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목요일 아침에] 정전대란과 전력 과소비


서울을 비롯한 전국을 암흑천지로 몰아넣은 사상초유의 정전사태는 국가위기관리가 얼마나 허술한지를 다시 한번 보여줬다. 343만㎾로 알았던 예비전력이 실제로는 바닥수준인 24만㎾(예비율 0.35%)였는데도 허위보고를 하고 담당부처는 물론 청와대조차도 이를 까맣게 몰랐다니 어처구니없다. 다행히 기온이 떨어져 최악의 상황은 모면했지만 만일 전기가 완전히 끊기는 '블랙아웃'까지 갔으면 어찌됐을까 생각하면 현기증이 난다. 관리소홀 한전·정부 잘못이지만 대형사고가 터지면 으레 그렇듯이 이번에도 원인규명과 재발방지책보다는 희생양 찾기부터 나섰다. 해당부처인 지식경제부나 예고 없이 순환정전을 한 전력거래소가 응분의 책임을 지고 피해보상을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당연하다. 지경부 장관도 무한책임을 느낀다며 재발방지책을 마련한 뒤에 물러나겠다고 했다. 그러나 이번 정전사태가 책임자 몇 명 문책하고 피해를 보상해준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사태의 원인을 철저히 규명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하는 근본적인 처방이 필요하다. 전력수급 시스템과 불합리한 요금체계, 흥청망청 써대는 소비행태를 바꾸지 않으면 제2, 제3의 전력대란은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 무엇보다 발전설비용량이 기후변화의 속도와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문제를 서둘러 개선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최대 전력사용량은 지난 2007년 6,228만㎾에서 올해 7,313만㎾로 17.4% 늘었다. 반면 전기를 공급하는 설비용량은 같은 기간 6,719만㎾에서 7,613만㎾로 13.3% 밖에 늘지 않았다. 이에 따라 2003년 17.1% 였던 전력예비율이 올 1월에는 5.5%까지 떨어졌다. 이런 추세라면 공급을 아무리 늘린다 해도 정전대란을 피하기란 쉽지 않다.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전력수급대책을 재점검해야 하는 이유다. 더구나 100년 만의 폭설과 폭염이 찾아올 정도로 기상이변이 일상화되고 있다. 기후변화에 따른 전력사용량 예측을 새로 조정할 필요가 있다. 수요 억제정책도 병행돼야 한다. 생산원가에 턱없이 미치지 못하는 요금을 단계적으로 올려야 한다. 우리나라 전기요금을 100으로 했을 때 미국은 138, 일본은 242 수준이다. 특히 교육용, 산업용 전기요금은 원가에 못 미치고 있다. 요금이 싸다 보니 전기를 물처럼 펑펑 쓰다시피 한다. 가스난방, 석유화로 등을 전기히터와 같은 전열기구로 교체하는 일도 잦다. 학교나 직장에서는 전력소비가 많은 시스템에어컨을 설치해 냉난방을 동시에 해결하는 경우도 갈수록 늘고 있다. 정전으로 고통 받던 다음날에도 도심 번화가에서는 문을 열어둔 채 냉방기를 최대로 틀 정도로 전력과소비가 심하다. 전력 과소비 국민도 각성해야 이번 정전사태는 가을 늦더위를 미처 예상하지 못하고 서둘러 발전시설을 정비한 당국에 가장 큰 책임이 있지만 전력과소비도 원인(遠因)이었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그런 점에서 국민도 정전대란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과소비를 줄이려면 값을 올리는 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그러나 가격인상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물가를 자극하고 서민가계에 부담을 주기 때문이다. 최선의 방법은 국민들 모두가 전기를 아껴 쓰는 일이다. 절전하면 발전소 건설 및 유지에 드는 막대한 돈을 절약할 수 있고 전기요금 인상도 억제할 수 있는 이중의 효과도 기대된다. 일본은 올 초 원전 피해로 38년 만에 전력사용 제한령을 발동했지만 오히려 전기가 남아돌며 여름을 무사히 넘겼다. 이번 정전사태를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정전이 되자 도시는 물론 국가기능이 거의 마비되는 것을 모두가 절실히 느꼈다. 제2, 제3의 정전사태가 터지지 않도록 절전의 생활화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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