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이 74로 고개를 내밀었을 때 흑의 다음 수가 어려웠다. 창하오는 5분쯤 망설이다가 실전보의 75를 선택했다. 이 수를 보고 뒤늦게 검토실에 들어온 이세돌9단이 고개를 흔들었다. “왜? 더 좋은 공격수라도 있단 말이야?” 필자가 물었다. “있구 말구요.” “잡을 수 있다는 뜻인가?” “그건 아니구요. 살려주고 이기는 방법이 있어요.” 그가 제시한 수는 참고도의 흑1이었다. 이렇게 두면 백은 싫어도 4로 막아 흑에게 5를 허용해야 한다는 설명이었다. 계속해서 6 이하 20으로 살아야 하는데 흑5를 얻어낸 이후에는어떻게 변화되어도 흑이 이기는 바둑이라는 얘기였다. 그렇다고 실전의 75가 놓인 시점에서 흑의 형세가 나쁘냐 하면 그렇지는 않다. “흑이 그렇게 여러 차례 통쾌한 수를 두었는데 형세가 나쁘다면 말이 안되지.” 이렇게 말한 사람은 서봉수9단이었다. “여전히 흑이 상당히 좋다는 얘기야?” 필자가 묻자 서봉수가 말했다. “많이 좋은 건 아니지만 유리한 건 사실이지. 게다가 또 한가지 프리미엄이 있어.” “그건 또 무슨 얘기?” “흑이 우악스럽게 백을 이리 치고 저리 치면서 여기까지 왔잖아. 철한이는 창하오한테 어퍼컷, 훅, 스트레이트를 골고루 얻어맞은 처지라 심리적으로 많이 다운돼 있을 거야.” 서봉수의 이 진단은 곧 사실로 드러난다. /노승일ㆍ바둑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