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5월 28일] 은행산업의 구조변화 필요성

박현수(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이번 금융위기의 진원지인 미국에서는 금융규제개혁 작업이 한창이다. 금융위기로 미국 금융규제체계에 중대한 결함이 있다는 것이 분명해졌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포괄적 금융규제 개혁을 통해 위기를 방지하고 관리할 수 있는 보다 강력한 수단을 마련하여 금융시스템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겠다는 계획을 천명했다. 이에 따라 지난 2월10일 발표한 금융안정대책에서 금융규제개혁을 주요한 과제로 제시했고 3월에는 포괄적 금융규제개혁 방안을 발표했다. 시스템 리스크 대응이 중요
금융규제개혁 방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시스템 리스크에 대한 대응이다. 시스템 리스크는 금융기관의 파산 등이 금융시스템의 붕괴를 초래할 위험을 말한다. 미국 정부는 금융기관의 내부 리스크관리시스템 뿐만 아니라 신용평가기관 및 규제당국이 리스크 증가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했다고 보고 3월27일에는 규제기관, 금융기관 자본요건, 헤지펀드 규제 등을 담은 시스템 리스크 완화 방안을 발표했다. 입법을 위해 의회와의 협의를 거치는 과정에서 수정은 되겠지만 정치권에서도 금융규제개혁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하고 있기 때문에 큰 방향에는 변화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시스템 리스크에 대처하기 위해서 규제를 개혁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중요성에 비해 관심이 낮은 것이 은행의 산업구조에 대한 것이다. 이번 금융위기 과정에서 부실화된 금융기관을 왜 국민의 세금으로 살려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계속 제기되었다. 이에 대한 정부나 감독기관의 답변은 이 금융기관들이 파산할 경우 발생할 비용이 너무 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는 금융위기 이후 미국에서 소형 지역은행들은 문을 닫은 경우가 많다. 문제는 대형 금융기관들인 것이다. 미국의 스트레스 테스트가 19개 대형 은행만을 대상으로 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러한 대마불사의 관행에 대해서는 많은 비판이 있다. 단지 규모가 크다는 이유로 파산 지경에 처한 금융기관을 공적자금으로 구제해 준다면 이를 믿고 대형 금융기관이 위험이 높은 투자에 몰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시스템 리스크를 해결하기 위한 구제금융이 오히려 시스템 리스크를 키우는 행위를 조장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단순히 금융규제를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모순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하는 것이 시스템 리스크 문제 해결에 더 중요한 과제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은행 등 금융기관이 지나치게 대형화됐다는 비판이 있다. 금융규제 완화와 국제화의 흐름을 타고 글로벌 금융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금융기관들은 자산확대와 합병 등을 통해 덩치 키우기에 골몰해왔다. 또 겸업화 추세로 금융권역 간 장벽이 낮아지면서 금융기관의 거래관계도 복잡해졌다. 이처럼 대형화와 함께 자산채무관계의 상호연계가 복잡해지면서 개별 금융기관이 시스템 붕괴를 초래할 위험은 더 커진 것이다. 지방·저축은행 역할 강화해야
배경은 약간 다르지만 이러한 사정은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이다. 외환위기 이후 금융구조조정과정에서 다수의 은행이 퇴출되거나 합병되면서 은행의 수는 크게 감소했고 또 국제경쟁력을 높인다는 명분으로 은행들은 대형화를 적극 추진하기도 했다. 그 결과가 은행의 높은 예대율과 양도성예금증서(CD) 등 단기성 자금조달 비중의 상승이며 이는 2008년 말 국내 금융시장의 가장 중요한 리스크 요인으로 지목됐다. 다행히 글로벌 금융위기가 국내 은행위기로 번지는 것은 차단했지만 은행산업의 높은 집중도 해소는 규제체계 정비나 은행의 위험선호요인 감소 등과 함께 시스템 리스크 완화를 위해 긴요한 과제라고 생각된다. 이를 위해서는 현재 주요 선진국들에 비해 과도하게 높은 은행산업의 진입장벽을 낮추고 지방은행이나 저축은행 등의 역할을 강화하는 것 등이 대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단기적인 응급처방이 아니라 보다 장기적인 개혁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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