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사설] 韓銀 신중해져야 한다

보유외환을 다양화하겠다는 한국은행의 보고서 파장이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한국은행은 지난 21일 국회 재경위 업무보고자료를 통해 “외환보유액 투자대상통화를 다변화하겠다”는 방침을 밝혔었는데, 이 같은 사실이 외신을 통해 보도되면서 국내외 금융시장이 한바탕 소동을 빚었다. 파장이 커지자 한국은행은 “외환보유액을 다양화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 뿐 보유한 달러를 팔아 다른 통화로 바꾼다는 것은 아니다”고 해명하는 등 진화에 나섰다. 그러나 이미 사태는 커질대로 커져 이튿날 원ㆍ달러환율은 17원이나 폭락하는 등 사흘새 무려 20원이나 떨어졌다. 우리의 외환보유액이 2,000억달러인 점을 감안하면 신중하지 못한 자료 하나 때문에 4조원의 외화평가손실을 입은 것이다. 외환보유액이 2,000억달러를 넘은 것을 계기로 한국은행이 보유외환의 포트폴리오 등을 재검토하는 것은 당연하다. 시장에서도 한국은행이 외환보유전략을 수정할 것이라는 것은 충분히 예상하고 있었던 일이다. 그러나 국내외시장의 눈이 온통 쏠려 있는 상황에서 민감한 외환운용정책을 드러내놓고 밝혔다는 점은 신중하지 못했다. 주요 회의내용을 일정기간 비밀에 부치고 금리나 환율정책의 방향에 대해 시장이 미리미리 대비할 수 있도록 간접화법을 구사하는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기술을 배워야 한다. 경제대통령으로 불리는 앨런 그린스펀 의장의 권위는 침묵에서 나온다. 꼭 필요할 경우라도 “인플레이션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는 최소한의 언급을 통해 금리인상의 시그널을 내보낸다. 그러면 시장은 FRB가 금리를 올릴 것으로 예측하고 서서히 거기에 맞춰 움직이고 정작 금리가 인상됐을 때의 충격은 거의 없다. 시장이 전혀 예측하지 못한 상태에서 콜금리를 내리거나 동결함으로써 채권시장을 흔들고 금융시장의 혼란을 야기하는 한국은행과는 대조적이다. 한국은행은 신중하지 못한 정책결정이 얼마나 큰 혼란을 야기했는지 충분히 인식했을 것이다. 세계 4위의 외환보유국 답게 국제위상에 걸맞도록 한국은행은 물론 금융당국은 정책을 결정할 때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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