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5월12일] 히틀러의 생명줄


1944년 5월12일, 미군 폭격기 935대가 독일 상공을 뒤덮었다. 목표는 5개 대형 합성석유공장. 피폭 현장을 둘러본 독일 군수장관 알버트 스피어는 일기에 이렇게 적었다. ‘이날을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전쟁은 사실상 끝났다.’ 합성석유란 석탄에서 뽑아낸 인공석유. 석유 부존자원이 없어 대규모 기갑부대와 해공군을 유지하기 힘들었던 독일이 2차 대전을 일으킨 것도 석탄액화기술에 대한 자신감 때문이다. 전쟁의 와중에서도 설비증설을 거듭한 독일은 폭격 직전까지 전체 석유 사용의 57%를 합성석유로 채웠다. 합성석유공장 폭격으로 가장 큰 타격을 받은 것은 독일 공군. 옥탄가가 높아야 하는 고급 항공유의 92%가 이들 공장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생산시설 피폭은 연료공급 격감과 전투기 운항 제한으로 이어져 연합군 폭격기들은 마음 놓고 독일 내 전략목표를 두들겼다. 연합군이 중소 규모 합성석유공장까지 샅샅이 폭격한 통에 1944년 9월 항공연료 생산량은 4월 말 대비 6%에 불과한 하루 3,000배럴 수준으로 떨어졌다. 연료부족은 세계 최초로 개발한 제트 전투기를 날릴 수도, 조종사를 훈련시킬 수도 없게 만들었다. 2차 대전 최후의 승부처인 벌지 전투에서 독일군이 승리를 눈앞에서 놓친 것도 전차부대의 연료가 바닥난 탓이다. 결국 독일은 최초의 석유공장 피폭 1년 만인 1945년 5월 연합국에 손을 들었다. 히틀러의 생명줄을 끊은 폭격으로부터 63년의 세월이 흐른 오늘날, 유전 발굴과 대체에너지 개발을 둘러싼 경쟁에 전세계가 사력을 다하고 있다. 한국은 어디에 있을까. 중간도 못 된다. 석유의존도는 갈수록 높아지는 반면 확보해놓은 해외 유전의 개발권마저 빼앗기는 판이다. 에너지는 피할 수 없는 외통수다. 독일이 당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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