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재계 목소리(고사위기 실물경제)

◎국정 조기 인수 신인도 회복부터마비지경에 처한 실물경제를 살릴 길은 없는가. 재계는 실물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는 금융위기 해소와 내수촉진 등 단기처방과 함께 수출확대 및 대외신인도 회복, 이를 위한 새정부 정책의 조기가시화 등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생산, 수출, 내수, 투자 등 경영전반의 위기가 심화되고 있는 실물경제를 살리기 위한 재계의 의견을 종합해본다. 【편집자주】 ◇붕괴된 수출시스템을 회복시켜야 한다:경제정책·대외협상 주도 ‘달러썰물’ 방지/‘부실’기관 조속 정리 금융시스템 복원을/‘은행살리기’ 집착말고 특단대책 마련/한은 신용장용 외화 별도배정 등 필요 무역업계의 요즘 처지는 「매일 살얼음판을 걷는 상황」이다. 금융·외환시스템의 마비로 수출대금 회수는 물론 신규 상담도 할 수 없는 지경이다. 또 원자재수입도 여의치 않아 조만간 수출상품마저 없어지고 수출업계의 무더기 도산이 불가피하다는 위기감이 팽배해지고 있다. 이에 따라 무협을 비롯한 업계는 모든 수출환어음에 대해 수출보험을 유보할 수 있도록 하고 한국은행이 수입신용장 개설용 외화를 별도로 배정하는 등 특단의 대책이 시급하다고 촉구하고 있다. 업계는 특히 『국제통화기금(IMF)의 한파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수출만이 살길이라고 목소리를 높이면서 최근 은행들은 자신만 살기 위해 수출업계의 목을 죄고 있다』며 『정부가 한시라도 빨리 수출과 은행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특단의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대한민국」은 무너지고 말 것』이라며 정부의 대책을 촉구하고 있다. 실제로 최근 수출업계의 상황은 다급하다. 자금난이 극에 달한데다 기존 수출기반마저 붕괴되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한국경제의 마지막 보루인 수출마저 죽으면 위기탈출은 기대하기 어렵다』며 『은행을 살리기 위해 수출과 국가경제 전체를 죽이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말한다. 또 이달들어 수출은 신장세를 유지하는 반면 수입은 대폭 줄어 한달간 월기준으로 사상 최대의 흑자를 기록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으나 은행권의 수출입 결제시스템 가동중단으로 인해 내년초부터는 이같은 흑자가 무색해질 것이라고 업계는 입을 모으고 있다. 한 중견수출업체 관계자는 『금융불안을 역이용, 은행들이 살아남기에만 급급하고 모든 비용을 수출업체들에 떠넘기고 있다』며 『앞으로 경제가 살아나더라도 시중은행과는 모든 거래관계를 끊고 싶은 심정이다』고 말했다. ◇국정인수 조기에 가시화해야 한다:실물경제 밝은 해외통 중용 경제팀 구성/금융개방 대응 역차별 방지책도 세워야 김대중대통령당선자가 화급한 외환위기의 타개를 위해 국정인수를 조기에 가시화시켜 경제정책, 대외협상 등을 주도해야 한다는 지적이 높다. 이는 국내는 물론 미국·일본 등 선진국과 IMF, 세계은행(IBRD) 등 우리경제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기구들이 김영삼정부에 대한 불신이 높기 때문. 재계 관계자들은 『재경원 관리들의 잦은 발언번복과 숨기기, 정책실기 등에 대한 외국투자가들의 불만이 고조되면서 이것이 대외신인도 추락으로 이어져 기업들의 해외차입이 어려워지고 있다』며 이의 회복에 우선 나서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달러 파이프라인을 쥐고 있는 미·일 등 선진국들이 아예 대화파트너로 외면하는 현정부가 임기를 다 채울 경우 「달러썰물」이 가속화할 수 있다는 게 재계의 우려다. 전경련의 한 관계자는 『새 내각을 하루빨리 출범시켜 강력한 정부조직 축소, 사업구조조정과 부실금융기관 정리 등 금융개혁, 대외 신인도 회복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개원중인 임시국회에서 금융개혁법과 구조조정특별법, 정리해고 등을 가능케 하는 고용관련법 개정안을 하루빨리 통과시켜 추락된 대외신용을 회복시켜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또 25일 IMF와 서방선진7개국(G7)이 1백억달러를 조기지원하는 대가로 금융 산업분야의 모든 빗장이 완전히 풀린 것에 대응, 우리기업이 외국기업에 역차별을 당하는 모순이 없도록 관련법안의 손질도 시급하다고 요청하고 있다. 재계는 새정부의 경제각료 인선과정에서 실물경제를 잘 알고 IMF·IBRD 등 세계경제기구와 금융계에 밝은 해외통을 중용할 것도 촉구하고 있다. ◇IMF 액션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IMF 협약 준수 지속 천명 신뢰유지/구조조정·부실기업정리 한발앞서 시행 외환·금융위기가 실물경제를 더이상 다치게 하지 않도록 차단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대책이다. 현재 우리나라가 처한 경제위기의 직접적인 원인은 「대외신인도」 하락에 있다. 따라서 가장 기본적인 처방도 당연히 신인도의 회복에 모아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위기극복을 위한 우리나라의 강력한 의지를 보여주어야 한다. 재계는 『IMF의 자금지원국으로 전락한 지금 우리는 체면이나 자존심은 버려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체면을 버리고 노력해 신뢰를 쌓는 것이 진정한 자존심을 지키는 길이라는 의견이다. 가장 시급한 과제로 업계는 IMF의 협약준수를 대외에 지속적으로 천명할 것을 들고 있다. 시장개방·자유시장 경제체제를 위한 조치나 구조조정과 금융업체 정리, 부실기업 정리 등에 대한 노력도 그들이 요구하기 전에 우리나름의 계획을 수립, 이를 국제사회에 천명할 필요가 있다는 것. 부실기업 처리도 늦춰서는 안된다는 지적이다. 강도높은 자구노력을 부과하고 회생가능성이 없는 경우에는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지적이다. 부도우려 기업에 대해서는 사업 또는 기업의 포기와 자구노력 이행 중 택일토록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부실금융기관의 처리는 어려움이 따르더라도 조기에 실시하면서 손실배분의 원칙을 확립해야 한다는 지적도 높다. 금융기관의 구조조정을 앞당기기 위해서는 법적 근거를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는 것. 기업의 구조조정은 자율적으로 하도록 하고 정부는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는 것도 업계의 한결같은 의견이다. 이를 위해 기업은 체면을 버리고 일부 손실을 감수하고 구조조정에 나서야 하며 이 과정에서 정부의 특혜를 기대해서는 안된다. 정부는 구조조정에 수반되는 자산매각, 인원의 이동 등에 대해 기업의 부담을 덜어주는 방향으로 지원해야 한다. 또 물류시설의 공동이용, 특허교환, 해외시장에서 공동 AS 등 기업간 전략적 제휴를 유도해 실질적인 구조조정의 효과를 발휘토록 해야 할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같은 자구노력을 널리 알리기 위해 경제외교를 강화하고 우리의 노력을 세계에 널리 알리기 위한 경제홍보를 강화해야 한다고 재계 관계자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금융대책을 마련해야 한다:정부­기업­금융기관 상호신뢰회복 급선무/심리적 공황 해소해야 자금순환·부도방지 붕괴되고 있는 금융시스템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금융기관, 기업간 신뢰회복이 긴요하다는 게 재계의 한결같은 목소리다. 특히 금융기관들이 기업들의 대량부도 사태를 막고 자금난을 타개하기 위해 정부는 기업에 대해 자율결의한 약속을 지키는 것이 시급하다고 촉구하고 있다. 이들 삼자가 머리를 맞대 금융시스템을 복원하는 것이 급선무라는 것이다. 재계는 IMF와 IBRD 등 세계금융기관과 미국·일본 등의 지원으로 달러가 들어오고 있고 수출도 늘어나면서 피(자금)는 있지만 혈관(금융)이 작동하지 않아 생명의 위험을 받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정부가 금융기관의 구조조정 스케줄을 조속히 마련, 시행하는 것이 급선무라는 것이다. 부실금융기관은 머뭇거리지 말고 정리하고 나머지 금융기관은 반드시 살리겠다는 의지를 천명, 이를 실행하는 결단을 보여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래야 금융기관들의 심리적 공황이 진정돼 혈관이 작동, 기업에 돈이 들어간다는 지적이다. 금융기관의 정책불신이 극에 달하고 있는 것은 재경원이 지난 9일 은행장들을 모아놓고 부실종금사에 대한 지원을 요청한 바로 다음날 추가로 5개 종금사의 영업정지조치를 단행하면서 비롯됐다. 은행들은 재경원의 말을 믿고 종금사를 지원했다가 전격적인 영업정지발표로 엄청난 자금이 묶이게 돼 막대한 타격을 입었다. 이를 계기로 정부가 기업과 종금사 등에 자금지원을 하라고 요구해도 은행들이 이를 불신하는 경향이 팽배해지고 있다. 정부가 이달들어 하루가 멀다하고 은행장들을 불러 기업에 대한 자금지원과 어음회수 자제를 당부해도 은행들은 그 자리에서는 동참을 결의해놓고 사무실에 돌아와서는 대출회수에 나서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 예로 은행장들은 지난 12일 서울 을지로 전국은행연합회에서 림창렬부총리와 전경련 등 경제5단체부회장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긴급대책회의에서 ▲수출환어음 매입재개 ▲신용장 개설 ▲만기도래한 기업어음 2개월 상환유예 등을 결의했다. 하지만 은행장들은 사무실로 돌아오자마자 일선 창구에 대출축소와 상환지시를 보내 기업들의 자금난을 가중시키고 있다. ◇내수를 살려야 실물경제가 산다:세수확대위한 세금인상 최대한 억제/무조건 절약보다 건전한 소비 유도를 휘발유가격이 1천원을 넘어서자 자동차 이용이 크게 줄어들고 있다. 휘발유소비가 20% 이상 감소한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이용만 줄어드는 게 아니라 자동차 수요 자체도 위축되고 있다. 자동차업계는 할부금을 유예하면서 24개월 이상의 무이자할부도 하고 있지만 얼어붙은 시장은 풀릴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업계는 올해 내수시장이 1백53만대로 지난해에 비해 7% 감소한 데 이어 내년에는 최소한 20%는 줄어들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차가 안팔리면 부품, 정비, 보험, 레저 등 그 파장은 급속히 확산된다. 그런데 정부는 세수확대를 내세워 교통세를 올리고, 자동차 특소세율 자체도 인상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자동차업계에서는 『현재 추진중인 제도를 모두 시행할 경우 내년에 자동차 한대를 구입, 보유하는 데 드는 부담은 연간 2백만원에서 4백만원으로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이 경우 수요는 결정적인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정유업계와 자동차업계 관계자들은 『정부가 세수확대를 위해 세금을 더 올리면 수요가 위축되면서 전체 세금은 더 줄어들 수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휘발유의 경우 11월말 9백24원에서 1천83원으로 17% 인상됐으나 수요는 20% 이상 줄었다. 에어컨 등 주요 전자제품도 마찬가지. 환율급등으로 원자재가격 상승에 따른 원가부담이 늘어나는 가운데 세금마저 인상키로 해 내년도 시장전망은 불투명 그 자체다. 전자산업진흥회 관계자는 『에어컨은 단일품목 가운데 최대시장을 형성하고 있다』며 『정부방침대로 특소세를 10% 인상할 경우 수요가 크게 위축될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LG전자는 내년도 에어컨 판매목표를 40만대로 올해보다 25%나 줄여잡았다. 여기에 「아껴야 산다」는 식의 무조건적인 절약캠페인도 기업들을 당혹스럽게 하고 있다.<박원배·민병호·이의춘·고진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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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진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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