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금융불안에 국제자본 '새판짜기'미국발 금융불안과 맞물려 국제자본(국제 투자자금)의 대 이동이 본격화되고 있다.
뉴욕증시 하락 및 달러화 약세로 미국 금융시장에서의 자금이탈이 심화되고 있으며, 이는 재차 주가 하락 및 달러화 가치 하락의 요인으로 작용하는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다.
이에 따라 투자자들은 채권이나 단기예금 등의 금융자산은 물론 귀금속이나 부동산 등의 실물자산으로도 눈을 돌리고 있다.
특히 미국 내에서 마땅한 투자대상을 찾지 못한 투자자들은 더 높은 수익률을 찾아 유럽과 일본으로 자금을 옮겨가고 있으며, 이머징마켓으로의 자금이동도 감지되고 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미국내 투자 자금의 이탈을 막기 위해 기업 투명성 제고를 위한 개혁 의지를 천명하고, 앨런 그린스펀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까지 '구원투수'로 나서 미 경제에 대한 낙관론을 펴고 있지만 국제자본의 미국 금융시장 이탈은 더욱 심화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또한 유럽과 일본은 물론 아시아 외환위기 이후 거시경제적 위험이 높은 시장으로 인식돼 자본유입이 부진했던 이머징마켓에도 국제자본의 유입이 이뤄지는 등 국제자본의 새 판짜기 양상마저 나타나고 있다.
◆국제자본 유럽과 일본으로 역류
지난 90년대 미국은 경제 호황에 따라 유럽이나 일본에 비해 높은 이자율을 유지했으며, 자본수익률(ROE) 역시 유럽이나 일본에 비해 높은 수준을 유지해 이들 지역의 자금이 미 금융시장으로 흘러 들어갔다.
여기에 더해 미 금융시장은 충분한 유동성, 기업지배구조의 투명성, 소액투자자 보호 등에서 높은 평가를 받아 최적의 투자처로 부각됐다.
실제 지난 97년부터 2001년 사이 일본과 유럽에서는 각각 6,655억 달러, 1,132억 달러의 자본이 빠져나간 반면 미국으로는 1조6,296억 달러의 자본이 흘러 들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완전히 반대의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지난 2000년 유럽으로부터의 투자를 중심으로 2,174억 달러에 달했던 국제자본의 대미 M&A 투자는 2001년 들어 순유입 규모가 462억 달러로 급감한데 이어 올들어 지난 1~3월에는 35억 달러의 순유출을 기록했다.
또한 올 들어 지난 1~2월 중 미국 주식시장에서의 외국인 순매수 규모는 약 110억 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330억 달러에 비해 큰 폭으로 줄어 들었다.
이 같은 상황은 채권도 마찬가지. 미국 회사채에 대한 국제자본의 투자는 9.11 테러 사태 이후 안전자산에 대한 선호가 고조됨에 따라 지난해 10월 최고 수준을 보였으나 최근에는 감소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이처럼 미국 금융시장에서 국제자본이 빠져 나가는 것은 유럽과 일본의 투자자들이 투자 메리트를 상실한 미국 금융시장에서 발을 빼 본국으로 회귀하기 때문으로 풀이되고 있다.
실제 올 들어 유럽의 자본 유출 폭은 지속적으로 감소돼 왔으며, 특히 3월에는 자본 유입액이 자본 유출액을 40억 유로나 초과했다.
일본의 투자자 역시 최근 5개월 연속 경기예측이 상향조정되는 등 일본 경제가 회복되는 양상을 보임에 따라 일본으로 투자자금의 물꼬를 돌리고 있다. 이에 따라 일본 국채에 대한 수요가 상승, 이 달 중 국채 유통수익률은 지난해 11월 이래 최저인 1.29%포인트까지 떨어졌다.
◆이머징마켓에도 국제자본 유입
미국 금융시장에서의 국제자본 이탈이 곧장 국제 금융시장의 불안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전제를 깔면 이머징마켓에 대한 국제자본 유입도 지속적인 증가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미국으로의 자본유입 둔화는 원칙적으로 여타 지역으로의 자본유입 증가를 의미하는 만큼 이머징마켓도 수혜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논리다.
이와 관련,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는 올 들어 지난 4월 이후 이머징마켓 회사채 발행액이 급증, 지난 9일까지의 발행액이 689억 달러에 달한다고 밝혔다.
특히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상반기 수익률이 가장 좋은 10개의 글로벌 주식형펀드 중 8개가 아시아에 투자하는 펀드라고 보도, 아시아 주식에 대한 수요도 늘고 있음을 시사했다.
이머징마켓으로의 자금이동을 주장하는 전문가들은 최근 환율 움직임을 근거로 내세우고 있다. 원ㆍ달러 환율이 연초 대비 10% 이상 하락하는 등 올 들어 아시아 각국 통화가치는 급속한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으며, 이 같은 추세는 앞으로도 상당기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임경묵 박사는 "결국에는 펀더멘탈이 튼튼한 곳으로 국제자본이 이동하게 될 것"이라며 "미국 기업의 수익전망이 악화됨에 따라 이머징마켓 중 상대적으로 수익전망이 밝고 저평가된 국가로 자본유입이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물론 이머징마켓으로의 국제자본 이동 가능성을 부정적으로 보는 전문가들도 있다.
미국 기업을 불신하게 된 투자자들이 이머징마켓 기업을 신뢰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실제 미국발 신용위기는 프랑스 비방디, 일본 미즈호 은행의 스캔들에서 보듯 이미 국제 신용위기로 확산되고 있으며, 이머징마켓의 기업 투명성에 대한 의구심도 높아만 가고 있다.
김대환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