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 금융 정책

['L벨트'의 꿈과 현실] <1> 신기루 좇는 개발의 꿈

계획대로면 에버랜드 수십개 생길판<br>관광·레저 등 성격 비슷한 프로젝트 곳곳 남발<br>해안도시서 주변 섬까지 개발·투기 열풍 휩쓸어<br>중복투자·외자유치도 문제… "경제시한폭탄" 우려

‘L벨트 프로젝트’의 시금석이 된 서해안고속도로가 개통된 지 5년이 흐른 지금, 서남해안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들의 장밋빛 청사진으로 넘실대고 있다. 해안선 일대를 따라 추진 중이거나 계획된 대형 프로젝트만 ▦경제자유구역 2곳 ▦레저형 기업도시 2곳 ▦간척사업(새만금) 1곳 ▦S프로젝트 등. 여기에 전남 신안군 일대 섬을 잇는 다이아몬드 프로젝트, 변산해수욕장 해양휴양지 조성, 군산국제해양관광단지 개발 등까지 포함하면 해안도시와 주변 섬 전체가 개발권역에 들어가 있다. 서남해안 개발사업은 국토 균형발전이라는 관점에서 분명 의미를 부여할 수 있고 사업 자체는 일정 부분 불가피한 측면을 인정받고 있다. 하지만 원대한 프로젝트의 뒤편에는 함정들이 도사리고 있었다. 정부는 L벨트 개발의 축으로 관광ㆍ레저사업을 내세웠다. 문제는 성격이 비슷한 프로젝트가 도처에서 남발되면서 발생했다. 정부 계획대로라면 서남해안 일대에는 용인에버랜드ㆍ무주리조트 등과 같은 테마파크가 수십 곳이 생겨난다. 사업성 여부는 차치하고 당장 우려되는 게 ‘중복투자로 인한 예산낭비’(고종화 한국관광공사 전남지사장)다. 김선덕 건설산업전략연구소장은 더 나아가 “일본과 똑같은 경로를 걸을 수 있다”며 경고했다. 일본은 지난 90년대 초ㆍ중반 전국 곳곳을 테마파크ㆍ골프장으로 채웠다. 중복투자로 인한 병폐가 나타나기까지는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았다. 90년대 후반부터 테마파크와 골프장의 도산이 잇따른 것이다. 프로젝트에 투자한 지자체ㆍ은행ㆍ건설사 등도 동반 부실화됐다. 일본의 10년 장기불황의 이면에는 ‘테마파크발(發) 도산’이 자리잡고 있었다는 게 정설이다. 우리 현실은 어떠한가. 지자체들이 너도나도 테마파크 건설에 나서다 보니 서해안 전체가 ‘테마파크 공화국’이 될 판이다. 재정경제부와 인천시는 디즈니랜드ㆍ유니버설스튜디오 등과 협의해 인천경제자유구역 내 청라지구 30만여평에 테마파크를 유치하는 방안을 진행 중이다. 이곳에서 지척인 시화호 주변 1,720만평도 생태ㆍ레저 등의 복합도시로 개발이 예정돼 있다. 서해대교 밑 행담도는 11만평 전체가 관광단지로 탈바꿈될 예정이다. 1억2,000만평 규모로 조성되는 새만금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새만금 내 2,000만평이 레저관광도시로 추진되고 있다. 여기에 새만금 주변 섬 208만평은 군산국제해양 관광단지라는 이름으로 묶여 있다. 서산간척지 B지구 473만평은 관광레저 기업도시로 개발하겠다고 나선 상태다. 무안을 축으로 하는 4억평 규모의 S프로젝트도 레저도시가 주요 기능이다. 전남 신안군에는 자은~비금~팔금도 등의 섬을 잇는 ‘다이아몬드제도 프로젝트’가 개발의 속도를 더해가고 있다. 광양만권 경제자유구역 내에도 299만평의 여수 화양관광단지가 추진 중이다. 서남해안 일대에 계획 중인 골프장은 더욱 심각한 문제를 낳고 있다. 이헌재 전 부총리 겸 재경부 장관은 재임 도중 중국 광둥성의 80홀 규모 ‘미션힐스 골프장’을 벤치마킹하겠다며 대규모 골프장 건설에 나섰다. 오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을 앞두고 관광객을 끌어오겠다는 심산이었다. 덕분에 새만금 복합레저관광단지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540홀 규모의 골프장 건설이 추진되고 있다. 전남 화원관광단지 27홀, J프로젝트 108홀, 여수 화양지구 72홀, 시화지구 18홀 등 서남해안 일대에 계획 중인 규모만 해도 765홀에 이른다. 지방 전체 골프장을 모아놓은 것과 비슷하다. 이런 일은 정부와 지자체가 각개약진식으로 프로젝트를 추진, 돈 확보가 비교적 쉬운 관광ㆍ레저에 사활을 걸다 보니 필연적으로 뒤따랐다. 그나마 공급이 아무리 많아도 수요만 뒷받침되면 문제가 되지 않는 법. 국책연구소의 한 연구위원은 “정부가 수요와 공급의 원리에 대해 지나칠 정도로 소박하게 접근했던 것 같다”고 꼬집었다. 중국 관광수요부터가 측정이 잘못됐다는 지적이 적지않다. 프로젝트 완결까지는 적어도 수년이 더 필요하지만 중국경제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을 계기로 발전속도가 둔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중국 자체적으로도 거대한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 홍콩과 상하이 등에는 L벨트를 비웃듯 엄청난 관광ㆍ레저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행담도 게이트의 시발점이 된 도로공사의 보증사고는 수요ㆍ공급의 원리상 처음부터 예고돼 있던 일인지 모른다. 외국자본 유치문제도 마찬가지다. L벨트를 개발하기 위해서는 최소 50조~60조원이 필요할 것으로 추산된다. 정부는 외자유치를 통해 해결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국가 시책사업인 경제자유구역도 외자유치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마당에 사업성조차 보장받지 못한 비슷한 프로젝트에 외국자본들이 무턱대고 나설 리 만무하다. 정부가 ‘국가적 명운’을 걸고 추진하는 서남해안 개발 프로젝트는 지금 기로에 서 있다. 그리고 존재의 의미에 대한 근본 답변을 요구받고 있다. 한 전문〈?“이들 프로젝트에 국가의 운명이 걸린 이유를 알 수 없다”며 “국가경제의 시한폭탄으로 작용할지 걱정된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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