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중 회장은 누구보다 정치적 감각이 뛰어난 인물로 통했다.
측근들은 정치권과의 줄다리기를 ‘김우중식 게임’이라고도 표현했다. 박정희 대통령 때는 폐허 상태에 놓였던 옥포조선소를 인수, 박 대통령으로부터 “김우중 그 사람밖에 없어”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박 대통령이 서거하고 신군부가 권력을 잡던 지난 80년대 초. 김 회장은 당시 사업확장을 위해 해외를 돌아다니면서 현지 언론에서 김대중 대통령의 이름을 접한다. 김영삼ㆍ김종필씨도 있었지만 유독 DJ에게 정을 품었다고 측근들은 전했다. 97년 대선과정에서 김 회장이 DJ를 앞장서 지원했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일이다.
김 대통령도 정권을 잡은 후 누구보다 김 회장에게 각별했고 김 회장이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에 오른 데도 DJ의 숨겨진 힘이 작용했다는 것은 재계 안팎의 공공연한 소문이었다. 김 회장의 경기고 동창이자 무기 중개상인 조풍언은 DJ와 매우 가까운 사이였다.
공교롭게도 김 회장이 물러난 후 대우구조조정추진협의회 회장을 맡은 오호근 전 기업구조조정위원장도 DJ와 70년대 이후 각별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때문에 김 회장은 워크아웃 이후 자동차를 포함한 6개사의 경영권을 찾기 위해 국내에 비밀리에 입국하면서 이근영 당시 산업은행 총재와 오 위원장을 찾기도 했다.
하지만 최고 권력자의 지나친 권력 밀착은 김 회장에게 오히려 독으로 다가왔다. DJ는 김 회장의 거듭된 ‘식언’과 관료들의 ‘보이지 않는 견제’에 의해 김 회장을 멀리했고 두 사람의 밀월은 대우 계열사의 워크아웃을 계기로 막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