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한폭의 추상화처럼 아름다운 현의 울림

바이올린 女帝 안네 소피 무터 데뷔 30돌 내한공연


현의 울림은 쉽고도 아름다웠다. 자신의 무대 데뷔 30주년을 기념해 9년만에 내한해 18일 예술의전당에서 모차르트 바이올린 소나타로만 리사이틀을 가졌던 바이올린 여제(女帝) 안네 소피 무터(43). 30년 동안 품에 안고 살았던 모차르트 곡이었지만 이번 연주는 매우 특별했다. 신동이라 불린 10대 때는 모차르트 음악을 풍경화처럼 다뤘지만 불혹의 나이에 올라선 그녀는 모차르트의 바이올린 소나타를 한 폭의 추상화처럼 그려냈다. 열 다섯살 때 거장 카라얀과 함께 모차르트 바이올린 협주곡을 연주할 때와는 분명 깊이와 색깔이 달라졌다. 무터 스스로 “있는 그대로를 넘어서 내가 생각하는 바를 그 음악의 틀 안에서 형상화 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할 정도니 무대에서의 30년 세월은 결코 짧지 않았다. 첫 곡은 모차르트 바이올린 소나타 바장조(KV. 376). 간결하면서 부드러운 현의 울림이 시작됐다. 주선율에 곧바로 이어지는 꾸밈음은 힘들이지 않고도 충분히 매혹적이었다. 두번째 연주곡 내림 마장조(KV. 481)의 1악장에선 떨림음의 중후함이 빛을 발했다. 40대 원숙미에 접어든 바이올리니스트의 기품이 느껴졌다. 세번째 곡 사장조(KV. 379)는 바이올린 반주와 피아노의 주선율이 끊임없이 대비를 이루는 작품. 그녀의 현에서 울려 나온 1악장 아다지오-알레그로 주제 선율은 그녀의 연주복만큼 화려했다. 멜로디는 풍선처럼 부드럽게 부풀어 올라 민들레씨처럼 우아하게 터져 나갔다. 중간 휴식을 끝낸 뒤 첫 곡은 안네 소피 무터가 모차르트 바이올린 소나타 가운데 가장 사랑한다고 밝힌 마단조 소나타(KV. 304). 바이올린 소나타 가운데 유일하게 단조로 작곡된 곡으로 1778년 모차르트가 어머니와 함께 독일 만하임과 프랑스 파리를 여행하는 도중 만들어져 어머니가 숨질 당시에 연주됐던 작품이다. 무터가 연주하는 1악장 알레그로의 호흡은 음반으로 흔히 접하는 다른 연주자들보다 충분히 길었다. 당대 모차르트 연주에 비한다면 모데라토나 아다지오에 가까울 정도. 장중한 그녀의 선율은 스스로 그다지 탐탁치 않게 여기는 원전악기 연주의 투박함마저 느껴진다. 마지막 순간까지 이어진 유려한 선율은 종지음에서 처절하게 터지고 찢겨 나갔다. 여제의 진가를 느끼게 하는 악장. 신동으로 데뷔해 평생 신동에 그쳐버린 숱한 연주가들에 비한다면 그녀의 이날 연주회는 분명 바이올린 여제의 명성을 증명하는 리사이틀이었다. 음악 색깔로만 따졌을 때 10대 안네 소피 무터의 모습이 화가 르노아르와 모네였다면 지금 모차르트를 연주하는 그녀는 잔가지를 친 간결한 표현이 돋보이는 후기 인상파 고흐와 입체파 피카소의 중간쯤에 위치해 있다. 음악적 감동의 깊이만으로 따진다면 그녀는 신동과 여제의 지위를 넘어서 거장으로 가는 길목 어딘가에 서있다. 미래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반올림하면 분명 거장 쪽에 가깝지만 아직은 그녀에게 거장의 벽이 조금 높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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