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산은ㆍ정책금융공(公) 통합 사실상 무산

재결합 땐 한미FTA 위반<br>협의체 신설안 유력 검토<br>대외금융 업무는 수은 일원화 유력


정책금융기관 재편 논의의 핵심이었던 산업은행과 정책금융공사 간 통합이 사실상 무산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대내정책금융을 담당하는 기관 간의 인위적 통합을 추진하지 않는 대신 기관 간 업무중복을 조율하는 '협의체'를 신설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기 때문이다. 통합 논의가 현체제 유지로 가닥이 잡힘에 따라 정책금융 재편 논의도 급물살을 탈 것으로 전망된다.

3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쟁책금융기관 역할 재정립 태스크포스(TF)는 산은과 정책공사 등 대내정책금융기관의 업무중복 문제를 정책금융기관협의회를 신설해 조율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숱하게 거론돼온 산은과 정금의 통합, 정책금융지주회사 설립 등 기관 간 인위적 통합 대신 상호경쟁을 통한 정책금융 활성화에 초점을 맞추겠다는 것이다.

TF에 참여하고 있는 한 관계자는 "산은이 정금과 결합할 경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역진방지 조항에 위배돼 국제분쟁에 휘말릴 소지가 높다"면서 "정부가 두 기관 간의 인위적 통합은 사실상 어렵다는 쪽으로 결론을 내릴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역진방지 조항은 한번 개방하면 다시 되돌릴 수 없도록 하는 것으로 래칫(rachet) 조항으로도 불린다.


정부는 지난 2008년 산은 민영화를 전제로 대내정책금융 기능을 담당하는 정책금융공사를 따로 설립했다. 하지만 글로벌 위기가 터지면서 민영화는 중단됐고 새 정부는 산은의 정책기능을 강화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꿨다. 이 과정에서 산은과 정금의 대내정책금융 업무중복 논란이 불거졌고 두 기관 간 통합 문제가 정책금융 TF의 핵심 의제로 떠올랐다. 하지만 TF 내에서 산은의 정책금융 강화가 한미 FTA의 역진방지 조항에 위배될 소지가 있고 정금과의 통합은 더욱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의견이 제기된 것으로 알려졌다. ☞10면으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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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대내정책금융기관의 경우 통폐합보다는 현체제를 유지하면서 상호경쟁을 유도하는 쪽으로 추진할 방침이다. 기관 간 업무중복 문제는 정책금융기관 대표들로 구성된 정책금융협의회를 새로 만들어 해결해나갈 계획이다. 협의회에는 산은과 정금 외에 신용보증기금ㆍ기술보증기금ㆍ중소기업진흥공단 등이 참여한다.

이와 함께 수출자금 지원 등 대외정책금융 업무는 수출입은행을 중심으로 일원화하는 방안이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수은ㆍ산은ㆍ정금ㆍ무역보험공사 등 각 기간에 흩어져 있는 해외금융 업무를 수은 한 곳으로 일원화하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수은은 산은과 정금의 해외정책금융 업무를 흡수하고 무보의 중장기보험 업무 일부를 가져올 가능성이 높다. 수은을 제외한 나머지 기관들의 조직축소가 일정 부분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수은과 산은ㆍ정금은 해외자원개발 관련 지원, 해외 플랜트 PF 등 해외금융 지원을 놓고 동일한 프로젝트에서 경합을 벌이는 등 비효율성을 초래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수은과 무보도 설립취지는 다르지만 녹색산업 지원, 문화 콘텐츠 분야 지원, 글로벌 강소기업 지원 등 유사한 업무에 대한 중복지원 문제가 제기돼왔다.

세계무역기구(WTO)와 한ㆍ유럽(EU)의 보조금 규정에 발목이 잡혀 무산될 위기에 놓였던 선박금융공사 설립 문제는 명칭변경 등 보조금 시비를 피할 방법을 검토하고 있다. 공사를 통한 선박금융 지원은 특정 산업에 대한 보조금으로 해석될 수 있어 통상마찰을 유발할 수 있다.

대내·대외정책금융 역할 재정립 방향에 가닥이 잡힘에 따라 공회전했던 TF 논의도 속도를 낼 것으로 예상된다. TF는 정책금융기관 중복 해소와 효율적 운영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지난 4월 출범했지만 이렇다 할 진전을 보이지 못했다. 지난달 신제윤 금융위원장이 직접 나서 "이해 당사자가 많아 골치가 아프다"고 밝힐 정도였다. 최근에는 3주 연속 TF 회의가 연기되는 등 좀처럼 해법을 마련하지 못했다.

서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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