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한 불은 껐다. 그러나 앞으로가 문제다`
구본무 회장의 개인 연대보증 등을 놓고 첨예하게 대립해 온 채권단과 LG그룹간 협상이 23일 밤 주요 채권은행들이 2조원의 신규자금 지원과 채권만기 연장에 전격 동의하면서 극적으로 타결됐다.
양측 모두 LG카드를 비롯한 금융회사들이 정상적인 업무에 들어가는 24일 오전까지 사태를 방치할 경우 금융시장이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에 휘말릴 수 있다는 점을 인식, 파국을 피하자는 공감대에 따라 극적 합의를 도출한 셈이다. 금융당국이 각 은행별로 동의서 제출여부를 수시로 점검하는 등 적극적인 중재에 나선 것도 사태해결에 한 몫 했다.
이에 따라 채권단이 자금지원에 나서면서 LG카드는 부도직전의 위기에서 탈출하면서 우려했던 `제2의 카드대란`등 금융시장의 불안감은 일단 진정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급한 불은 꺼졌지만 불씨는 여전한 상태다. 무엇보다 일부 은행이 막판까지 “구 회장의 연대보증이 없으면 지원에 나설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을 정도로 진통을 겪었다. 일단 자금지원이 재개?譏嗤? 추가 협상이 예상되는 대목이다. 채권단이 자금지원에 앞서 LG카드가 정상화가 안 될 경우 LG그룹이 갖고 있는 LG카드 지분을 전량 소각하고 2조원의 대출을 전액 출자전환해 매각을 추진키로 한 것도 이 같은 우려에 대한 `안전장치`라고 할 수 있다.
◇채권단, 2조원 지원 전격합의=채권단은 당초 구 회장의 연대보증없인 절대 자금지원에 나설 수 없다는 강경입장을 고수했으나 `금융대란`의 우려와 금융당국의 적극적인 중재로 23일 밤 개별적으로 동의서를 팩스밀리로 제출하는 방식으로 지원에 합의했다.
이종휘 우리은행 부행장은 “최근의 경제상황 등을 감안할 때 신용카드 산업의 경영전망이 개선될 것으로 판단해 LG대주주의 추가증자 및 채권단의 유동성 지원으로 카드사들에 대한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는 계기가 마련되고 금융시장 안정에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채권단의 다른 고위관계자는 “더 이상 사태를 방치할 경우 파국을 면할 수 없기 때문에 대승적 차원에서 결단을 내려 달라는 금융당국의 입장을 받아들여 확약서에 서명했다”며 “LG그룹과 LG카드는 앞으로 강도 높은 자구노력과 채권보전 조치 등을 통해 하루빨리 정상화에 나서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LG그룹, 채권단 결단 환영=LG그룹은 채권단이 LG카드에 대한 구본무 회장의 연대보증없이도 자금지원에 나서겠다는 입장에 환영의사를 밝혔다. 정상국 ㈜LG 부사장은 “구본무 회장과 개인 대주주들이 카드정상화를 위해 제시할 수 있는 모든 카드를 담보로 제공했다”면서 “채권단의 자금지원을 계기로 그룹차원에서 기울일 수 있는 노력을 다해 조기에 카드 경영정상화를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LG그룹의 다른 관계자는 “ LG카드가 보유하고 있는 매출채권 10조4,000억원의 경우 아무리 부실채권으로 간주하더라도 최소 2~3조원에 달하는 자산”이라면서 “1조원의 자본확충을 내년 상반기까지 마무리해 카드 경영정상화를 앞당길 것”이라고 밝혔다. LG그룹은 채권단의 자금 지원으로 카드 문제가 일정정도 안정화될 경우 국내외 금융기관을 대상으로 자본유치도 앞당길 계획이다.
◇남은 숙제는=채권단의 한 고위관계자는 “채권은행들이 자금지원을 일단 결정했으나 LG측이 제출한 확약서만으로는 시장의 신뢰를 얻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향후 시장상황은 좀더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각 은행들 지원에는 합의했으나 24일 중 여신협의회나 이사회 등 내부적인 의사결정 과정을 거쳐야 한다”며 “이 과정에서 문제가 생기면 사태가 최종 자금집행 과정에서 막판 진통이 예상된다”고 우려했다. 이와 함께 채권단의 지원에도 불구하고 LG카드가 조기에 경영정상화를 이루지 못할 경우 채권단의 출자전환을 통해 LG카드를 매각하는 과정에서도 `정상화`의 판단여부 등을 둘러싼 또 한번의 마찰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진우기자 rain@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