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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는 지난해 임원 인사에서 승진인원을 20%나 줄였다. 전자의 '감량경영'이 시행되자 실적이 좋았던 삼성화재 등 금융사들마저 줄줄이 감량 대열에 들어섰다. 연초 성과급 역시 예년만큼 풍성하지 못했다.
그리고 26일에는 6년 만에 임원에 이어 일반 직원들의 임금을 동결하기로 했다.
삼성의 한 고위관계자는 이 같은 일련의 흐름을 '이재용식 변화의 버전 2.0'과 연결시켜도 무방하다고 전했다.
최근 급격하게 진행되고 있는 인수합병(M&A)과 외연 확장작업과 별개로 그룹 전반의 '안방살림'은 느슨함을 버려야 한다는 이재용 부회장의 의지가 묻어나 있다는 것이다.
사업전략 측면에서는 10년 후를 바라보는 미래지향적 경영을 펼치되 이는 최근 실적 고공행진 과정에서 지나치게 비대해지고 나태해진 조직 분위기를 일신하는 동시에 현장 중심의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더욱이 스마트폰 판매 부진으로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30% 이상 급감하는 등 경영상황이 어려울 조직 전반의 군살을 빼야 한다는 뜻이다.
◇사업전략은 공격적…안방살림은 긴축으로 긴장감 높여=삼성전자의 이번 임금 동결 방침은 지난해 하반기 부문별 운영비 절감대책이 시작됐을 때 이미 예고됐다는 시각도 나온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3·4분기 영업이익이 전 분기보다 3조원 이상 급감하며 그룹 전체에 위기감이 퍼졌다. 당시 스마트폰 부진으로 실적부진의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한 무선사업부부터 바로 허리띠 졸라매기에 나섰다.
임원들은 비행시간 10시간 미만의 해외출장시 일반 직원들과 마찬가지로 이코노미석을 이용했고 출장비용은 20% 줄였다. 일반 임직원들의 출장·숙박비도 같은 비율만큼 삭감했다. 비용 절감 분위기는 다른 사업부와 경영지원부서까지 퍼지면서 전체적으로 판매·관리비 등 영업활동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비용이 이전보다 절반가량 줄어든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숙박비용을 맞추려다 안전하지 못한 시설에 묵는 등 일부 문제점이 제기되면서 일부 부서의 출장비용은 예전 수준을 회복했지만 여전히 다수 부서의 출장·판관비는 긴축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4·4분기 삼성전자의 영업이익이 5조원대를 회복하며 최악의 상황에서는 벗어났다는 안도감이 일기도 했지만 올해 세계경기가 여전히 불투명한 만큼 매출과 영업이익 등 각종 경영지표에서 뚜렷한 안정세를 보일 때까지는 이 같은 위기경영이 이어질 것이라는 게 삼성 안팎의 시각이다.
업계에서는 한동안 실적 고공행진을 이어온 삼성전자가 지난해 부진을 계기로 경영 전반에 쇄신할 기회를 얻게 됐다는 해석도 나온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이 부회장이 경영 전면에 등장한 시기에 삼성전자의 실적 악화가 겹치면서 내실경영에 무게를 둔 것으로 보인다"며 "이 부회장 체제가 안정기에 접어들 때까지는 이 같은 경영 기조가 유지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인력 재배치·조직 슬림화 통해 효율성 제고=삼성의 군살 빼기는 임금 동결과 소모성 경비 축소 등 비용 절감에 국한되지 않는다. 지나치게 비대해진 조직과 인력을 정리하고 효율성이 떨어지는 자산을 매각하는 등 전방위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갤럭시 효과'로 실적 고공행진을 이어가면서 삼성전자의 임직원 수는 2011년 22만1,726명에서 2013년 28만6,284명으로 2년 새 30% 가까이 급증했다. 하지만 2013년 연간 35조원이 넘던 영업이익이 지난해 25조원으로 30% 넘게 급감하면서 조직·인력 슬림화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이에 삼성전자는 지난해 무선사업부 소프트웨어 인력 500여명을 소비자가전 부문으로 전환배치하고 본사 지원인력 15%(150명)를 수원사업장 등 현장으로 재배치하는 등 조직 슬림화를 단행했다. 또 연말 조직개편에서 무선사업부 사장 3명을 물러나게 하고 미디어솔루션센터(MSC)는 아예 없앴다. 해외법인에도 메스를 댔다. 무선사업 중심의 미국 댈러스 소재 삼성전자텔레커뮤니케이션즈아메리카(STA) 법인을 가전사업 중심의 미국 뉴저지 소재 삼성전자아메리카(SEA) 법인으로 단일화해 시너지 효과를 노리고 있다.
효율성이 떨어지는 자산 정리에도 나섰다. 지난해 12월 영국 런던에서 운영하던 플래그십 매장을 전격 철수한 데 이어 다른 지역에 비해 TV·스마트폰 판매실적이 크게 부진한 일본 본사 사옥도 매각하기로 했다.
이 같은 군살 빼기는 신규 채용에도 영향을 미쳐 지난해 하반기부터 채용 규모가 동결되거나 축소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삼성은 상·하반기로 나눠 각각 4,000~5,000명의 대졸 신입사원을 뽑았지만 올해 채용 규모는 다소 줄어들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은 과거에도 과감한 사업 구조조정과 적극적인 신사업 발굴을 통해 위기를 극복하고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왔다"며 "이번에도 조직·인력 슬림화를 통해 내실을 다지면서 공격적인 M&A와 투자 확대를 통해 외형과 경쟁력을 높여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