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유럽 현금 밀반출 기승

재정위기국 증세·탈세규제 강화탓<br>프랑스·이탈리아 등 적발사례 급증… 과자봉지·자녀 주머니에 숨기기도

지난 7월 프랑스 파리 북역. 벨기에행 열차 승강장에서 한 남성이 초조하게 열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윽고 세관원이 그에게 다가와 물었다. "요즘 현금밀반출이 기승을 부리고 있어 잠시 검문을 하겠습니다."그는 "내가 누구인지 아느냐. 레지옹도뇌르(프랑스 최고의 훈장)을 받은 사람"이라며 저항했다. 하지만 그의 가방에서는 세관신고 의무액(1만유로, 약 1,434만원)을 훨씬 넘는 35만유로의 돈다발이 나왔다. 전 이라크, 튀니지 주재 프랑스 대사이기도 한 보리 부아용(43)은 현지 언론에 대서특필되는 수모를 당했으며 국립사법세관 서비스(NJCS)의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부아용 전 대사처럼 유럽 내 공항이나 역에서 현금을 밀반출하려다 적발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5일 전했다. 유럽 재정위기국이 증세를 단행하고 스위스 등 조세회피처에서도 탈세규제가 강화되자 세금을 내지 않으려는 유럽인들이 자산을 현금으로 직접 빼돌리려다 잇달아 적발되고 있다.


현금밀반출이 가장 많이 적발된 곳은 정부가 '부자증세'를 천명한 프랑스다. 올 1ㆍ4분기에 적발된 액수는 1억300만유로(약 1,476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6배에 달했다. 그러나 이 같은 적발규모는 전체 밀반출액의 5%에 불과한 것으로 프랑스 세관은 파악하고 있다. 재정위기국인 이탈리아 세관도 올 들어 최근까지 1억2,400만유로를 적발해 지난해 전체 기록을 넘어섰다. 스페인에서도 현재까지 유로화로만 1,750만유로가 적발됐다. NYT는 현금을 짐가방에 넣는 것은 기본이고 케이크박스나 과자봉지, 심지어 자녀의 주머니에도 숨기는 등 수법도 기상천외하다고 전했다.

전쟁 등 국가위기 때나 후진국에서 빈번히 일어나는 현금밀반출이 선진국이 즐비한 유럽에서 기승을 부리는 것은 재정위기 이후 각국이 세율을 올리고 고강도 세무조사를 실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스위스도 지난달부터 미국과 은행고객 금융정보를 공유하며 은행 비밀주의를 사실상 포기해 이런 경향을 부채질하고 있다.


현재 유럽연합(EU)에서는 국경을 넘을 때 1만유로 이상의 현금을 지참할 경우 신고하도록 돼 있다. 2007년부터 돈세탁과 탈세를 막기 위해 도입한 제도다. 적발되면 최장 6개월 동안 돈을 돌려 받지 못하며 적발금액의 최소 25% 이상이 벌금으로 매겨진다. 세관은 돈의 출처에 대한 조사권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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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한 언론인은 "이제 유럽인들은 계좌를 신고하고 고율의 세금을 감수하거나 아니면 돈을 숨겨야 하는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고 말했다.

이태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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