍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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