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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오후 2시 폐막을 앞둔 '제25회 서울 국제 임신 출산 육아용품 전시회(이하 베페)'가 열리고 있는 서울 삼성동 코엑스홀. 북적이는 인파 속에 손 잡고 온 젊은 부부, 부풀어 오른 배를 감싸안고 천천히 발걸음을 떼는 임부도 다수 보였다. 그런데 매장을 돌다 보니 '육아'와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50~60대 중장년층이 전시장 곳곳을 누비고 있었다. 손녀와 함께 아이용 칠판을 구경하거나 배부른 딸 대신 양손에 물건이 가득 든 쇼핑백을 들고 다니는 노신사도 자주 눈에 띄었다.
이날 임신 7개월인 딸의 손을 잡고 전시회장을 방문한 최금주(59)씨는 "사위가 해외 출장 중이라 딸이랑 같이 왔다"며 "손주가 태어나면 아무래도 내가 봐주는 일이 많을 것 같아 육아용품을 구경하러 왔다"고 말했다 .
친정엄마만 '황혼 육아'에 힘을 쏟는 것은 아니었다. 부천에서 왔다는 안모(65)씨는 직장에 다니는 며느리의 부탁으로 전시회장을 찾은 경우다. 며느리가 사전에 인터넷으로 출력해 준 행사장 지도를 들고 다니던 안씨는 "아들·며느리가 일요일에도 일해야 하는 상황이라 내가 대신 손자 장난감과 오메가 성분이 든 유아용 영양제를 사가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날 오후 3시에 추첨하는 경품 이벤트까지 꼼꼼하게 챙기며 젊은 엄마 못지않은 육아 실력을 자랑했다.
'황혼 육아' 시대가 무르익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2012년 말 맞벌이 가구는 약 510만 가구에 달하며 맞벌이 가정의 영유아 2명 중 1명은 조부모가 키우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부모가 육아를 전담하는 경우는 대략 250만명 정도로 추산된다.
이 같은 경향은 베페 베이비페어를 관람하는 이들의 수로도 증명되고 있다. 실제로 지난 2011년 20회 베페 전시회 당시 총 관람객수는 12만6,855명이었으나 2012년 22회에는 11만명 대, 지난해 8월 24회에는 10만명대로 줄어든데 비해 50대 이상 관람객은 매년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다. 2011년 4,313명이었던 50대 이상 관람객은 2012년 4,800명, 지난해 5,339명으로 매년 10%가량 늘어나면서 전체 관람객에서 중장년층이 차지하는 비중도 2011년 3.4%에서 2013년 5.0%로 높아졌다.
'황혼 육아'가 더욱 주목 받는 이유는 중장년층의 경제력 때문이다. 특히 아기 침대, 수입 유모차 등 수백만원을 호가하는 상품들은 조부모가 손주를 위해 선물하는 경우가 많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베이비페어 관계자는 "손주를 위해 베이비페어에 들르는 조부모들은 육아업계의 새로운 큰손"이라며 "한 번에 수백만 원, 수천만 원을 결제하는 VIP 고객들은 대개 중장년층"이라고 귀띔했다.
이에 따라 업체들도 '황혼 육아' 추세에 발맞춘 제품을 속속 출시하고 있다. 이번 전시회에 참여한 150개 업체 중 20%가 조부모를 위해 편의성과 특수기능을 추가한 제품을 선보였을 정도다.
유아 전용침대 브랜드 리엔더를 판매하는 인테니아이의 권재현 이사는 "브랜드의 고객 절반 이상이 조부모들"이라며 "한번 사면 신생아부터 8세까지 사용할 수 있는 침대라서 출산 선물로 많이 구입한다"고 말했다.
육아를 전담하는 중장년층이 유달리 선호하는 제품들도 따로 있다. 바로 포대기와 면 기저귀다. 젊은 엄마들은 아기띠를 많이 쓰는데 비해 예전의 육아에 익숙한 할머니들은 여전히 포대기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보령메디앙스 관계자는 "몇년 전만 해도 포대기가 아기띠에 밀려 곧 사라질 줄 알았지만 여전히 잘 팔린다"고 전했다. 무루에서 출시된 '땅콩 기저귀'는 면 소재 기저귀를 선호하는 할머니 관람객들에게 인기가 높다. 무루 판매원은 "이 제품은 세탁기에 돌려도 되기 때문에 면 기저귀를 찾는 조부모들이 좋아한다"고 말했다.
조작이 편리한 육아용품들도 조부모들 사이에 인기다. 반자동 유모차인 '페도라 S7'를 비롯해 용량 눈금이 표기된 MNW 이유식 냄비, 적정 수유온도를 확인해주는 토미티피 센서티브 스마트 젖병 등이 대표적인 제품으로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