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진정한 금융개혁정신의 실종/이진순 숭실대 경제학과교수(서경논단)

지난 6월16일 정부가 발표한 중앙은행 제도및 금융감독체계 개편방안을 둘러싼 논란이 그칠줄 모르고 있다. 과거에도 몇차례 한은법 파동이 있었지만 이번 만큼 당사자인 재경원과 한국은행간에 치열한 전선을 형성했던 적은 없었던 것으로 기억된다.○‘한은 자율성’ 공염불 재경원은 정부의 개편안이 금융개혁이라는 커다란 테두리내에서 이루어진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내용을 자세히 뜯어보면 개혁의 기본정신은 완전히 실종된 것처럼 보인다. 몇가지만 지적해보자. 우선 중앙은행의 독립성 문제다. 인플레 억제를 위해서는 통화정책을 집행하는 중앙은행에 자율성을 부여해야 한다는 사실을 제기하는 사람은 드물다. 많은 나라들이 중앙은행의 자율성 보장을 금융개혁 프로그램중 하나로 추진중인 것이 그 증거다. 재경원도 이러한 조류를 받아들였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사실은 다른 것 같다. 재경원의 개편안은 지금의 한국은행을 최고의사결정기구인 금통위와 하부집행기구인 한국은행으로 나누고 금통위를 정부기구로 편입하는 것으로 돼있다. 쉽게 말하면 중앙은행에서 머리부분을 떼어내어 정부기구로 만든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중앙은행의 자율성이라는 개념이 설 땅이 없다. 중앙은행을 정부기구가 아닌 형태로 설립해온 역사적 이유를 외면하고 중앙은행의 필요성까지 부정하고 있는 마당에 자율성이란 공염불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재경원은 이 위원회를 정부기구로 만드는 것도 모자라 의안 제안권, 제의요구권 등 간섭장치를 곳곳에 묻어놓았다. 중앙은행 제도를 실질적으로 없애는 한편으로 정부기구인 금통위조차 허수아비로 만들자는 의도에 다름아니다. ○정부 규제만 곳곳에 우리나라 금융산업의 효율화를 위해 가장 시급한 과제는 규제완화다. 정부의 금융산업에 대한 보호와 통제를 양축으로 하는 관치금융이 오늘의 피폐한 금융현실을 가져왔다는 것은 삼척동자라도 다 아는 사실이다. 정부도 금융개혁의 1차 과제로 각종 규제를 완화하였으나 여전히 정부가 금융기관을 통제할 수 있는 여지는 크다. 금융시장에 대한 정부개입은 단지 금융시스템의 안전성 유지를 위한 규제로 한정해야 한다. 자유는 본래 소극적 개념이므로 진정한 금융자유화를 위해서는 금융규제 체계를 현행 포저티브 리스트 시스템에서 네거티브 리스트 시스템으로 전면적인 개편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 진정한 금융자유화가 이루어질 경우 경쟁이 격화됨에 따라 금융기관의 도산 위험성이 증대될 것이므로 효과적이고 신속한 도산처리와 예금자 보호를 위한 금융감독 체계의 개편이 동반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일차적으로 금융기관의 경영 공시제도를 정비해 예금자와 투자자들의 선택을 통해 과도하게 위험한 자산운용을 일삼는 금융기관을 도태되도록 하는 시장규율에 의존해야 하고 금융감독기관은 단지 보완적 기능을 담당하여야 한다. 그런데 정부는 금융기관들이 혁신과 경영을 할 수 있는 자유를 부여하는데는 소극적이면서 금융의 겸업화 추세에 부응한다는 명분하에 1천5백명의 직원을 거느린 거대한 통합금융감독원 설립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 재경원 관리들이 대거 금융감독원으로 옮겨간다고 하니 공룡화된 감독원의 관료조직에 의한 규제체계는 더욱 공고화되면 되었지 완화될 희망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금융감독원에 집중되는 금융정보만을 가지고도 경제전반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음은 너무 뻔한 사실 아닌가. ○감독체계 개선 시급 한가지 더 지적하고자 하는 것은 절차상의 문제다. 민주사회의 가장 큰 특징이자 장점 가운데 하나는 어떤 사안에 대해 논란이 있을 경우 시간이 걸리더라도 당사자, 그리고 여론의 충분한 검증과 조정을 거쳐 합의에 이르는 것을 중시한다는 점이다. 이렇게 볼때 이번 개편안의 도출과정은 매우 실망스런 것이었다. 논란의 여지가 크다고 해서 우리 금융 전체의 모습을 바꿀 수도 있는 문제를 몇몇 사람이 밀실회담을 통해 결정지었다는 것은 민주주의의 보편적인 가치에 위배되는 것이다. 지금은 관련 당사자 모두가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우기는 지록위마의 어리석음에서 벗어나야 할 때다. 순수한 경제이론에만 입각하여 과연 금융산업의 효율성을 높이고 우리 경제의 안정적인 발전을 위해 진정으로 바람직한 중앙은행과 감독체계는 어떤 모습인가를 생각해야 할 때인 것이다. ◇약력 ▲50년 전남 여천산 ▲서울상대 무역학과졸 ▲미위스콘신대 경제학석사·박사 ▲산업은행 조사역 ▲에너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 ▲숭실대 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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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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