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부도기업 사원들의 눈물겨운 하루하루

◎생활고에 주위눈치까지 “추석이 두려워요”/은행대출 퇴짜… 적금깨서 연명/타회사 전직 서류제출마저 거부/맞벌이 하겠다는 아내와 불화도/“실패한 경영자는 범죄자다” 원망기아를 비롯 진로, 대농, 한보그룹 등 최근 부도유예나 부도가 발생한 그룹들은 뼈를 깎는 자구노력과 함께 보통의 직장인들은 상상도 하기 힘들 정도로 「눈물겹고 힘든」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추석이 결코 반갑지 않은 이들 그룹 임직원들이 회사를 살리기 위해 뛰는 안쓰러운 모습은 경영을 잘하는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다시한번 상기시킨다. ○…기아 임직원들의 생활은 파행의 연속이다. 임원들의 급여는 절반선으로 깎였고 그나마도 제때 나오지 않는다. 물론 상여금은 없어졌다. 적게 받을 뿐 아니라 할부로 구입한 차량가격을 일시에 납부하고 우리사주 사기 등으로 1인당 5백만∼1천만원의 목돈을 내 이중고를 겪고 있다. 기아자동차의 한 임원은 『많은 사람들이 정기적금을 깨 다른 적금과 보험료를 내고 있으며 그나마 마이너스통장으로 연명하는 이들은 운이 좋은 케이스』라고 말한다. 대출은 담보가 있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아시아자동차 등 계열사들의 사정은 더 심하다. 지난 4일에야 8월분 급여를 받았다. 그나마도 평소의 절반이다. 6월과 8월 보너스는 반납해 만져 보지도 못했다. 생산직의 경우 하루라도 빨리 나가는게 퇴직금을 한푼이라도 더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경쟁적으로 회사를 떠나고 있다. 기아 임직원들은 『우리들은 바보』라는 말을 자주 한다. 아무리 회사가 어려워도 급여는 다 받는 비슷한 처지의 다른 그룹들과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지난 5일 서울 마포구 대농그룹 사옥 로비. 계열 의류업체인 메트로 프로덕트가 재고품을 70% 할인해 판매하고 있었다. 한 사원은 『명절을 앞두고 직원들이 저렴한 가격에 추석빔을 장만하도록 장을 열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손님들의 대부분은 인근 주민들이다. 대농인들의 가슴은 시커멓게 멍들었다. 법정관리를 받게 되는 (주)대농의 정모차장은 『지난 3개월동안 산 송장과 같은 생활이었다』며 『망한 기업에 근무하던 직원은 「재수」없다며 경력사원 서류심사조차 거부당했을 때의 심정은 이루 말할 수 없다』고 토로했다. 그룹 기획실의 K과장은 『아이가 아파 동네 의원을 찾았을 때 회사이름이 적혀 있는 보험증을 본 간호사가 측은한 눈초리로 아이 엄마를 쳐다보는 순간 눈물을 감출 수 없었다』고 말한다. ○…한보철강의 이모과장은 부부싸움을 자주한다. 결혼후 8년간 거의 안해본 싸움이다. 『백화점 일용직으로 나가겠다』는 부인을 만류하는게 주된 이유다. 지난 89년초 입사한 그가 받은 급여는 1백50만원선. 이것저것 떼고나면 실수령액은 1백37만원이며 보너스는 8백30%. 회사가 극심한 자금난으로 이달들어 보너스 지급을 중단키로 하면서 생활을 꾸려갈 일이 아득하기만 하다. 그는 결국 아내에게 졌다. 『아내가 벌어오는 돈에 기대어 살 수 없다』던 자존심은 접기로 했다. 올해초 회사가 부도났을 때만 해도 『멀쩡한 회사를 왜 부도내느냐』며 울분을 참지 못하던 그는 요즘 생각을 달리하고 있다. 『경영을 잘못해 직원들과 가정에 피해를 입히는 경영진은 범죄자나 다름없다』고. ○…장진호 진로그룹회장의 수첩은 주요그룹 회장과 사장들과의 모임메모가 깨알같이 쓰여있다. 부동산과 계열사를 팔기 위해서다. 지난 7월부터 시작된 장회장과 사장단, 임직원들의 두꺼비살리기 1백일작전은 임직원들의 눈물겨운 희생과 솔선수범에 힘입어 성과를 거두고 있다. 관리직의 20%인 2백명이 영업현장으로 전직을 자원해서 한병의 술이라도 더 팔겠다며 비지땀을 흘리고 있다. 근무시간의 2시간 연장, 토요휴무는 반납했다. 회사가 어려워지면서 동료들이 떠나고, 급여는 줄어들고, 생활은 뒤틀리고 있지만 그래도 이들은 아직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다. 언젠가 오늘을 자랑스럽게 얘기할 그날을 위해.<산업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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