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동북아 외교 전쟁에 대비를

한중일 세나라 사이에 때아닌 역사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중국이 고구려사를 자국사에 편입시키려는 이른바 동북공정(東北工程) 프로젝트로 한국을 자극하더니, 일본의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는 전격적인 야스쿠니 신사 참배로 한중 양국의 공분을 자아냈다. 한국에서는 시민단체까지 나서서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 저지를 위한 100만인 서명운동에 돌입하고 한일 양국 네티즌들은 한국정부의 독도 우표 발행을 놓고 사이버 임진왜란을 벌이기도 하였다. 가히 동아시아 3국간 역사 전쟁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이러한 역사전쟁의 발단은 개혁럭낱堧京?계속된 중국의 급속한 경제발전과 평화헌법 개정으로 대표되는 일본의 군사대국화 경향에서 이미 예고하고 있던 바였다. 문제는 두 강대국 사이에 끼인 한반도의 현실이다. 북한 핵문제는 말할 것도 없고 한국경제의 앞날도 중렝?양국의 행보와 맞물려 있다. 중국은 근 10년간 연평균 7%가 넘는 초고속성장을 계속하고 있다.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인 국방비 지출은 동아시아에 미국과 맞설 수 있는 군사대국이 등장함을 예고한다. 토끼는 자기집 주변 풀을 안먹는다며 중국위협론을 반박하던 중국정부는 국가기관인 사회과학원으로 하여금 동북공정 프로젝트를 추진케 함으로써 한국인들의 분노를 사고 있다. 신중화제국주의 시대가 도래한다는 우려가 괜한 엄살은 아닌 것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중원을 통일한 제국이 등장하면 그 여파는 어김없이 한반도에 미치곤 했다. 게다가 13억 인구를 기반으로 해마다 이공계 인력 90만 명을 배출하고, 개방 이후 해외유학을 떠난 40만 명 중 벌써 14만 명이 귀국하여 첨단기술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다니 기술인력도 인해전술이다. 요즈음 서울 근교 스키장은 해외여행을 나온 중국 관광객으로 붐빈다. 돈과 자유를 즐기는 중산층(샤오쯔)이 벌써 7,000만, 인터넷 인구 1억5,000만이 포진하고 있는 중국은 더 이상 늙은 대륙이 아니다. 우경화 행진을 계속하는 일본 열도도 위험스럽기는 마찬가지이다. 이시하라 동경도지사를 위시하여 일본 정치지도자의 망언 시리즈는 더 이상 언급하지 않아도 될 만큼 고질병이 된 지 오래이고, 여기에 진보적 지식인을 자처하는 일본 공산당 마저 천황제와 자위대를 인정키로 했다 하니 일본의 우경화는 이제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인 모양이다. 독도 문제 역시 우리 외교 당국이 무대응이 상책이라는 태도를 견지하는 한 해마다 반복되고, 고사리 손으로 우체국에서 독도 우표를 사는 대열도 계속 될 것이다. 그러면 신중화주의와 군국주의의 부활 사이에서 한반도의 앞날은 어찌될 것인가? 청일전쟁과 러일전쟁 두 차례의 전쟁이 동북아를 휩쓸고 지나간 후 식민지로 전락한 100년 전 역사에서 배울 것은 없는가. 개항 이후 조선은 중립과 자주를 지키고자 무척이나 노력했지만 힘이 없어 수포로 돌아갔다. 러시아를 끌어들여 일본을 견제해 보려던 고종의 외교전략도 중립파와 한일동맹파로 집권층내 여론이 갈리면서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물론 2004년 대한민국은 100년 전 대한제국과는 그 위상이 다르다. 제국주의 열강이 포효하던 포함(砲艦)외교의 시대도 아니고 얼마든지 외교적 역량을 발휘해서 동북아 외교무대에서 균형추가 될 수 있는 국력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도 안타까운 것은 한중, 한일 관계가 문제될 때마다 정부 당국과 외교부가 보여주는 소극적인 태도다.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문제가 불거지자 정부 당국자는 학문적 해결의 문제라면서 정신문화연구원에 고구려사 연구센터를 설치하겠다고 한다. 일본의 역사 교과서 왜곡이 문제되면 한일 역사학자들로 위원회를 구성한다 해놓고 그 다음은 감감 무소식이다.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을 꺼야 하는데 학문적 해결 방안이란 자칫 책임회피로 느껴질 수 있다. EU를 비롯한 세계의 대세는 지역간 블록 경제화다. 한중일 3국 역시 동북아 경제공동체를 구성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과거 역사가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때 한국이 동북아의 허브 국가로 성장하려면 단순히 구호만으로는 안 될 것이다. 중일간 대립 구도 사이에서 한국이 중재의 역할을 해내고 한중일 분점체체로 가기 위해서는 우선 기민한 외교전략부터 짜야 한다. 강소국(强小國)으로 위상을 정립하기 위해서라도 적극적으로 외교적 이니셔티브를 구사해야 할 때다. <최홍건 한국산업기술대학교 총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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