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CEO&Story] 이수하 금정 회장



지난 2001년 어느날, 이수하(59ㆍ사진) 금정 회장은 평소 거래해오던 금융회사 관계자들을 회사 사무실로 불러 모았다. 몇해전 뜻하지 않은 공장 사고로 신용불량자의 나락으로 떨어졌던 이 회장은 이날 그동안 쌓였던 부채를 이자까지 다 챙겨 말끔히 털어버렸다. 금융회사 담당자들도 한번 부도를 냈던 거래처가 끝까지 빚을 갚은 사례가 없었다며 깜짝 놀랐다. 이 회장으로선 지난 6년간 멍에처럼 따라다녔던 빚을 청산하고 새롭게 출발하는 순간이었다. 정밀화학업체인 금정을 이끌고 있는 이 회장은 업계에서 산전수전을 다 겪은 경영인으로 통하고 있다. 그는 두차례의 사업실패에도 좌절하지 않고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났고 무일푼으로 출발해 번듯한 중견기업을 일궈내는 등 흔치 않은 인생역정을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적지않은 풍파를 겪은 그는 나름의 사업 노하우를 갖추게 됐다. 기업을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비유하는 이 회장은 “회사를 꾸려나가려면 무엇보다 예술가적 감각이 필요하다”는 평소 지론을 기업경영에 그대로 실천하고 있다. 그는“사장이란 모름지기 제품 개발부터 생산까지 모든 과정을 궤뚫고 있어야 한다”며 “배수진을 치고 사업에 임해니 숱한 난관을 헤쳐나올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고등학교를 마치고 야간대학까지 다니며 평범한 샐러리맨으로 지냈던 이 회장이 창업의 길에 뛰어든 것은 비교적 단순한 이유에서 시작됐다.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나만 생산할 수 있는 제품을 한번 만들어보자는 것이었다. 그가 마음을 먹고 80년대초 처음 손댄 것은 도로표지판이었다. 하지만 무리한 투자가 화근이었던지 35살의 젊은 나이에 처음으로 실패의 쓴맛을 보고 말았다. 이후 87년말 다시 사업에 뛰어들었지만 95년 공장에서 터진 불의의 사고는 그에게 한때 벼랑 끝에 내몰리는 최악의 위기를 안겨주었다. 이 회장은 “그때의 쓰라린 경험 때문에 나중에 돈을 벌면 꼭 좋은데 쓰겠다고 결심하게 됐다”며 “자식들에게 한푼도 물려주지 않고 장학재단 같은 곳에 기부하는 등 사회에 모두 환원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지난 2000년, 어렵게 회사를 꾸려오던 이 회장에게 재기의 발판을 마련해준 좋은 기회가 다가왔다. 글로벌 화학업계의 빅3중 한곳에서 금정과 합작사업을 벌이자며 먼저 제안을 해온 것이다. 금정이 특유의 원재료 합성방식을 활용해 워낙 낮은 가격으로 시장을 잠식해 들어오자 이를 견디다 못해 사실상 투항을 선언한 셈이다. 양측은 2년이 넘는 기나긴 협상과정을 거쳐 금정에서 기술료 명목으로 330만달러를 받는 대가로 중국에 조인트벤처를 설립하기로 합의했다. 이 회장은 “당시 글로벌 거대기업에서 우리의 기술력을 인정하고 돈까지 받으니 없던 힘도 불쑥 생기더라”며 “여기서 자신감을 얻어 한번 재기를 해보자고 마음을 다잡아 먹었다”고 회상했다. 이 회장은 이후 계열사인 유스켐을 세우고 합성수지 도료공장을 만들고 도료 등 첨가제 시장에도 진출하는 등 본격적인 사업확장의 날개를 달기 시작했다. 올해초엔 규사광산을 인수해 제2의 도약을 위한 발판을 마련하기도 했다. 이 회장은 “많이 고민하고 생각하고 뛰다보면 나만 보이는 비법이 생기고 돈도 벌게 되더라”며 나름의 성공비결을 소개했다. 금정은 업계에서도 포장 자동화시설 등에 투자를 많이 하고 인력에 비해 매출액도 큰 알짜기업으로 알려져 있다. 또 장기 근속자가 상대적으로 많고 대기업 인력도 찾아올 만큼 복지후생에 남다른 신경을 쓰고 있다. 지난 2004년 일찌감치 주5일 근무제를 도입하는가 하면 학자금 보조나 자기개발비용 지원 등 직원들의 능력을 키우는데 각별히 배려하고 있다. 그는 “오랜 사업과정을 거쳐 내린 결론은 사람을 믿어야 한다는 것”이라며 “직원들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으면 모든 것을 맡겨버린다”고 강조했다. 그가 늘상 직원들에게 강조하는 말도 “당신이 바로 세계 1인자라는 자부심을 갖고 일을 처리하라는 것”이다. 이 회장은 지금이야 해외시장에서 인정받는 위치에 올랐지만 처음 시장 개척에 나설 때만 해도 겪은 고초가 이루 헤아릴 수 없었다. 영어도 잘 못하던 그는 4박5일의 해외 출장이면 5~6개 공장을 한꺼번에 돌아다닐 만큼 한마디로‘무지막지하게’외국을 누비고 다녔다고 한다. 업종 성격상 위험물로 분류되는 화학물질을 가방에 샘플로 넣고 다니다 보니 공항에서 폭탄으로 오해받았던 해프닝도 겪었다. 한번은 비행기 탑승마저 거부당하는 바람에 서툰 영어로 불을 붙여가며 기장을 설득했던 일화도 있다. 이처럼 우여곡절을 겪으며 20년 넘게 돈독한 관계를 쌓아온 해외 바이어들은 지금도 호형호제할 만큼 이 회장의 든든한 후원군이자 지원세력으로 자리잡고 있다. 이 회장은 “워낙 품질 관리를 깐깐하게 하다 보니 금정 제품이라면 보지도 않고 사가는 곳도 적지않다”며 “글로벌 경쟁업체라고 해도 경쟁하고 노력하다 보니 대등한 위치에 올랐다는 자신감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이제 보다 먼 미래를 내다보는 계획을 하나씩 실천에 옮기고 있다. 그는 “앞으로 5~7년안에 내실을 탄탄히 다져 회사를 반석 위에 올려놓고 싶다”며 “5년 후 매출 1,500억원을 목표로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끊임없는 연구개발(R&D)과 신사업 진출도 이 회장이 신경을 쓰는 분야이다. 이 회장은 각 공장에 흩어져 있는 연구인력에게 자신의 경험과 노하우가 담긴 과제를 제시하고 매주 한차례씩 어김없이 진행상황을 보고받고 있다. 그의 꿈은 단 한가지다. 바로 해외 유수기업이 만드는 것 가운데 우리가 뒤따라가도 충분히 경쟁력을 갖춘 제품을 발굴해 세계 일등의 제품으로 키워가겠다는 것이다. 사진=김동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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