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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품이 피부에 잘 흡수되도록 돕는 섬유를 개발해 마스크팩을 만들어보면 어떨까요"
2년 전 기능성 섬유 기업 벤텍스의 섬유과학연구소에 입사한 홍성연 주임은 "만들어보고 싶은 제품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무심코 "마스크팩을 만들어 보면 좋겠다"고 답했다. 땀을 흡수하고 배출하게 하는 원리를 잘만 활용하면 화장품을 피부에 잘 스며들게 하는 섬유도 만들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물론 주로 스포츠 의류에 쓰는 기능성 섬유를 개발ㆍ생산하는 벤텍스에서 마스크팩을 개발해보고 싶다는 아이디어는 다소 뜬금 없어 보였다. 그런데 2년이 지난 지금 홍 주임은 마스크팩 개발을 마무리했고, 현재 마케팅팀과 판매 시기와 방식을 논의하고 있다.
냉감ㆍ발열ㆍ통풍ㆍ흡습 등 다양한 기능을 갖춘 스포츠 의류 소재를 개발하며 경쟁력을 입증해온 벤텍스 섬유과학연구소가 혁신의 장으로 거듭나고 있다. 그간 쌓아온 섬유개발 노하우를 의류 이외의 다양한 제품에 접목해 섬유기업의 경계를 뛰어넘겠다는 것. 노용환 부장은 "섬유과학연구소는 땀을 냉매로 하는 냉감섬유, 땀을 열원으로 바꾸는 발열섬유는 물론 스트레스 지수를 낮추는 바이오 메디컬 섬유 등 기존 섬유의 경계를 뛰어넘는 제품을 개발해왔다"며 "이제는 스트레스 방지, 아토피 완화 등에 탁월한 바이오 물질을 섬유에 접목해 가구, 가전제품, 화장용품 등으로 발전시킬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2004년 설립된 섬유과학연구소는 첨단 섬유기업 벤텍스의 성장을 이끈 요체로, 10여년간 드라이존, 아이스필, 메가히트 등을 개발하며 특허등록 68건, 출원 15건의 실적을 거뒀다.
2011년부터는 바이오 메디컬 분야에서도 성과를 내고 있다. 근지구력을 향상시키고 활성산소 발생을 줄여주는 효과가 입증된 안티 스트레스 섬유 파워클러를 출시한데 이어 현재는 아토피 완화용 섬유인 스킨닥터의 해외임상을 진행 중이다.
연구소는 매년 10여가지 프로젝트에 착수해 한 가지 이상을 성공시켜 하반기 신제품 발표회를 진행한다. 각 프로젝트는 연구소 내 3개의 유닛에서 나누어 진행한다. 예컨대 '태양열을 막아주는 소재를 연구해보자'는 과제가 주어지면 관련 논문부터 모든 자료를 수집하고 후보 물질군을 정해 연구에 들어간다. 노 부장은 "태양열을 막아주는 소재를 찾기 위해 자동차용 UV차단 필름을 만드는 공장까지 찾아가 핵심 소재를 파악하고 온 적도 있다"고 귀띔했다.
좋은 물질을 구하더라도 내구성이 없어 세탁을 하고 나면 사라지는 경우가 많아 결국 폐기되는 경우도 수두룩하다. 시제품 생산까지 완료했지만 대량 생산능력을 갖춘 공장이 없어 버려진 경우도 있다. 2010년 땀을 흘리면 직물 구조가 변형돼 원단이 몸에서 떨어지는 '수분 반응에 의한 자기제어형 구조변화 섬유'를 개발했고 세계적으로도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이를 생산할 수 있는 기술을 가진 생산자가 국내외 어디에도 없었다.
벤텍스는 이에 굴하지 않았다. 노 부장은 "연구 결과는 연구소 내에 차곡차곡 쌓이고 언제라도 막혔던 부분을 해결하게 되면 다시 개발 작업이 재개된다"며 "마스크팩을 비롯해 버려질 뻔 했다가 빛을 보게 된 프로젝트도 많다"고 밝혔다.
연구소의 저력은 제품 기획부터 연구개발, 심지어는 마케팅ㆍ영업까지 마다하지 않는 연구원들에게서 나온다는 게 벤텍스 측 설명이다. 노 부장은 "벤텍스에서는 입사 후 1년만 지나면 자기만의 아이템을 가지고 기획ㆍ개발도 하고 마케팅 지원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피실험자가 되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연구실 한 가운데 놓인 러닝머신에서 달리며 땀 흡수 속도를 측정하기도 하고 체형체력측정기를 통해 바이오 메디컬 섬유의 효과를 가늠해보기도 한다. 연구소의 맥가이버로 통하는 조기환 과장과 박은호 과장은 직접 섬유 테스트기를 만들기도 했다. 국내에 비해 기능성 섬유 성능 측정 기술이 앞선 일본에서 평가기기들을 직접 살펴보며 원리를 익힌 후 응용해 만든 설비들이다.
최아영 경영전략본부 이사는 "창조경제라는 표현이 참 모호하지만 우리 연구원들을 보면서 섬유산업의 미래를 개척하는 창조경제의 역군들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강한 자부심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