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흔들리는 한국의 캐시카우] (3부-2) 기능인력 부족 '비상'

국내외서 인력 빼가기 극성… 수주 거절도


#1. 지난 6일 부산의 한 호텔에서 국내 9개 조선업체 인사 책임자들이 긴급 회동을 가졌다. 업계간의 인력 빼내기가 도를 넘었다고 판단해 특단의 대책을 세우기 위한 자리였다. 이날 회의에서는 이대로 가다가는 공멸할 수밖에 없다며 스카우트 전쟁을 자제하기로 다짐했다. #2. 중견 조선소의 설계 파트에 근무하는 김모(35) 과장은 입사한 지 7년이 지났지만 현재 부하직원이 단 두 명에 불과하다. 해마다 신입사원이 들어오지만 본사가 지방에 있는데다 일이 너무 고되다는 이유로 1~2년을 채 버티지 못하고 회사를 그만두기 때문이다. 사상 최대의 호황을 맞은 국내 조선업계가 극심한 인력난으로 비상이 걸렸다. 일감은 산더미처럼 쌓여 있지만 일손이 턱없이 부족하다 보니 수주물량을 아예 거절하는 사태까지 빚어질 정도다. 조선업의 특성상 고용효과가 어느 산업보다 크지만 젊은 층의 생산직 기피현상과 힘든 근로조건이 맞물려 업체마다 인력 확보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여기다 중국 등 경쟁국에서 숙련인력을 앞다퉈 빼가다 보니 이래저래 어려움은 커질 수밖에 없다. ◇설계인력 몸값 ‘천정부지’=중견 조선업체인 A사는 지난해 조선기술의 핵심인 설계 파트에서 근무하던 70~80명의 인력 가운데 절반이 다른 회사로 자리를 옮겨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특히 대리나 과장 등 중간층 인력이 대거 회사를 떠나는 바람에 신규 선박 수주는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A사 인사 관계자는 “입사 1년차 직원에게 대리로 승진시켜주고 연봉도 1,000만원까지 올려주겠다고 유혹하면 넘어가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냐”며 한숨을 쉬었다. 회사 측은 올해 초 일단 30여명의 신입사원을 뽑기는 했지만 제대로 회사를 다닐지, 일이 언제나 손에 익을지 걱정이 태산이다. 대형 조선소에 20년째 근무해온 박모씨는 얼마전 중국 조선업체의 한국 측 대리인이라고 자처하는 사람을 만났다. 그는 박씨에게 월급을 두 배로 올려주고 집도 공짜로 주겠다며 정식으로 스카우트를 제의했다. 박씨는 요즘 몇몇 회사동료들과 함께 중국으로 옮겨가는 방안을 심각하게 고민 중이다. 최근 한국을 무서운 속도로 추격하고 있는 중국 입장에서는 한국 기술자를 데려가면 부족한 인력을 채우고 고급기술까지 빼내가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기능인력 유출도 심각=한 중견 조선업체는 지난해 하반기에만도 현장 기능인력의 30%가량을 후발 조선업체들에 빼앗겼다. 후발업체들은 주요 관리부서의 부서장급을 고액으로 스카우트한 뒤 이들을 동원해 기능인력을 대거 빼내갔다. 결국 이 회사는 올해 예정했던 신규 고용인력 230~250명 중 200명을 상반기에 앞당겨 채용하기로 했다. 이 같은 인력난은 도미노 현상을 일으켜 조선소 협력업체들에 그대로 전해지고 있다. 쓸 만한 인력이 보다 나은 조건을 찾아 속속 조선소로 빠져나가다 보니 공장을 꾸려나가기에 급급할 정도로 인력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이다. 떠나는 직원을 막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며 구인광고를 통해 문의해오는 인력을 붙잡기 바쁜 상황이라는 게 협력업체 관계자의 전언이다. 오병일 조선기자재공업협회 이사는 “협력업체 입장에서 쓸 만한 인력을 뽑아 키워야 하는데 시간이나 자금적인 여유가 없다”면서 “상당수 기자재 업체는 기존 인력을 풀가동하며 현상 유지하는 데 바쁘다”고 말했다. 그나마 부산이나 울산 등 대도시에서는 노동시장이 유연해 신규 채용에 여유가 있지만 진해나 통영 등 대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은 사람 구하기가 하늘에 별따기다. 조선업계의 한 관계자는 “젊은 인력들은 자녀교육이나 편의시설 등이 잘 갖춰진 지역을 선호해 부산 인근의 녹산단지도 기피할 정도”라고 말했다. 오는 2010년 완공될 거가대교는 승용차로 3시간 걸리던 거리를 50분대로 단축할 수 있어 인력고용에 숨통이 트일 것이라고 거제도 인근 조선업체들은 기대하고 있다. ◇인력 고령화 심화=조선업계 관계자들은 요즘 중국 조선소를 찾아가면 현장인력이 대부분 20~30대 젊은 층이라는 데 깜짝 놀라곤 한다. 국내 조선소의 경우 젊은 인력이 조선업종 진출을 꺼리다 보니 현장인력의 고령화 현상도 갈수록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 현재 조선 부문 기능직의 평균 연령은 42.0세로 2005년의 41.7세에서 높아졌다. 대선조선의 경우 48.1세에 이른다. 조선업체 선발주자인 한진중공업과 현대중공업도 각각 46.8세와 45.4세로 40대 중반을 넘겼다. 전문가들은 현장인력의 나이가 많을수록 변화 적응능력이 떨어져 생산성을 떨어뜨릴 수 있으며 신속한 공정 처리가 어려워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이 같은 고령화 추세는 과도한 협력사 의존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지난해 말 현재 빅3 조선소의 인력은 모두 6만312명. 이중 협력사 직원은 2만8,915명으로 절반에 육박한다. 조선협회 9개 회원사의 조선 부문 인력은 모두 9만3,385명이며 이중 사내 협력사 직원은 4만8,863명에 이른다. 기능직의 경우 사내 협력사 직원의 비율은 62.1%를 웃도는 수준이다. 홍성인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작업현장이 동일할 경우 하도급 인력의 위화감과 불만이 커질 수 있으며 이는 품질이나 생산성 등 작업 성과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기능인력 연간 3,000명 부족"
퇴직자 재고용등 불구 턱없이 모자라 조선소별 지체양성 교육장 설립 시급

대우조선해양은 지난 2월 정년퇴직자 20명을 재고용했다. 올해부터 도입한 정년퇴직자 재입사제도 덕분이다. 해마다 정년퇴직자가 늘어남에 따라 전문기술 인력 수가 급격하게 줄어드는데다 숙력된 전문기술자의 노하우를 활용하기 위해서다.

지난 2001년부터 정년퇴직자를 촉탁직으로 재고용하고 있는 현대중공업도 지난해부터 퇴직자 재고용 인원을 160명으로 대폭 늘렸다. 또 올해부터는 정년을 만 57세에서 58세로 연장했다. 한진중공업도 지난해부터 정년을 만 55세에서 56세로 연장했다.

고령인력을 재고용하는 것은 기술인력을 사장시키지 않고 재활용한다는 차원에서 긍정적이다. 하지만 만성적인 기술인력 부족난을 해소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현대중공업 등 6개 대형 조선사는 현재 자체 기술교육원을 통해 기능인력을 양성하고 있다. 기술교육원에서 배출된 기능인력은 2005년 3,790명에서 지난해 6,329명으로 늘어났다. 폭발적으로 늘어난 수요에 대처하기 위해서 교육과정을 조정하고 야간반을 운영하는 등 교육원을 최대한 가동한 결과다.

이렇게 해도 기술인력 수요를 충족시키는 데는 역부족이다.

조선소와 협력업체에 필요한 신규 인력은 줄잡아 연간 1만여명 정도. 특히 블록 제작에서 신조로 전환한 성동조선해양과 SPP 등의 조선소가 자리한 안정공단 지역은 앞으로 3년 동안 매년 1,000명의 신규 인력수요가 대기하고 있다. 신아조선ㆍ21세기조선 등 중소형 선박을 건조하는 업체가 밀집한 통영 지역도 매년 700~800명의 인력이 필요한 상황이다.

김영훈 목포대학교 교수는 "대형 조선소의 기술교육원을 제외하고는 조선 전문 기능인력양성기관이 전무한 상황이라 앞으로 3년간 매년 3,000명가량의 인력부족 문제가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조선업계는 인력부족 현상을 구조적으로 해결하려면 중형급 조선소들이 자체적으로 기능인력을 양성할 수 있는 교육장을 설립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아울러 기술교육원 설립을 위한 그린벨트 해제, 지방자치단체나 산업자원부 등 정부의 지원도 뒷받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역별로 기능인력 수급상황을 모니터하는 것도 필요하다. 인력수급 현황을 정기적으로 파악, 이를 적시에 충원할 수 있는 지역 네트워크를 갖춰야 한다는 얘기다.

공공훈련기관과 연계한 맞춤교육 확대의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다. 현재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은 울산기능대ㆍ부산대학교와 협력해 맞춤훈련을 실시하고 있지만 이 같은 산학협력 체계를 확대하자는 것이다.

외국인력을 적극 활용하는 방안도 등장했다. 조선공업협회의 한 관계자는 "국내 인력이 기피하는 직종에 외국 인력을 끌어들일 경우 현재의 인력난과 임금상승 문제가 다소 해소될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조선 업계에는 사내외 협력업체를 포함해 3,000명가량의 외국인 근로자가 산업연수생 등의 신분으로 조선소에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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