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심층분석] '고공비행' 물가를 보는 시선

"기업 옥죄기론 한계" "불가항력"…사실상 3% 목표 포기한듯<br>■ 靑·정부 달라진 인식… 연초 "미시정책으로 충분" 자신감<br>구제역·고유가등 잇단 변수에 후퇴… "정책공간 좁아져" 어려움 표현<br> "인상 조짐 서비스부문 요금 등 불안심리부터 잠재워야" 지적


청와대와 정부의 물가 인식이 바뀌고 있다. 최근 이어져온 발언의 흐름을 보면 5% 성장, 3% 물가 목표를 유지하고 있지만 사실상 이 목표를 동시에 달성하는 것은 포기한 것으로 비쳐진다. 더불어 물가를 잡기 위한 정부 당국의 움직임도 점점 절박해지고 있다. 기업을 옥죄는 제한적 물가 잡기로는 더 이상 지금의 난국을 풀기 어렵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는 셈이다. 인식 변화는 지난달 말부터 감지되기 시작해 지난 8일 이명박 대통령의 국무회의 발언에서 명확해졌다. 이 대통령은 "물가문제는 불가항력적인 측면이 있다"면서도 "좀 더 실효성 있는 정책이 나오도록 노력해달라"고 말했다. 부처들의 물가 잡기 노력에 에둘러 불만을 표시한 것으로 정책적 압박이 강해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다만 물가 문제에 대해 국정 책임자가 '불가항력'이라는 표현을 쓴 것은 논란거리다. 'MB물가' 등을 내세우며 물가에 대해 자신감을 나타냈던 정부가 물가상승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인 만큼 국민들에게 참아달라는 변명을 했다는 뜻이다. ◇물가 상황에 한계 드러내나=지난해 배추파동으로 홍역을 치른 정부는 올해 초부터 물가안정에 경제정책 운용의 초점을 맞췄다. 1월 금리인상과 함께 기업 불공정거래 감시 강화 등 미시 정책으로 충분이 물가를 안정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였다. 하지만 상황은 계속 엇나갔다. 구제역 사태가 빠르게 확산됐으며 폭설과 한파에 따른 농축산물 가격 상승에다 재스민 향기에 취한 유가가 폭등하며 예측은 빗나갔다. 튀니지에서 시작한 중동의 민주화 바람이 이집트ㆍ리비아ㆍ바레인 등으로 이어지며 2월부터 국제유가는 배럴당 110달러대를 넘어서 물가목표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급기야 지난 2월23일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경제정책조정회의에서 "상당히 좋지 않다. 물가를 둘러싼 국내외 환경이 대단히 비우호적"이라고 말하며 물가가 뜻대로 잡히지 않았고 잡히지도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내비쳤다. 2월 소비자물가는 정부의 예측이 또 한번 빗나갔다는 점을 보여줬다. 지표상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5% 정도 예상을 했지만 이제는 공급 측면뿐만 아니라 수요 측면에서도 물가가 뛰기 시작했다. 개인서비스요금이 3% 오르고 농수산물과 석유류를 제외한 근원물가가 3.1% 오르며 정부를 곤혹스럽게 했다. 물가 불안의 원인을 공급 쪽에서만 찾던 정부가 수요 측면의 인플레이션까지 인정한 셈이다. 윤 장관은 결국 1일 재정부 직원들에게 보낸 e메일에서 "구제역ㆍ물가ㆍ전셋값 어느 것 하나 엄중하지 않은 것이 없고 정부의 정책 공간은 점점 좁아지고 있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물가를 잡기 위해 내놓을 정책이 거의 바닥 났다는 의미로도 해석됐다. ◇물가 억누르기 정책 실패 인정한 것인가=물가상승에 정부가 가장 먼저 꺼내든 카드는 기업에 대한 압박. 공급 측면에 문제가 있다는 판단에 공급처의 가격을 억눌렀다. 하지만 재정부ㆍ공정거래위원회 등 전방위로 압박을 가한 기름값은 오름세가 감시 주춤했을 뿐 국제유가 상승에 다시 고공행진을 하고 있다. 인위적인 가격인하 압박이 통하지 않은 셈이다. 연일 강하게 공급가격을 압박하던 정부의 스탠스도 지난달 말부터 변하기 시작했다. 국제유가 등 통제 불가능한 변수에 정부도 제대로 손을 못 쓰는 상황에서 기업 압박만으로 해결될 문제는 아니라는 인식의 변화다. 지난달 9일 생산성 향상에 비해 가격하락이 미진하다고 정유사와 통신사를 직접적으로 비판했던 윤 장관은 23일에는 기업을 직접 겨냥하기 보다는 주무부처 물가 태스크포스(TF)의 성과를 조기에 달성하라고 독려했다. 기업만 옥죄는 제한적 틀로는 지금의 물가 불안을 잠재우는 것이 불가능함을 인정한 것이다. ◇불안심리 잠재워야=문제는 물가상승에 정부가 마땅하게 내놓을 정책이 없다는 점이다. 9일 열린 경제정책조정회의에서도 윤 장관은 "원유 등 원자재의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는 우리로서는 구조적으로 물가를 안정하는 데 어려움이 큰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물가 불안심리를 잡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3%라는 목표에 연연하기보다는 인플레이션 기대 심리에 편승한 서비스부문의 물가불안 심리를 먼저 잡는 것이 관건이라는 것이다. 특히 서비스요금은 한번 오르면 떨어지지 않는 특징이 있는 만큼 추가로 서비스요금이 들썩이지 않도록 보다 세밀한 정책적 대안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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