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원자재 시장, 그 중에서도 원유시장이 또 들썩이고 있다. 치솟는 가격이 수면 위 현상이라면 시장 구조의 변화는 물밑 ‘메가 트렌드’다. 세계 경제 태풍의 눈으로 다시 떠오르고 있는 국제 원유 시장 변화의 양태를 들여다본다. 한국 수입 분량의 80%를 차지하는 중동산 두바이 유가가 지난 28일 배럴당 42.53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난해 대비 무려 42%나 급등한 가격이다. 미 서부텍사스산중질유(WTI) 등 다른 원유들도 마찬가지 모양새다. 고통의 시간이 시장 구조 변화와 맞물려 시작됐다. 내달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감산 가능성, 미국과 유럽 한파 등은 최근 유가 급등의 미시적 원인이다. 보다 근본적으론 악화되는 수급 상황 속에 갈수록 증대되는 시장의 구조적 취약성에 따른 변동성이 수반하는 현상이다. 증대되는 시장의 구조적 취약성 에너지의 정치화와 자원확보 경쟁이 시장의 불안정을 크게 증폭시키고 거기에 국제 석유시장에 유입되는 투기 자금이 늘면서 유가의 변동성이 크게 증가되고 있다. ▦자원 확보경쟁이 에너지 시장 불안정성 증폭=지난해 국제 유가 50달러 시대가 시작되면서 세계는 사실상 에너지 확보 전쟁에 돌입, 유가 변동성을 더욱 키우고 있다. 특히 세계 최대 유전 지대인 중동의 정세 불안에 따라 미 중 일 등 강대국들이 사활을 건 석유쟁탈전에 나서며 이들의 움직임 자체가 가격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세계최대 석유 소비국인 미국은 에너지 안보를 외교통상정책의 최우선 과제로 삼고 이라크외 러시아 석유를 도입하는 안과 서아프리카 산유국들을 공급 처로 확보하는 새로운 안을 추진하고 있다. 세계 제2의 소비국으로 떠오른 중국의 움직임은 자원을 둘러싼 세계 세력지도를 근본적으로 바꿔 놓고 있다. 러시아의 부상이 또한 큰 변수다. 사회주의 체제가 붕괴되면서 석유생산시스템에 큰 타격을 입었던 러시아는 선진기술 도입과 석유사 민영화를 통해 생산효율을 끌어올려 세계 최대 산유국으로 급부상했다. 앞으로 러시아 영향력은 갈수록 커지며 원유의 가격 변동에 새로운 축이 될 전망이다. ▦더해가는 시장의 투기판 양상=지난해 국제원자재 시장이 유례없는 파동을 겪은 가장 큰 원인은 핫머니, 국제투기세력 들로 인해서다. 특히 헤지펀드들이 주범이다. 블룸버그 통신은 지난 23일 원유 시장에 국제 투기 자금들이 올들어 다시 몰려들 조짐을 보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수급난을 배경으로 투기자금이 단기차익 뿐 아니라 중장기적으로 원유가 상승세를 점치고 다시 시장을 기웃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달러 약세를 예상한 투기자금이 보유중인 달러 자산을 팔고 상품을 사들이려는 측면도 있다. 이들로 인한 가격 왜곡은 현물-장기 선물간 혹은 WTI-두바이산간 가격차를 벌이며 원유가를 띄우고 있다. 헤지펀드수는 사상 유례없이 늘고 글로벌 과잉 유동성에 마땅한 투자처가 없는 상황을 감안할 경우 앞으로 원유시장에서 투기 세력에 의한 가격 변동성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이 같은 흐름에는 헤지펀드외 투자처를 다양화하려는 연기금들까지 가세하는 추세다. 이 같은 상황에서 유가의 방향성에 투자하는 이른바 ‘스프레드 베팅’(spread bet) 등 온갖 투기적 기법들이 등장, 국제원자재시장이 금융시장과 같은 투기판 양상으로 발전할 소지를 높이고 있다. 시장 주도권의 이동 OPEC과 석유메이저 중심의 글로벌 석유 공급 시스템의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이는 유가 통제 중심축의 분산과 시장내 독과점적 현상이 줄어드는 대신 시장 통제가 더욱 복잡해질 개연성을 의미한다. ▦점점 줄어드는 OPEC 영향력=“OPEC 카르텔은 올해 중대한 시험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이코노미스트지가 내린 올해 전망이다. 잡지는 지난해 원유가격이 요동친 이유는 OPEC의 농간이 아니라 투기적 요인으로 치솟는 원유가를 조절할 시장 장악력이 결여됐기 때문으로 분석했다. 실제 많은 전문가들은 OPEC의 시장 장악력이 앞으로 수년간 계속 약화될 것이란 전망을 내놓고 있다. 최대 요인은 러시아다. 당장 금년부터 경제 성장을 위해 러시아가 OPEC에 대해 비공식적으로 제시한 수출 제한 약속을 지킬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진단이다. 세계 제2의 원유 매장국 이라크도 변수다. 이라크의 OPEC 탈퇴 가능성은 적지 않다. 무엇보다 미국내 실세 ‘네오콘’(신보수주의자)들의 희망사항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OPEC 견제와 같은 외부 요인 외 OPEC 자체의 문제도 있다. 회원국간 결속력이 약화되는 데다 최근 유전개발을 위한 투자를 게을리함으로써 OPEC의 전체 원유생산능력이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다. 산유국들은 오일 달러 홍수를 맞고 있지만 유전개발 투자는 뒷전으로 밀며 국제원유시장에서 스스로의 지위를 떨어뜨리고 있다. ▦‘빅 5’등 기존 메이저 아성도 ‘흔들’=국제 원유시장의 절대강자 석유메이저, 그 중에서도 ‘빅 5’(엑손모?로열더치셸 BP 셰브론텍사코 토탈)의 아성이 흔들거리는 것도 시장이 맞은 새로운 변화다. 즉 중국 러시아 인도 및 중동의 일부 국영업체들이 똘똘 뭉쳐 기존의 메이저들에 도전장을 내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 특히 중국 러시아 인도는 정부가 에너지 안보 차원에서 국영업체를 적극 지원하고 있다. 이들 국가는 고유가로 국영 석유업체의 재무구조가 좋아지자 채권 발행을 늘리면서 유전개발과 유통망 확보에 나서고 있다는 것이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의 최근 보도다. 한편 시장의 구조적 변화는 아니지만 최근 유가 급등락의 큰 원인은 달러 약세다. 금리 역시 향후 시장 판도에 큰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최근의 달러 약세는 대부분의 산유국들에게 원유판매대금의 실질 구매력을 유지하기 위해 유가 상승을 유도하는 결과로 나타나고 있다. 반면 지난해 유가 급등이 세계적인 초저금리로 인해 상품시장에 돈이 넘쳐 났기 때문인 점을 감안하면 금리 인상이 시작된 올해는 반대의 현상이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 이래 저래 금년 원유시장은 크게 흔들릴 전망이다. 시장 변동성을 잔뜩 키우며 세계 경제 태풍의 눈이 될 확률이 그 어느 해 보다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